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솜방망이질
똥똥이가 가고 나서 땅콩은 또 한 번 심한 설사에 시달렸어.
땅콩의 장은 유리로 만들어졌는가봉가... 덕분에 또 한 번 사료를 바꿔주었고. 난 여전히 미생물과 비타민과 사료에 대한 공부중이야. 고등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우와, 난 무난하게 스카이에 입학했을 것 같은데?? -_ -;
다행히 이젠 정상(맛동산 변)으로 돌아오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많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땅콩의 상태에 대한 진단도, 처방도 어느 정도 할 줄도 알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왜 난 여전히 머리 속에서 땅콩을 임시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일까? 극한의 상황이 닥쳤을 경우 일종의 내 마음을 위한 보험이라도 들어놓는 것일까? 뭔가 잘못되더라도...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아가라고 하기가 여전히 무서운 것일까?
반성하고.
땅콩을 입양하기로 결정했어. 상황은 이미 똥똥이를 엄마에게 보낼 때 땅콩은 우리 집에 남아있어서 입양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내 맘속에서 진짜 평생을 책임지고 천수를 다할 때까지 지켜줄 결심을 못하고 있었던 거지. 이젠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를 끌어 안기로 결정한 것. 결정하고 나니 언제나처럼 똑같이 무릎에 앉아있을 뿐인데도 하염없이 쳐다보게 되고, 언제나처럼 똑같이 품에 안겨있을 뿐인데도 끊임없이 뺨을 갖다 대고 부비게 되는 거 있지.
땅콩이 분명 엄마하고 일찍 떨어진 허전함과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젖을 너무 일찍 떼 버려서 생긴 결핍 같은 게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게 돼서 걱정도 되고.
그러고 나니까 하아... 돌이킬 수 없는 극성 심리가 고개를 쳐들어서...;;; 정신적으로도 결핍을 겪고 있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범백과 허피스의 후유증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더 아껴주어야 한단 생각에... 미국의 모 기관에서 사료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한 사료들을 사재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ㄷㄷㄷ H양이 말리고 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어. 극성떨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하니 좀 이상한 얘기지만, 유리로 만들어진 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간식을 줄 수 없다는 게 우리 둘 다에게 다행일 거야. 난 극성 사재기 목록에 간식이라도 빠지니 다행이고, 성장기의 땅콩에게는 간식은 절대적으로 좋지 않을 테니까 좀 더 주식에 집중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이젠 똥똥이가 없어서 내가 놀아주야 하는데... 세상에 그 흔한 낚싯대 하나 없어. 그렇게 사료와 비타민과 닭가슴살과 인형과 공은 사재기를 하면서 어째서 여태껏 낚싯대를 하나도 안산 거지???ㅋㅋㅋㅋ 기가 막혀;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거로 놀아주기 시전. 당장 손에 잡히는 건 키티 마우스 손목 보호대.
땅콩아~~ 너도 키티야~ ㅋㅋ 별생각 없이 흔들어줬는데... 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서워해... 어휴 이 겁쟁이 쫄보 같으니. 넌 인마 사내자식이란 말이다;;
자, 담력을 키우자. 계속 흔들어줄게 넌 펀치를 날려. 넌 이길 수 있어! 계속 때려!!
한참을 흔들어주다가 던져주면 막 가지고 놀고 물어뜯을 거라 예상한 내가 바보지. 이 녀석 겁쟁이란 걸 잠시 까먹었어. 도망가버리다니 ㄷㄷㄷ
간식은 안 샀으나 ㅋ 요즘 엄청나게 핫한 수제간식. 닭가슴살 육포와 소간 육포, 디포리, 닭안심 치즈 동글이, 수제 소시지, 고등어 마들렌, 연어포를 주문했어. 아.. 많이도 샀구나. 역시 난 안 되겠어. 환장을 하고 먹는 걸 보니 또 마음이 약해지네 ㅠㅠ; 참아야지. 애 물똥 발사하면 둘 다 피곤해. 저놈은 속이 불편해지고 설사를 흘리고 다닐 테니 힘들 거고 난 치우느라 개 힘들 거고. 참아야 한다!!!!
자연식을 먹이다가 보니 사실 냥이에겐 자연식이 제일 좋을 거니까 그리고 너무너무 잘 먹으니까, 아, 나도 뭔가 만들어 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닭가슴살과 당근, 소고기 안심, 단호박과 고구마를 넣고 푹 삶아줬더니 어마어마하게 잘 먹어. 아 뿌듯해. 내가 만든 음식을 제일 잘 먹어준 생명체야 넌.
잘 먹는 걸 보니, 갑자기 떠오른 생각.
엄청나게 비싸고 좋은 사료라고 샀는데 거들떠도 안 보고 안 먹는 그 사료. 너무 아까우니까 갈거나 불려서 주식 캔에 섞어줘 왔었는데, 여기다가 넣어주면 되겠다! 해서 스튜가 살짝 식어서 약간 따뜻할 때 사료를 넣었어. 적당히 불어서 섞여버리면 그냥 먹겠지.
훗. 널 너무 우습게 봤구나.
이렇게 먹다가 뱉어버릴 수가 있구나... 네이눔!
땅콩아,
이제 나의 가족이 되었구나.
이제 보기 싫지만 언젠간 네가 나이 들고 힘들어지는 걸 보아야 하는구나.
이제 우리 서로서로를 책임져야 하겠구나.
정말 제목처럼 사지 말고 입양을 해버렸구나.
조금 아프고, 조금 온전치 못하지만 세상에 본 적 없는 요정이라서 널 만난 나는 행복하구나.
꼭 아가 때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도록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줄게.
꼭 열심히 공부해서 아가 때의 그 아픔의 후유증이 널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해줄게.
꼭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
지켜준다는 말이 가당치 않지만, 너의 삶과 행복을 지켜줄게.
마무리는 개구리 사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