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May 11. 2021

행정실장의 위치는 어디인가?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행정실로 향하는 길.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실장님"

"네?"

"정보공시 2차 기간인데요"

"제가 입력할 것이 있나요? 혹시 오늘까지인가요?"

"아니요. 수요일까지예요."

"아, 그럼 들어가서 바로 할게요."



*정보공시: 학교 및 교육 관련기관에서 행하는 교육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시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정보공시 2차에서 내가 입력해야 할 내용은 2020년도 학교 예, 결산서와 발전기금 결산서였다. 입력을 마치고 또다시 복도에서 우연이 마주친 담당 선생님께 말을 건넸다.


"선생님"

"네?"

"정보공시 입력 다 했어요. 그런데 작성자는 저인데 확인자는 누구인가요?"

"교감선생님입니다."

"네? 제 것도요?"

"아...(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냥 일괄로 교감선생님.."

"아... 알겠습니다."


사실 어째서 예산 관련 입력 확인자가 교장선생님이 아닌 교감선생님인지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대화 장소가 교무실 앞 복도였고 내 목소리가 이미 충분히 컸기에 아마 교감선생님께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셨을 것 같은 찜찜한 기분에 대화를 서둘러 마쳤다.


하지만, 과연 교감선생님이 행정실장이 입력한 예산 업무에 확인자 역할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남는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학교의 최고 관리자는 교장선생님이다. 그리고 학교에는 교무실, 행정실 두 개의 전혀 다른 성격의 사무실이 있는데 교무실의 수장은 교감, 행정실의 수장은 행정실장이다. 그런데 실제 학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행정실장은 행정실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교감선생님만큼 그 위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근무지가 학교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일정한 목적ㆍ교과 과정ㆍ설비ㆍ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라고 나온다. 말 그대로 교육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행정활동이 아닌 교육활동이 중심이 된다. 교육활동은 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교사들을 총괄, 감독 및 지도하는 교감선생님이 더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


*행정직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우리 학교 예를 들어보자면, 전 교직원 27명 중에 지방공무원은 단 네 명이다. 그 네 명도 다 직종이 다르다. 교육 공무 직원(무기계약직) 5명을 제외하고는 다 선생님이라고 가정했을 때 (기간제 교사 및 관리자 - 교장, 교감) 무려 지방공무원의 5배에 이르는 18명이 선생님인 것이다. 그러니 다수의 수장과 소수의 수장의 위치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사실 우리 학교 같이 학생수가 적은 학교에는 한 반에 학생수가 적게는 네 명부터 많아봐야 열명 정도이다. 하지만 학생수가 네 명이건 열명이건 그 반에 담임선생님은 꼭 존재한다. 그런데 행정직의 경우 규모가 큰 학교이든 작은 학교이든 행정실에서 맡은 일의 가짓수는 거의 차이가 없이 동일한 경우가 대다수인데 소속 직원의 수는 천차만별이다. 현재 우리 학교에 행정일을 보는 지방공무원은 단 두 명이다. (한분은 시설직이기 때문에 행정일보다는 현장일 위주이다.) 두 명이서 모든 행정일을 보는 것이다. (학교가 작아서 가짓수는 똑같아도 일의 강도는 훨씬 낮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비단 지방공무원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전 교직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하겠다.)


나도 우리 행정실에 행정을 볼 수 있는 행정직이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고, 행정직이 아니라면 행정실무사(교육공무직)라도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학생수 대비 정해진 정원이 있기 때문에 아마 이 학교에 행정직이나 행정실무사가 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학생수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묵히 일을 한다. 그나마도 요새는 세월이 좋다고 많이 개선된 것이고 그 옛날에는 작은 학교에는 정말 실장 혼자서 모든 일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학교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다.) 100% 타의적으로 소수가 되어버린 행정직의 위치. 그리고 그 행정직들의 수장. 참 씁쓸하다.


*그리고 항상 이런 사항을 말할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유는 이것이다. 학교의 최고관리자는 교장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최고관리자가 교장이고, 교장은 교사, 교감 출신이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대해서는 나는 중립이다. 왜냐하면 이건 결국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교무실과 행정실을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잘 어우르는 사람이 오면 굳이 교무실과 행정실이 서로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학교를 잘 운영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출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늘 교사들 편만 들고, 교무실(교감) 위신만 세워준다면 불만이 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행정실장이 행정실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교무실의 수장인 교감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하는 이유. 바로 결재선이다. 이는 교장선생님이 온전히 근무하고 있는 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행정실에서 업무 관련 결재를 올릴 때 교감선생님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될 사항이 아니라면 굳이 교감선생님을 결재선에 넣지 않고 바로 교장선생님께 결재를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교장선생님이 부재일 때 일어난다. 교장선생님이 대결 권한을 교장선생님께 주기 때문이다. 물론 회계적인 것은 필수 결재선에 교장선생님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대결 권한을 누구에게 주느냐와 상관없이 교장선생님이 무조건 결재하셔야 해서 상관없지만, 행정실에서 회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 운영위원회, 보안, 재산, 물품, 기록물, 재난, 에너지, 시설물 유지 등등 수많은 업무를 하는데 교장선생님 부재 시 교감선생님이 대결을 하게 된다. 나는 항상 이것에 의문을 가져왔다. 교무실 업무는 당연히 교감선생님이 대결하는 게 맞지만, 행정실 업무까지 왜 교장선생님 부재 시 교감선생님이 대결을 하는 것일까? 행정실장이라는 행정실 수장이 엄연히 있는데 말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으로 업무를 보았을 때 행정실 업무에 대해 교감선생님이 행정실장보다 더 잘 알리가 만무한데 말이다.


게다가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복무 결재선이다. 이 역시도 교장선생님이 계시면 교장선생님께 결재를 맡고 나가면 되는데, 교장선생님이 부재 시 행정실에서는(행정실장 포함) 교감선생님에게 결재를 맡고 나간다. 그런데 역으로 교감선생님이 행정실장에게 결재를 맡고 나가는 일은 없다. 교장선생님이 없으면 교육장에게 결재를 맡고 나간다. 이 하나만으로도 사실 행정실장이 교감과 동등한 위치가 아닌 아랫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느낌이 아니라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른다.




 과연 진짜 행정실장의 위치는 어디일까?


동사무소, 면사무소와는 다르게 교육현장은 이원조직, 아니 지금은 삼원 조직(교사, 행정직, 교육공무직)이라서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불가피라는 것이 자꾸 행정직에게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느낌 역시 불가피한 걸까. 상하관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잘 협력해서 학교를 학생들의 교육에 최적화된 곳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 행정직들이 나이에 밀리고 경력에 밀리는 것도 모자라 위치에서도 밀린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이러한 모든 상황에도 나 스스로 내 자리에 대해, 위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이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사람이 쓴 글 중에서 (아마 교사일 듯) 행정실에서 돈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처럼 행동한다고, 행정실 눈치 보느라 아주 죽을 맛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역시 모든 건 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다.)



이 매거진의 취지가 미래의 교육행정공무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는데 쓰면 쓸수록 교육행정직으로서 느끼는 부조리함이나 불가피함만 기록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요즘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힘겹게 시험에 합격해 들어와서 시보기간도 다 못 채우고 의원면직을 선택하는 후배들을 보면 그 누구도 이런 현실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런 선택을 한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늘 존재해 왔다. 실제로 이 글을 절반쯤 썼을 때 계속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깊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발행을 결정한 이유는 교육행정직 공시생이나, 이제 갓 교육행정직으로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나, 혹은 자녀가 교육행정직 시험을 보길 원하는 부모님들 등등 그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행정실장이란 그 누가 뭐라 해도 행정실의 수장이다. 그리고 난 모든 행정실장님들을 응원한다. 우리는 앞에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도 있기에 학교가 이상 없이 운영된다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교육행정직 공무원이다. 나는 교육행정직이다.



 

이전 03화 딸깍 딸깍 딸깍 실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