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Apr 21. 2021

딸깍 딸깍 딸깍 실장님~!

점심식사를 하고 속이 더부룩해 학교 운동장이라도 걸어야겠다 싶어서 신발을 갈아 신고 나선길.

운동장을 반쯤 걸었을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선생님 한분과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울분이 치솟는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선생님의 이야기는 다소 듣기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장님은 그러지 마 정말"

"?"

"아니 왜 주무관님들은 6급 실장님만 되면 일을 안 하려고 그래?"

"...?"

"6급까지는 실무자 아니야? 5급은 사무관이니까 기관장으로 실무에서 벗어나고 관리업무를 한다고 쳐도 6급은 아니지, 다른 일반직(일반행정, 나는 교육행정이다.)들은 6급도 실무자인데 유난히 교육행정직들만 6급 되는 순간부터 일을 안 하려고 해"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 같은 일반직도 아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조금 어이가 없었고, 사실 완전 틀린 말이 아니라 부정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맞아요 맞아요! 하면서 공감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래서 내가 꺼낸말을 이러하다.


"사실 6급 정도면 경력도 어느 정도 됐고, 큰 학교에 실장님이니까 실무를 할 위치는 아니죠.ㅎㅎ"


이 정도 했으면 그냥 넘어갈 만도 한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에서 도대체 일반직들에게 뭐가 쌓인 게 그리 많으신지 더 흥분하신다.


"아니 요즘은 옛날이랑 다르잖아, 그전에는 퇴직 직전에나 6급 달고 5급 사무관 달면 정말 출세한 거잖아, 그런데 요즘은 뭐 근속연수만 차면 착착 승진하고, 한 10년이면 6급 달지 않아?"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만약 이 선생님이 일반직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에요 선생님, 요새 정체가 심해서, 저는 7년 만에 7급달았어요. 앞으로 6급 달려면 10년은 더 일해야 해요. 7급 10년 해서 6급 달면 정말 잘한 거고,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이게 무슨 의미 없는 핑퐁인가.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데 예민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나는 어영부영 이야기를 끝맺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50전에 6급 달잖아~ 일을 해야 하는데, 6급까지는, 그러니 7급들만 죽어나는 거야"



근무를 하다가 딸깍 실장님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6급이 되는 순간 모든 실무에서 손을 놓고 정말 결재만 하는 분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에 대해 나 역시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빨리 6급이 되어 실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대화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실무자이고, 언제부터 관리자가 되는 걸까?

교사들 같은 경우에는 평교사, 교감, 교장으로 딱 나뉘어있기 때문에 평교사로 있을 때에는 수업도 하고 그에 수반하는 행정도 하는 실무자이고, 교감이 되어서부터는 관리자 역할을 한다. 수업도 안 하고, 행정도 본연의 업무만 할 뿐 대부분은 선생님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행정직은 다르다. 우리는 급수체제이고, 같은 급수여도 자신이 소속한 기관에 따라 실무자가 되기도 하고 관리자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육행정 6급은 일반 학교에서는 실장이나 부장으로 행정실에 관리자가 되고, 교육지원청에 가면 팀장으로 중간 관리자가 되지만, 도단위 교육청에 가면 관리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실무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위치(실무를 한다고도 안 한다고도 말하기 어정쩡한)에 서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몇 급까지는 실무를 해야 하고, 몇 급부터는 관리자로서 실무를 안 해야 한다고 딱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6급 미만 실무자들은 꿈꾼다. 빨리 6급이 되어서 실무를 안 하고 싶다고. 이런 이상한 소망은 왜 생겼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모신 6급 실장님들도 실무는 많이 안 하셨다. 대부분 7급 부장님들이 거의 모든 업무를 다 총괄하셨고, 밑에 8-9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정실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사실 자신의 사무분장에 있는 일만 하는 8-9급도 자신에 일에 대한 부담이 많을 텐데, 그 모든 걸 총괄해야 하는 7급 부장님의 부담은 얼마나 클까? 자연스럽게 나도 빨리 6급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모든 6급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6급이 되어서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셔도 여전히 행정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업무를 관리 감독하시고, 솔선수범하시는 분들도 있다. 내가 처음 모셨던 실장님은 정말 사명감이 투철하셔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꼼꼼히 검토하시고 법준용을 칼같이 하셨었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실장님들이 모범적인 것이지만, 이런 분들에 뒤에는 꼭 "피곤한 관리자" "깐깐한 관리자"라는 듣기에 딱히 좋지 않은 뒷말이 따라다닌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요새 우리 지역에는 젊은 6급 실장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분명 딸깍 실장님도 계실 것이고 나이가 젊은만큼 7급 실무자의 일을 덜어내어 본인이 관리자이자 실무자를 겸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사실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 6급 미만일 때 어떤 공직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현재 공직생활을 그렇게 해나가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떨까? 


머나먼 이야기다. 앞으로 10년, 혹은 더 걸릴 수도 있다. 10년 뒤면 내 나이 40대 중반이다. 흔히들 7급이 가장 일을 많이 하고, 또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나 역시 10년간 정말 죽어라 일을 하다 보면 6급이 되는 순간 두 손 딱 놓는 딸깍 실장님이 될까? 두고 볼일이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다. 솔직한 말로 6급이 되어서도 죽어라 일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의 사무분장에 있는 일까지 직원들에게 떠미는 실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PS. 마지막으로 6급이 되기까지 십몇년을, 혹은 이십 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온 모든 분들이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신규 시절, 어떤 분이 말씀해주시길 "윗사람이 아무리 한심해 보여도 한자리를 20-30년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은 대단하구나 라는걸 언젠가 깨닫게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요새 조금 느끼는 바이다.

강산이 두 번 세 번 바뀌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회의감과 권태기를 겪어왔을까. 아직 10년도 안 되는 경력에도 난 얼마나 많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던가. 언젠가 6급이 된 내가 신규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겠지.


"한 자리를 그 오랜 세월 버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 순간 내가 딸깍 실장님이 아니길 바란다.



 

이전 02화 신명 나게 한번 놀아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