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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21. 2022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법과 규칙, 매뉴얼에 따라 어떤 사안을 집행하고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이 너무 잔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까지 점심 먹고 잠깐이지만 커피 마시며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하하호호 웃던 직원이 오늘에 와서 어떤 악성민원에 타깃이 되었을 때, 대부분은 방관자가 되고 관리자는 처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당사자의 잘못 유무를 떠나 나는 내가 소속되어있는 기관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내가 속해있던 기관이 종합감사를 받고 있을 때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감사대상이 되는 당사자가 감사기관에 없으면 전화로 어떤 사안에 대해 질의하고 응답을 하지만, 그 전에는 기관을 옮겼어도 내가 행한 것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지면 의례적으로 찾아가곤 했었다. 


나 역시 휴직 중이었지만 감사라는 것을 알고도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 있는 것이 영 불편해 결국 손목에 아대를 찬 상태로 찾아갔었다. 가자마자 접한 소식은 내가 착오한 어떤 부분 때문에 어떤 직원분이 받았던 임금을 뱉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지러웠다. 그 금액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도 커서 더 어지러웠다. 그런데 그때 당사자인 직원분이 다가와 이런 말을 건네셨다. 


"괜찮아, 그 부분은 나도 몰랐고 주무관님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어. 몰랐는데 어떡해. 괜찮아요 괜찮아."


그때는 그저 그 상황을 그분의 넓은 아량으로 모면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었다. 사유서를 쓰긴 했지만 사실 사유서보다 더 중요한 건 환수 절차와 그분과의 관계였는데 그 두 가지가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내가 관리자 자리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그 당시 나는 굉장히 운이 좋게 착오를 착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을 만났던 것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고마움에 열 배, 아니 혹은 백배 정도를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다시 느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드문 경우이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그런 분을 마주할 수 없었고, 되레 같은 상황 속에서 착오라 할지라도 책임을 지라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이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내가 컴퓨터가 아닌 것이, 로봇이 아닌 것이 한탄스러웠다. 



그 많은 일들을 수년에 걸쳐 겪을 때 같이 있었던 관리자들을 떠올려본다. 어차피 일은 일어났고 우리는 해결을 해야 하니 자책하지 말고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서 내가 잘 알아보고 처리하랬잖아 하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한 관리자, 관리자인 내가 이것까지 신경 써야 하냐며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한 관리자까지 참 다양하게도 경험해왔다. 


첫 번째 유형의 관리자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관리자의 너무 깊숙한 개입도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가 필요하다.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하지도 말고 아예 모르쇠 하지도 말고.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가장 훌륭하고도 잔인한 관리자는 바로 매뉴얼대로 처리하는 관리자이다. 어떤 편법이나 꼼수도 부리지 않고 가장 매뉴얼답게.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어떤 직원이 좋은 취지를 갖고 과하게 액션을 취해 문제가 되었다. 곧바로 민원이 폭주했고 관리자는 매뉴얼대로 처리했다. 우회하거나 감싸주거나 그래도 한솥밥 먹던 사이니 최대한 같이 가고자 하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마치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 사안은 일어났고 매뉴얼대로 처분되었다. 


이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관리자들이 그 직원을 버렸다는 것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나 조차도 그 소식을 듣고 같이 욕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관리자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매몰찰 수 있는지에 대하여 또한 이래서 몸 바쳐 마음 다해 충성을 해봤자 우리는 소모품이고 대체품일 뿐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회계 관련 강의를 듣다 "회계의 경직성"이라는 용어를 듣게 되었다. 회계는(즉 돈은) 온정과 동정과 감정이 섞여서는 안 되고 오로지 법과 규칙,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반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서는 더 엄격하게 이 경직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사님은 열변을 토했다.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비단 회계에 그치는 개념일까. 직장인으로서의 복무, 기강, 상하관계에 있어 어쩌면 당연한 논리였다. 이전에 나의 열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음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잔혹하다고 느낀다. 어떤 당사자가 어떤 처분으로 인해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려도 매뉴얼이라는 칼날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 때로는 나를 향하지 않았음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섭다. 오늘도 칼을 휘두른 자는 매뉴얼 뒤에 서있고 그 칼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은 모두의 외면 속에 스러져가는 하루가 지나간다.


그래서 매뉴얼대로 하지 말라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당연히 매뉴얼대로 해야 하지만, 일처리에 감정이 섞이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느끼는 복잡한 심경을 풀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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