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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피캇 Aug 26. 2023

2023년 7월 월간 서가

1. 박경리, 일본산고, 에세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일본론.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나라이지만 특이하고 강한 정서적 이질감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문화적 차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다. 다름은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일본 문명 특유의 이질성은 인간 본질을 흔드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일본 문명의 어떤  다름은 존중할 수 없는 다름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의 후손이라 여기고 자기네 임금을 하늘의 황제라고 부른다. 거만한 중국문화가 자기 황제를 천자라고 불렀으니 일본은 중국을 아들로 본 셈이다. 이는 자긍이나 상징적 표현이 아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신들의 나라라고 여긴다. 다양한 신을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인간 위의 존재, 신이라고 생각한다. 군주제가 아닌 오늘날에도 일본왕은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하는데,  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신적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고통을 당해놓고도 자기네 정치지도자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왜곡된 애국심을 자극하는 유치한 감정적 발언에 눈물을 쏟는다. 자신들은 세계를 지배해야 마땅하지만 외부의 적에 의해 정당한 권리를 강탈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전쟁의 책임자들이 피해자로 둔갑하고 오로지 원폭의 고통에만 몰입하여 복수의 이를 갈도록 분위기가 조성된다. 일본 특유의 전체주의다. 개인의 삶을 무시고 국가나  조직의 성공에 견마지로를 맹세하지 않으면 할복을 강요했다. 할복을 그 자체로 명예로움으로 존중하는 기괴한 생명경시 사상은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위력적이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철두철미 반일작가입니다." 일본 자체나 일본인을 차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만들어온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 난센스"적 특징의 말그대로 기괴한 문화를 반대한다.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주류를 형성하는 이들은 여전히 '신들의 나라'라는 허상에 빠져 역사를 왜곡하고 새로운 군국주의를 꿈꾼다. 일본 우익은 여전히 "조선 만주 대만 등을 반환하였다고 표현하지 않고 잃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이 국가적으로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사죄하는 자가 여전히 분노와 한을 잊지 못한 피해자에게 '뭘 더 어쩌라는 거냐, 돈 줬잖느냐' 라고 하는 것은 보상의 규모를 차치하고라도 정상적인 인간의 관계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은 이 책을 썼다. 일본의 의식과 문화의 기괴함이 신비로움으로 포장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http://aladin.kr/p/2zovl



2. 신의 아이 백색인신들의 아이 황색인, 엔도 수샤쿠, 소설

 소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초기 소설. 두 개의 소설을 하나의 책으로 였었다.

[신의 아이 백색인]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앞잡이 노릇을 하는 프랑스인 매국노의 시점에서 쓴 소설이다. 일본인인 엔도가 전쟁 피해국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설정을 했는 지 궁금하다.

 신 존재를 부정하고 선의 가치를 버린 주인공은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독립투사를 고문한다. 인간은 곧잘 자기 정당성을 주장할 때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틀린 것으로 매도한다. 타자가 틀리면 자신이 옳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주인공이 박해하는 독립투사는 다름 아닌 옛친구 쟈크다. 쟈크는 가톨릭 수도자였다. 그는 인간 존중과 선의 절대적 가치를 믿었다. "그리스도인은 증오 때문에 싸우지 않아. 정의..." 주인공은 그의 말을 가로막고 비아냥거린다. '영웅적 죽음으로 정의나, 선의 가치를 선포하고 싶은가? 그런건 포장되고 꾸며낸 것일 뿐이야. 네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다 죽으면 영웅이 될까? 아니야. 히틀러는 아무도 너의 죽음을 모르게 할 것이야. 인류 역사는 항상 그래왔어. 선을 추구하는 자들 대부분이 익명으로 죽었지.'  주인공은 선악의 경계를 교묘히 뭉그러뜨리며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인 것처럼 위장하는 기회주의자다. 전쟁은 어떻게 끝날까? 자크도 주인공도 소멸한다. 세상은 그들 없이 다시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무엇을 남겨 세대를 이어갈까?


 [신들의 아이 황색인]은 일본으로 온 유럽 선교사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도 2차 세계대전이다. 엔도의 문제 의식은 환속 사제인 듀랑의 심리를 타고 이야기를 흐른다. 그는 두 번 배신한다. 첫 번째는 순결을 버린 일이고, 두 번째는 후배인  브로우 신부에게 누명을 씌운 일이다. 성직자로서 교회에 의탁하던 듀랑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듀랑은 기구한 사연의 기미코라는 여성을 도우려다가 사랑도 없이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하게 된다. 그 이후 듀랑의 여생은 '배신'이라는 단어  아래 놓이게 되었다. 복음을 책임져야 하는 자에서 기미코를 책임져야 하는 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시대의 판단으로 배신이다. 교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신자들의 손가락질을 당했다. 교회는 그를 다시 품어줄 시스템이 없다. 듀랑의 비참한 후회와 삶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교회가 사랑할 대상이 아니다. 교회는 그를 아버지를 떠난 탕자로 여기지 않고 예수를 배신한 유다로 여긴다. 다만 후배인 브로우 신부는 여전히 그를 품어준다. 남몰래 생활비를 지원하고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러나 소외의 고통에 시달리는 듀랑에게 브로우의 사랑마저 삐뚤게 느껴진다. 듀랑은 점점 더 고통에 허덕이고 그렇게 끝모를 나락으로 몰리자 자살을 생각한다. 유다 이스가리옷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자신이 죽으면 기미코도 죽는다. 기미코마저 배신할 수는 없다. 아니 , 사실은 기미코가 그를 생존케 하는 마지막 끈이다. 기미코는 묵묵히 헌신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은 8년을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문화적 벽을 느낀다. 듀랑은 고통에 억눌려 살고 기미코는 생존을 위해 산다. 듀랑 신부의 고통은 역설적이다. 하느님과 교회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받는 고통이다. 무한한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못잊는 건데 고통을 얻는다니... 그 고통은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없다는 두려움, 이 고통을 해결할 방법이 유다의 방법 밖에 없다는 외롭고 쓸쓸한 두려움이다. 그런 듀랑을 보고 기미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째서 하느님과 교회를 잊지 못하나요? 잊으면 되잖아요. 당신은 교회를 버렸잖아요?그러면서 왜, 언제까지 그것에만 매여 있는 거죠? 오히려 '나무아미타불"이라고만 하면 용서해 주는 부처님쪽이 얼마나 좋은지."

 듀랑에게 이 말은 생각치도 못한 역발상이다. 하느님을 잊으면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느님을 포기하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하느님을 포기하면 예수를 닮은 이타적인 선행에 의무적으로 투신할 필요도 앖다. 하느님을 포기하면 교회의 외면에 슬퍼할 필요도 없다.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교회만 포기하면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고통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가톨릭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선포하던 당시의 사상이 이 두 가지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했겠지만. 좌우지간 그래서 듀랑 신부의 선택은 무엇이고 그 선택을 교회는 어떻게 판단할까? 듀랑의 선택은 오로지 듀랑에게만 탓이 있을까?

http://aladin.kr/p/JFSL9



3.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최형선, 과학 에세이

 진화생물학 교양서. 책으로 읽는 동물의 왕국. 재미있고 알찬 지식이 많다. 그러나 과학 서적인데 챕터 마지막마다 의인화와 억지로 짜낸듯한 교훈? 따위의 사족이 있다.


4.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신시아 브라운•크레이그 벤저민, 과학적 인문학

 빅히스토리를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버린 인물 중 하나인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역작. 우주의 시작부터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흐름은 여러 차원의 그물로 엮여있다. 빅히스토리는 이 복잡한 그물의 현재와 과거를 거시적, 미시적 관점으로 두루 조망한다. 인류의  지식은 양자세계와 거대우주, 시간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흐름을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주의 거대하고 세밀한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과 생명과 모든 원자와 에너지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인간의 직관은 불완전하고 편협하여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앎의 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결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이제 양자역학에서 거시 물리학, 빅뱅에서 진화론까지, 과학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필수 지식이다.

http://aladin.kr/p/fQY3n



5.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질 볼트 테일러, 과학 에세이

 뇌출혈을 겪은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의 뇌과학과 심리학 이야기. 뇌 과학으로 풀어낸 심리학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테일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네 가지 성격을 발현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상반되는 선택 앞에서 고민하게 되는지, 인간이 보편적인 사고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다양한 성격적 차이를 드러내게 되는지에 대해 답해준다. 나아가 우리가 성격을 의지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묻고 설명한다. 테일러는 뇌과학자답게 성격이 발현되는 뇌의 기전을 풀어내고 뇌 가소성이 성격을 형성하는 놀라운 과정을 탐구했다. 그녀의 시선이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뇌출혈을 겪으면서 뇌세포의 기능이 중지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http://aladin.kr/p/Rfa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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