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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18. 2021

육아하기에 최고의 직업인 가요?

어딜 가나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공무원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와, 애들 키우면서 그만한 직업 없죠~좋겠네요."


오늘은 그래서 진짜 공무원이 육아하기에 최고의 직업인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고자 한다.



육아하기에 최고의 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하나 말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모든 이야기는 상사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와 근무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좋겠고, 지금의 저는 그중 최상의 근무조건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육아시간을 쓴다. 육아시간이란 만 5세 이하의 자녀를 가진 공무원은 24개월 범위에서 1일 2시간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현재 아이들의 등원을 위하 매일 아침 1시간씩 쓰고 가끔 아이들로 인해 어떤 사안이 생기면 오후에도 1시간씩 쓴다.


하지만 우리 다온이가 6살인데 내가 육아시간을 쓰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금의 학교로 발령 나기 전에 근무했던 전 학교에서 한 달 썼고 지금의 학교에서는 계속 쓰고 있다. (다온이는 6살이지만 아직 만 5세, 즉 60개월이 안되어서 다온이 이름으로 쓰고 있다.) 둘째 아이 라온이를 낳기 전 학교에 실장님은 참 좋은 분이셨지만 여성이 육아를 위해 누릴 수 있는 복지에 대해서는 대놓고 자신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당연히 쓸 수 없었다. 모든 회사생활이 그렇듯 결국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육아휴직을 했었다.

다온이 낳고 한번 라온이 낳고 한번.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할 예정이지만 일단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입사 전 면접에서부터 결혼할 거냐 애는 있냐 의 질문 등으로 아예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을 사전 차단하려는 사기업에 비하면 비교적(이게 중요하다. 사기업에 비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물론 최대한 내가 속한 기관에 피해가 덜 가도록 때를 잘 맞추어야 하고, 상급기관의 인사발령에도 차질이 없도록 미리미리 협의를 잘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주말을 아이들과 함께 한다.  

며칠 전 아는 엄마와 놀이터에서 만났는데 그날 자신이 휴무날이라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와~좋겠다."라고 하는 말에 그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다온이 엄마는 주말마다 아이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나는 그러지를 못하니까 이렇게 휴무날에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하는 거야"


그 말에 아차 싶었다. 그랬다. 근무하는 내내 일이 많은 특정시기를 제외하고, 교육지원청에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주말에 출근한 적이 없었다. 내가 특별히 일을 잘한다거나 혹은 업무가 비교적 쉬운 거만 맡았다거나 한건 아니다. (복직하고서는 한 달 전후로 계속 야근했었다. 야근하다가 이해 안 가서 울고, 그치고 또 일하고, 그래도 안되면 집에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울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닌 것도 아닌데 창피하지도 않았나. 싶다.)


가끔 진짜 일이 많아서 야근하거나, 낮시간이나 주중에는 업무상 전화도 많이 받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맡은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일부러 주말에 나와서 조용히 집중해서 일하는 분들도 있는데 난 두 경우다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근무시간에 화장실 안 가고 할 일을 다 하는 편이다.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학교 근무자들은 비교적 일찍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다.

학교의 경우 늦어도 5시 전에 퇴근을 하기 때문에 운전이 가능하다면 아이들을 다섯 시 전후에 데리러 갈 수 있다. 사실 다섯 시라고 하더라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일찍 데리러 오는 건 아니지만 맞벌이하는 엄마 기준에서 5시는 굉장히 빠른 것이다. 보통 엄마들은 6시에 퇴근을 하니까. 그런데 나의 경우는 전혀 해당이 없었다. 일단 그 전에는 운전을 못해서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 기다리고 버스 타고 가다 보면 40-50분은 훌쩍 지나가기 때문에 항상 5시 4-50분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지금은 운전을 할 수 있는데도 근무지가 거주지에서 4-5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칼퇴를 해도 빨라야 5시 3-40분, 늦으면 6시에 데리러 간다. 보통 다온이를 먼저 데리러 가기 때문에 라온이는 거의 6시쯤 데리러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에는 다온이 라온이 보다 더 늦게 가는 아이들이 많다.



이제 현실을 말해봐야겠다.


*육아시간은 아마 쓰는 사람보다 못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나의 동기 언니 중 한 명은 전 근무지에서는 육아시간을 오후에(그러니까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했다.) 썼는데 발령이 나면서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육아시간을 못쓰고 있다. 젊은 실장님이라고 해서 당연히 쓸 줄 알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못쓰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시간이라는 제도가 이제는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결재권자의 나이와 성향에 따라 쓰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육아휴직은 웰빙 공무원이 될 것이냐 야망 공무원이 될 것이냐의 중요한 지표이다.

내가 둘째 아이 라온이 출산을 앞두고 육아휴직 1년을 신청하자 당시 같이 근무했던 부장님이 물으셨다.


"진짜 1년 휴직할 거야?"

"네?"

"진짜 1년 다 휴직할 거냐고"

"네"

"진짜...?"

"..."


그분은 지역교육청에서 인사를 보시다가 발령 나서 오신 분이었고, 그 당시 8급 고참인 내가 곧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육아휴직을 1년이나 한다는 것이 굳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나는 7급 승진을 위해 8개월 만에 복직했다.)


사실 이런 케이스가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 보면 대부분 육아휴직은 6개월 정도로 하고, 출산휴가만 하고 바로 복직하는 사람도 정말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근무평정이나 인사고과를 할 때 현직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육아휴직 한 사람보다 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오죽하면 육아휴직하면 바닥으로 깔린다는 말도 들리는 것일까.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이지만 육아에 전념한 이후 다시 본연의 나로 돌아와 내 갈길을 가고자 하는 부모들의 발목을 잡는듯한 느낌은 나만 받는 것일까.


*주말, 그건 씹어먹는 건가요?

법적으로 공무원은 주말을 휴일로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기관에 따라 업무에 따라 다 다르다. 그나마 법적으로 보장이 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복 받은 줄 알라고 하지만, 주중 인정받을 수 있는 최대 초과근무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하는 공무원분들도 많고, 소위 월화수목금금금에 해당하는 분들도 정말 많다. 주중 늦저녁에 도교육청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올려다본 도교육청이 너무 환해서 놀랬던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안 좋은 점 같은데, 지방교육행정직은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발령을 말하는 것이다. 직렬 특성상 2-3년에 한 번씩 속한 도내에서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나는 8급 승진하고 주거지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곳으로 발령 나서 다온이 임신기간 내내(막달 빼고)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7급 승진하고 주거지에서 4-50분 거리의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출퇴근만 2시간. 기름값은 한 달에 2-30만 원 정도 드는듯하다. (월급은 안 오르고 기름값만 오른다.) 항상 2년을 꽉 채우고 나면 어디로 발령이 날지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한편 발령 나는 게 다행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로 사이가 어색해지거나 정말 틀어진 경우에 그 근무지에서 계속 얼굴 보면서 근무해야 한다면 얼마나 곤욕일까.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이 글의 요지는 애 키우는데 이 직업이 좋으냐 안 좋으냐이니까 엄마로서 말하자면 정말 가장 큰 단점이다. 주거지로부터 더 멀리 발령 날수록 주변에 아이를 부탁해야 하는데, 주로 희생양이 양가 부모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의 도움도 못 받는 경우에는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8시도 되기 전에 기관에 갔다가 6시 넘어 가장 늦게 귀가하는 루틴을 아이에게 떠밀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처해본 사람이 아니면 과연 누가 알까? 씁쓸하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모든 건 애초에 임용될 때부터 나는 웰빙 공무원이다! 하고 진로를 정 한 사람이라면 다 필요 없는 이야기가 된다. 왜냐면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내 아이를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복지를 최대한 누리면 되니까.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지만) 내 주위에도 아이 한 명당 육아휴직 2년 3년을 꽉 채워 쓰는 사람도 여럿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한다. 내 아이에게 소홀해지지 않으면서 기관의 상급자나 동료들 입방아에 "너만 애 키우냐"라는 말로 오르내리지 않도록. 정말 녹록하지가 않다.



"육아하기에 최고의 직업인 가요?"

"It's up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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