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나와서도 스스로 삶을 자립할 수 있으려면
대학시절 막연히 누군가의 직장을 부러워 해 본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에 취직하여 아침마다 자신의 얼굴이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서울 한복판의 아주 큰 건물 입구를 들어가는 모습. 세상을 움직이는 산업에 몸담고 남아 도는 휴가와 가족들까지 누릴 수 있는 빵빵한 복지 혜택까지. '어느 회사의 누구'라는 이름은 참으로 멋져 보이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회에 나오고 15년쯤 사회 생활을 해보니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끝없이 동경하던 '00기업의 누구'가 가진 그 많은 혜택과 멋짐은 거대한 대기업의 시스템 안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돌아가는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었고, 그 자리에는 누구든 대체 가능할 수 있음에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일상에 대한 보상이었으며, 실제 예상치 못한 어떤 상황으로 인해 그의 고용이 위기를 맞을 경우 누구도 그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잊기 위한 현재의 달콤함이었다. 현실을 잊기 위한 작은 알약같은 것 말이다.
'00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세상에 혼자 설 수 있을까.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이 나라의 경제 모델이 디지털 혁신과 코로나로 인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항상 좋을 것만 같았던 항공 산업은 해외에 단 한 대의 비행기도 띄우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워졌고, 여행 산업은 지원금에 기댈 수 밖에 없어졌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채용을 취소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는 모양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을 해결할 방안이 '극복'이 아닌 '적응'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단 하나의 세계적 유행병으로 우리 모두의 삶이, 일이, 생활이 어그러져 버렸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의 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그의 저서 <쿨하게 생존하라> 등을 통해 이야기 해왔던 부분인데, 지금 가장 관심가는 이야기다.
언제든 우리의 직장과 일터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 고용은 예전과 같은 '종신보장형'일 수 없다. 갈수록 뛰어난 인재가 유입되고 있고, 워낙 빠르게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늦어도 40대 후반이면 현재의 직장에서 나와야 할 상황이다. 아니, 어쩌면 40대 후반은 지금 기준일 뿐, 앞으로 몇 년 안에 그 은퇴 시기가 더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흔히 '꼰대'라고 불리는 세대들, 나아가 그들의 영향을 받아 '낀세대'라고 불리는 이들까지. 과거 세대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통념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라떼'로 불리며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 일컬어지고 있다면 이 세대의 은퇴 시점은 더욱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흐름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면, 다음 질문이 따라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당신은 직장을 떠나서도 직업인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가?"
내 앞의 '00회사 00직함' 타이틀을 떼고도 온전히 나 000으로 살아남아 중년 이후의 삶에서 수익을 만들고 삶을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 첫번째 직장을 잡는 일도 30대 초반까지 늦춰진 마당에 40대 후반의 은퇴를 걱정하자니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질문은 모두가 느낄 현실적인 고민이다.
책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가 말하는 주제는 그래서 중요하고 또 솔깃하다. 저자는 말한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변환하는 것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욕망을 솔직하게 찾는 작업이다. 개성이나 강점과는 큰 상관없이 조직이 부여한 직책과 역할에 익숙한 조직 의존형 인간에서 벗어나 나의 개성과 재능, 강점과 욕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과정 등을 다양한 사례와 인사이트를 통해 설명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 진행하고 있는 코칭, 워크샵 스킬을 활용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볼만한 질문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던지는 10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갈아타기 위한 10가지 질문]
1. 나는 직장인인가? 직업인인가? 직업인으로서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2.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3. 일을 함녀서 과정과 결과에 만족했던 10가지 장면이 있는가?
4. 남이 아닌 내가 진짜 욕망하는 삶과 일은 무엇인가?
5. 직장생활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
6. 조직에 기대지 않고 팔 수 있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가?
7. 나는 직장에서 경쟁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가?
8. 직장 동료들에게 나는 어떤 리더로 기억될 것인가?
9. 내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인가? 나는 이를 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가?
10. 나는 쉬고 떠나는 문제에서 주도적인가?
위 10가지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보고 그에 대한 답을 적어보는 것만으로도(속으로만 적당히 대답하지 말고 반드시 적어보는 것을 권한다)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최소한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가야할 이유를 느끼기만 해도 이 책은 우리 삶에 의미있는 울림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나의 경우는 '고객의 성공을 돕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내 직업적 목표로 정했다. 그동안 내가 밟아온 커리어와 지금 배우고 있는 모든 일들, 나아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모든 커리어는 이 하나의 목표를 완성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은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이곳에서 나의 역할도 '직장인'이 아닌, 내가 현재 가진 능력들을 회사에 판매하고 급여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회사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배우게 되는 요소들에 감사하고 있고, 이를 통해 조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게 기여할 생각이다.
이 책을 알고, 저자인 김호 대표를 통해 여러 도움을 받아왔기에 늦지 않게 내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그의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삶의 방향과 속도를 설정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