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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30. 2022

하품에 무너진 멘털

내부강사

https://brunch.co.kr/@jsmbja/531

6개월 만에 또 나는 내 신세를 고달프게 했다. 시작은 한통의 전화였다. 늘 시작은 한통의 전화이다. 이쯤 되면 연수원의 특정 앞번호를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네 안녕하세요."

"저는 **교육연수원의 **지부 연수담당자 ***주무관입니다."

"아.. 네..."

"저희가 9월에 세입 강의가 있는데, 저번에 연수원 본부에서 같은 강의를 하셨다고 들어서요. 혹시 저희도 해주실 수 있나요?"

"아하하하...."

"저번이랑 똑같이 해주시면 되고 인원도 열다섯 명 안팎이라 큰 부담은 없으실 거예요."

"아... 네.... 언제라고요?"


그렇게 두 번째 강의 일정이 잡혔다. 사실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그냥 하라니까 하는 건지 내 마음을 나도 도통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수락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을 당시 7월이었고 강의는 9월 말이었기에 조금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더 마음 편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일상은 바쁘고 시간은 쏜살같다. 바쁜 일상을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 보니 어느새 강의를 해야 할 날이 다가왔고, 학창 시절에도 잘하지 않던 벼락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번 했던 강의라 다행히 큰 부담 없이 준비를 마쳤고 몇 번의 자체 리허설을 끝내고 드디어 강의 당일.


줌 강의지만 혹시나 몰라서 복장도 제대로 차려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실시간 화상 연수였다. 그런데 입장하는 인원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열다섯 명 내외라고 안내를 받았는데 금세 스무 명이 넘어가더니 삼십 명을 지나 사십 명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 마이 갓. 평온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불안해지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하면 손톱을 뜯는 버릇이 있는데 어느새 한쪽 손톱이 너덜너덜 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연수담당자의 강사 소개가 이어졌고 덜덜덜 떨리는 손과는 달리 애써 태연한 척 강의를 시작했다.


제대로 될 리가 없는 시작이었다. 강사라는 사람이 수강생 인원에 이미 정신적으로 압도당했으니 수없이 반복했던 멘트도 하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계속 말은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20분이 흐른 시점, 내 파워포인트만 바라보다가 문득 그래도 수강 의지가 있는 분이 한분이라도 있으면 그분을 위해서라도 그분을 의지해서 첫 시간을 잘 마무리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실수였다. 결정적인 실수.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명의 하품하는 수강생들이 보였다. 겨우 형태만 유지하던 멘털이 바사삭 무너졌다. 진짜 가루만 남았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긴 했는데 말이 안 나왔다.


1초 2초.


하하하. 이상하고도 어색한 웃음을 괜히 지어보고

이론 설명을 통으로 날리고 예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명의 의아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어차피 시간이 모자라면 예시를 설명하면서 이론을 곁들일 생각이었기에 강행했다.


다행히 그 와중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신 분들 덕분에 40분과 50분 사이 어딘가에서 마무리를 했다. 화면을 끄고 나니 절망이 밀려왔다.


수강생 중에는 하필 재수강하시는 분도 계셨고

(제일 죄송) 소싯적에 같이 근무했던 분(6급 실장님이 왜 세입을..?)도 계셔서 더 창피하고 좌절스러웠다.


두 번째 시간은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원고도 다시 보고 화면도 점검했지만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멘털 부스러기가 날아가려 하는 그 순간 심호흡을 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더 이상 최악도 없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내 정신과 심장만 진정시키자는 마음으로 두 번째 시간을 시작했다.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목소리도 각이 잡혀서 수강생분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기세를 몰아 한참 강의를 하는데 너무 순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특유의 푼수끼와 애교가 질질 흘러나오려는 순간 또 심호흡. 겨우겨우 마쳤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시간!

마지막 시간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한 시간을 하나 30분만 하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간에 세입의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가 콕 박혀있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설명도 순조롭게 되었고 뜬금없는 수강생들이 제일 싫어하지만 강사 입장에서 안 할 수 없는 질문시간도 일부 수강생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잘 지나갔다.


그렇게 초보강사의 두 번째 강의도 어찌어찌 잘 지나갔다. 그런데 항상 삶은 예고 없이 흘러간다고 이 강의 하루 전에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실장님 **연수원 본원.."


이쯤 되면 행운의 편지 수준이다. 이번 강의평점이 거지처럼 나오면 철회 전화가 오려나.. 고인물로 무채색의 삶을 탈피하고자 도전해본 사내강사이지만 할 때마다 내 밑바닥만 확인하는 것 같다. 그것도 얼굴 내놓고.


마스크라도 쓰고 할걸.


무엇이 남았을까?

누군가 나에게 돈 벌었잖아~~ 근무시간에~~

라고 했지만 돈을 생각했으면 사실 안 했다.

내가 쥐꼬리 같은 월급 받아 살아도

부수입 없어도 삶에 큰 지장은 없으니까.


첫 강의는 평점이 좋았다 하여(진실 여부는 모르겠음. 담당자가 더 시켜먹으려고 한 말일지도) 강사비 입금되었을 때 뿌듯했는데 이번에는 그저 그럴듯하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재수강하신 그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난 뭐가 그리 불만족스러운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무거운 마음이 빨리 떨쳐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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