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책 읽기 1]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일상의 디자인 속에 새로운 시리즈를 열어보았습니다.
거창하게 [디자이너의 책 읽기]라 쓰고 그냥 저의 독후감 모음집입니다. 범람하는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도 제가 가장 애정 하는 매체가 있다면 그건 역시 책일 거예요. 그렇다고 대단한 독서가는 절대 못 되지만 디자이너가 읽으면 좋을만한 책을 디자인 산업 혹은 자존감, 커리어 개발과 연계하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리즈 속의 시리즈로.
디자이너의 책 읽기라고 해서 디자인 책 리뷰만 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분야의 책을 리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디자인 분야의 책은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 북 리뷰 칼럼의 첫 문은 저의 최애 작가이자 사상가인 '채사장'의 저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로 열어봅니다.
채사장에 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이번 글에서는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책 속의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6년 전인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20대 싱글녀는 30대로 진입 후, 결혼 후, 그리고 공평한 분배를 지향하는 회사를 체험한 후 드디어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 성향을 고백하면서도 부끄럽지만 여전히 나는 정치 싸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사회가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도 위험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색보다는 해당 사안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가 - 다시 말해 '일을 잘하는가.' 결과에 좀 더 포커싱을 맞춘다. 인간관계와 다르게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이 '장기적으로도'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정책이 실패하면 실망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은 왜 냈을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분노하는 아주 일반적인 시민이다.
짧은 단락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과/성과를 중시하는 나는 역시 보수에 가깝다.
채사장은 보수와 진보중 입장을 아직 명확히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계관은 안정적인가 불안정한가?
만약 안정적(최선의)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개인의 문제라고 바라보게 되고, 반대로 불안정한 세계(최악의)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면 사회의 문제라고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거칠게 분류하여 전자는 보수를 지지하게 되고 후자는 진보를 지지하게 된다. 사회에 문제가 없다면 현 경제 체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반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분배하는 후기 자본주의를 지지하게 된다.
나는 이 사안을 경제나 정치 체제보다 개인과 집단주의 관점에서 풀어보고 싶다.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보수파는 개인주의자, 집단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보파는 집단주의자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생존 방식과 비슷하지 않나 항상 드는 생각)
어린 시절에는 숨 쉬듯 당연하게 진보에 가깝던 나의 세계관이 전복된 계기는 아래의 3원칙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자로 변모하게 된 사고와 경험의 과정이다.
2020년 2월 퇴사를 했다. 퇴사 후 있었던 가장 큰 내면적 변화로는 완전한 개인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자에게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자유와 책임이다. 1년 여 다양한 인생 실험들을 했고 무한한 자유 속에 필연한 책임과 결과를 몸으로 습득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개인주의자로 인도한 책이 있다.
하나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다른 하나는 파운틴 헤드.
특히 파운틴 헤드라는 철학 소설은 디자이너 필독서로 정말 추천하고 싶다. 주인공인 건축가 하워드 로크를 통해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철학 및 태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두 권의 책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면 더 이상 심리학, 자기 계발, 자존감 컨텐츠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특히 남의 견해를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된다) 개인을 완전한 자아로 존중하는 법을 익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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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8년 했다.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야근도 적은 연봉도 아니었다. 집단주의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와 나 사이에 발생하는 틈이었다. 이 무서운 집단주의는 실체가 없는 적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해결도 어렵다. 집단주의자들은 '내'가 아닌 '우리'로 소통한다.
'우리 생각은 그래'
'우리는 그래왔어'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집단에 속하고 싶으면 내 생각과 조금은 다른데도 '우리'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일단 그렇다고 하게 된다.
집단주의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가장 피하고 싶은 해악은 '끌어내리기'와 '하향평준화'일 것이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고 책임 소재 또한 묻기 어렵기 때문에 남 탓을 하기 딱 좋은 환경이 갖춰진다. 한 명이 회사 탓을 하기 시작한다. 연대감을 유지하고 싶은 다른 이가 맞장구를 친다. 소외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는 더 과장해서 욕을 하기 시작한다. 분위기는 흐려지고 잘하고자 하는 열정은 온 데 간데 사라진다. 집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원치 않은 동조를 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항상 나를 힘들게 했다.
오죽하면 고 이건희 회장이 '천천히 갈 사람은 가 - 뭐라고 하지 않아 - 대신 잘하겠다는 사람 발목은 잡지 마' 이런 인터뷰를 했겠는가.
내 글을 꾸준히 읽어준 독자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스타트업 엔젤투자에서 시리즈 B까지 경험한 나는 균열이 발생하는 시점, 속도, 이유를 직원의 입장에서 모두 겪고 나왔다. 내 전 회사의 초기는 '성장하는' 모습이었고 그때는 다들 신나고 즐거워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집단이 분리되게 되었고, 집단 사이에 소통의 벽이 생겼으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불만이 피어났다.
한편으로 얻게 된 인사이트는 공평한 분배를 지향하는 회사는 성장에 반드시 제동이 걸린다는 점이다. 초기 멤버였기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연봉은 거의 균등하게 올랐고 회사 측의 답변은 '지금은 특정한 누구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두가 성장해야 한다'였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성장하긴 커녕 하향 평준화였다. 내가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여 가장 합당한 보상과 피드백을 주는 연구와 실험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공평한 분배가 성공하는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 (여기까지 가면 정말 공산주의다)
요약하자면 집단주의는 자유도 없고 책임도 없다. 개인주의는 자유와 책임을 최대한으로 한다. 훨씬 더 성장 지향적인 환경이 갖춰진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시절 소위 가진 것이 없던 나는 전적으로 '분배, 지원, 복지'쪽에 더 '익숙'했던 것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처한 환경은 없는 쪽이었고, 없는 쪽의 지원을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우파, 우익에 조금 더 거부감을 느꼈으며 양극화 현상의 정체를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모호함 속에서 그저 나라 탓을 하기 바빴던 것 같다.
우파 정권이면 복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소수의 집단만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란 말인가! 학생 식당에서 3천 원짜리 밥을 먹으며 덜덜 떨면서도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만나면 만원이라도 쥐어드리는 정신으로 살고 싶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돕자.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는 사회의 모습을 선과 악, 도덕과 감성에 의지해 판단하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대부분의 문제는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 애매한 지점에서 발생하더라. 생존과 직결된 복지는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알게 되었다. 또한 정치 경제 체제는 도덕이 아닌 개인의 이득에 의거한 합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도.
나는 삼 남매 집안의 둘째 딸로 어릴 때부터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을 굉장히 잘했다. 100원 200원도 함부로 쓰지 않고 참던 어린아이는 별의별 알바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겨울에는 수도가 얼었던 탓에 씻기 위해 복지센터 헬스장에 등록해야 했다. 술 값 내기 싫어 동아리 활동도 못, 안 했지만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는 가보고 싶어 워킹 홀리데이를 갔는데 돈이 없어 2주 동안 머핀만 먹은 적이 있다. (그 뒤로 머핀 못 먹음)
이런 관점에서만 보면 제법 불우한 어린 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부모님이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게 도와주셨고, 수도가 어는 원룸이어도 고시원에서는 살지 않았으며 (재수 생활을 고시원에서 했던 경험이 있는데 자취방을 구할 때 "엄마, 미안한데 나 도저히 고시원에서는 못 살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어쨌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까지 간 셈이었으니까 우리 집을 가난하다고 해야 할까 견딜만했다고 해야 할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준으로 놓고 아래로 보면 끝이 없고 위를 봐도 끝이 없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문제인가 사회적 문제인가. 나는 아무래도 개인의 문제 - 노력의 문제 -라고 은연중 믿어왔던 것 같다. 힘든 상황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도 싹텄다.
4년제 대학, 3년의 실기 입시까지 투자한 돈은 어마어마했는데 정작 첫 회사 (에이전시)에 입사해서 받은 돈의 앞자리 수는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136만 원. 최장 기록으로 26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았던 월급은 약 180만 원. 100만원대 월급으로도 허리띠 졸라매니 1년에 천만원도 모을 수 있었다. 이때 생긴 짠순이 이미지가 지인들에게 굳어진 것은 아쉽지만 양가 부모님 도움 1원도 안 받고 결혼할 수 있던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백만 원대의 월급을 받으며 10시간씩 일을 했을까? 물론 아니다. 지금은 누구와 견주어도 괜찮을 만한 월급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한다. 운이 좋았지만 고부가가치 플랫폼 산업이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디자이너의 연봉 처우와 함께 나의 가치도 높아졌다.
나의 경험담을 이렇게 길게 풀어놓고 있는 까닭은 디자이너 집단에서도 진보파와 보수파가 명확히 갈리는 상황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회, 기업, 남 탓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보면 실력이 없다. 너무 명백한 사실이라 대놓고 쓴다. 심지어 디자인 진흥원 탓까지 하고 있는 상황을 보니 실소가 나오더라.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지 말자. 노오력하자 노오력이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모든 책임을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돌리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내 탓을 하면 발전할 수 있다. 남 탓을 하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이 쉬운 선택만을 해오진 않았는지 점검해 보자. 선택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결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회적인 도움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게 일어나며 상대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 체제라도 문제가 없길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생각이다. 이번에는 사회의 작은 조직, 회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미국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1위로 꼽히는 넷플릭스는 '규칙 없음'이 사내 규칙이다. (책도 있다) 규칙 없음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최대한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를 가진 보수 중의 왕 보수 조직이다. 이들의 기조는 이렇다.
애매한 세 사람보다 프로 일잘러 한 사람을 최고의 값으로 영입하는 것이 낫다.
에어비앤비의 핵심 정직원이 40명 내외라는 기사를 봤다. (지금은 다를 수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 직원수도 100명 미만이다. 갈수록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자명하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미래 사회의 '무용한 인간'의 대량 생산을 염려한다. 대부분은 애매한 세 사람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로 일 잘러가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다. 책 '규칙 없음'에서 보면 직원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지만 모든 직원이 행복하거나 만족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차이점은 문제를 가능한 해결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앞서 주장했지만 집단주의에서 시작하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성적인 개인이 연대하고 있는 집단에서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또한 개인의 권리와 문제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한다. 필요하다면 제도를 만들고 불필요한 것들은 빠르게 제거한다. 도태되는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보완하면서도 조직과 맞지 않은 사람은 빠르게 내보낸다. 성장과 성취를 지향하며 강점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가장 중요한건 성장하는 이 집단들이 세금을 가장 많이 내며 복지 정책이 가능하도록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가진 자원이 인력밖에 없는 나라일수록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집단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수적인 이유다.
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에 나는 개인주의자 선언을 했고, 개인주의자는 보수쪽에 가깝다는 답을 했다. 결론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에서 애매한 3인으로 찍혀 낙오하여도 다른 집단에서는 내가 최고의 1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디자이너라면 응당 디자인을 가장 잘해야 한다. 디자인 실력은 갖추지 못한 채 기획력이나 소통력만 내세워서 헤드-리더급으로 일하는 사람을 보면 크게 존경심이 들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실력을 베이스로 자신의 강점을 연결하자. 조직이 나랑 맞지 않는다면 재빨리 환경을 바꾸는 것도 추천한다. 특히 디자이너라면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여러 문화를 체험하며 경험치를 성장시킬 것을 더 권장하고 싶다.
자신을 경영하자. 최고의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자기 계발서를 너무 많이 읽었나 봅니다. you must 가 너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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