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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정킴 Oct 10. 2021

제가 정신병이 있다고요?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된 정신병


정신병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내게 박혔을 때는

꽤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크게 다퉜을 때였다.

그는 화를 내는 내게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쏘아붙였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충격이긴 했지만,

딱히 내가 정신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는 스스로가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신병이 나와 그를 떼어놓았다고 믿었다.

그가 내게 했던 진단은 "분노조절장애"였겠지만,

내가 내린 진단은 “경계선 인격 장애”였다.






경계선 인격 장애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것을 무서워한다.

늘 정서와 행동이 불안정하며 감정기복이 심하다.

한 사람을 두고도 극단적으로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를 동시에 하며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통일시키지 못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정말로 이 관계가 끝날 것이 두려웠다.

단순히 헤어지는 것뿐인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버림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어떤 짓을 해서라도 그를 일단 붙잡아야 했다.

그를 자꾸만 미화시키면서도 또 그를 미워했다.


내가 "경계선 인격 장애"를 알게 된 것은 심리상담을 받던 초기였는데,

무엇이든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해야 했던 나는 내 증상에 맞는 책을 추천받았다.

공교롭게 그 책은 경계선 인격 장애 치료에 많이 사용되는 책이었고,

경계선 인격 장애에 대한 설명은 이별 폭풍 가운데 서 있는 나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계선 인격 장애구나, 하고 믿고 말았다.


가장 좌절된 점은 경계선 인격 장애가 치료가 어렵고

의사들도 꺼려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든 이 병을 타파해서

다시 꽁냥꽁냥한 연애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 것이 기약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결국 해결책도 찾지 못한채 여러 상담센터를 전전하다가 정신과로 왔다.

정신과 선생님은 내게 "경계선 인격 장애"는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힘들지 않을 뿐더러

자살시도나 자해같은 충동성 행동 같은 것도 없었다.


대신 나는 기분에 관한 약을 몇 개 타 왔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정신과 약이었다.

약은 내게 그런 인격장애는 없었지만, 정신병은 실제로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최악을 대비해서 그랬는지,

그정도 병은 무섭지 않았다.






약은 2주정도 뒤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먹고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매주 의사선생님 얼굴을 보고 울고 온다는 것정도.

매일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서 할 말을 체크했다.

혹여나 해야할 말을 빠지지 않을까 메모하고 되새겼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보니, 어느 새 마음이 좀 가뿐해졌다.

그렇지만 무기력할 때도 많았고, 우울할 때도 있었다.

선생님은 매번 신중히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약을 조금씩 바꾸어 주셨다.

어느새 약이 한줌이 되었다.


약을 한 입에 털어먹으면서

약을 먹으면 대체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하나 막막하다는 사람들의 후기들이 생각났다.






뭐, 될대로 되겠지, 의사 쌤이 알아서 해주시겠지란 맘으로

또 몇 달을 더 꾸준히 정신과를 다녔다.

매주 보는 의사선생님에 익숙해졌고,

전처럼 메모하진 않아도,

기분이 요동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의사선생님한테 가서 이야기해야지, 생각하며 기분을 달랬다.

그건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과를 가는 기간이

2주에 한 번으로, 3주에 한 번으로 늘어났다.

약은 조금 늘어나다가 다시 줄어들어, 지금은 네 알정도만 남았다.



이십대의 나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십대의 끝자락과 삼십대의 첫순간을 함께 보냈던 이와의 연애도 기억한다.

행복했지만, 그만큼이나 불안하고, 우울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모은 행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고,

발버둥칠 수록 모든 것들은 나를 떠났다.


지금은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30대이다.

근데 그때보다 평온하고 행복하다.

우울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20대의 내가 어색할 정도로

우울이라는 말이 어색해졌다.

무기력한 날들은 때때로 나를 덮쳐오지만,

그래도 금방 헤엄쳐 나온다.


20대의 나에겐 정신병이라는 건 큰일날 일이었는데,

30대의 나에게는 오히려 그러면 고칠 수 있는 일이라는 안심이 있다.

20대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일들은 대부분 별게 아니었으며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큰 일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미리 걱정하는 건 아무 소용없었다.

 그냥 흐름대로 타고 가는 것, 그것이 서른을 넘은 내가 택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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