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Oct 14. 2022

리더의 조건

마우스 클릭, 그렇게 어렵더냐.

실무자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리더, 즉 상사는 어떤 사람일까? 잦은 회식을 지양하는 상사, 복지성 복무를 쿨하게 인정해주는 상사(육아시간, 가족돌 봄시 간 등등), 출근은 10분 늦게 퇴근은 10분 일찍 해주는 상사 등등 여러 유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결재를 칼같이 하는 상사"이다. 언뜻 생각하면 약간 봉창 두드리는 듯한 생뚱맞은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이다. 일전에 내가 모셨던 최고 상사는 하루에 결재를 딱 두 번만 했다. 점심 먹기 전 한번, 퇴근하기 전 한번. 도대체가 계약을 하거나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아침에 오자마자 계약을 하겠다는 내부결재 공문과 재정 문서 수십 건을 눈 빠지게 올려도 절대 점심시간 10분 전까지는 결재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의 가장 최악인 점은 사안이 너무 시급해서 사무실로 달려가 보면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음에도 결제창이 아닌 다른 창들을 몇 개씩 띄워놓고 소위 "딴짓"을 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오 마이 갓.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솟아 정수리로 터져 나올 것 같아도 나는 일개 실무자일 뿐이기 때문에 참는 것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꾹꾹 참고 이러이러한 결재를 올렸는데 상급기관에서 빨리 보내달라 하니 결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나오면 이렇게까지 했으니 결재를 하겠지? 하는 희망으로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결재는 나지 않았다. 겨우 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괜히 같은 사무실에 있는 분들만 어안이 벙벙해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시 그분의 사무실로 쫓아 가 "이거 근무태만 아닙니까!!!!!!!!!!!!!!!!!!!!!!"하고 복식호흡으로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의 근무평정이 그분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말 남의 돈 빌어먹고 살기 개떡 같다는 걸 뼛속까지 체감했다.


다시 한번 보살이 된 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분의 사무실로 가서 말씀을 드렸다.


나: 아까 제가..

그분: 응? 내가 결재 안 했나?

나: 네.. 결재 좀 꼭 부탁드립니다.

그분: 알았어~


이렇게 내가 내 한계를 두 번 정도 넘어서면 그토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무도 절실하게 기다린 결재가 난다. 하지만 그렇게도 원하고 원했던 결재를 득하고도 슬픈 건 이제야 내가 본격적으로 업무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가 공문을 상신하였을 때 결재만 딱 났으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도 남을 시간이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런 일이 매일매일 일어난다는 사실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우리 학교에서 실장으로 근무하게 된 이후로 일단 출근을 하면 결재부터 싹 한다. 실장이긴 하지만 실무도 겸하고 있기에 할 일이 산더미 같아도 결재부터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일을 제시간에 추진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의 근무지에서 근무할 시간이 어느새 근무해온 시간보다 많이 짧아졌다. 언제까지 여기서 실장이라는 직위로 근무하게 될지, 다른 근무지로 옮기게 된다면 실장이 될지 부장이 될지 모르겠지만 앞에 나열한 모든 유형과 더불어 결재도 칼같이 하는 상사를 꼭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결재를 할 때 담당자가 공문에 1부터 10까지 자세하게 써놨다면 제발 굳이 자기 앞에 담당자를 세워놓고 다시 1부터 10까지 직접 구두로 설명하게 하는 분도 피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손꼽히는 높은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나. 제발 근무도 스마트하게 하자. 읽어보면 무슨 얘기인지 다 이해가 갈 텐데 그걸 굳이 담당자 입으로 듣고 싶은 이유는 뭘까?! 그 심리는 대체 뭘까!? 듣고 싶은 욕구가 생겨도... 제발 참아주길 바란다. 질문은 이해 안 갈 때만.


사실 이건 나의 소망을 비추어 나에게도 하는 다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사이지만 내가 그만두지 않고 버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실무보다는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자리에 가게 될 테니 말이다.


한 줄 요악: 잊지 말자. 지금 다짐.
매거진의 이전글 하품에 무너진 멘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