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홍차
행복은 가능성에 대해 가만히 상상하는 일이다.
그 현실이 오지 않아도, 가끔은 그 비어있는 토막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구멍이 난 상자가 양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불행은 지나치게 예측하는 것이다.
그 예측의 실현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그런 요소들이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 현실이 재앙이 된다. 이 재앙은 두려워하던 그 일이 일어난 다음에도, 혹은 일어나지 않은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그는 그의 참혹한 현실과 그가 느끼는 감정에 어느정도의 책임이 있다. 그 현실을 구성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건 희망이기도 하고, 단 하나 가지고 있던 희망을 부숴버리는 절망이기도 하다. 나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면 더 도망칠 데가 없는 걸. 그치만 ‘니가 만든 거야’ 라는 말이 ‘니가 바꿀 수 있어’ 로 들리면 그때부터는 같은 사실이 또 희망이 된다.
가장 쉬운 건 내가 바꿀 수 있는, 나를 구성하는 환경을 먼저 바꾸는 일이다. 홍차를 한 잔 마신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