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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Oct 16. 2021

쓴 소주맛을 아는 어른이 되기.

적당히 비겁한 어른이 되는 길

물에 젖은 솜처럼

집에 들어온다.

어둠을 짊어지고 나갔다가

어둠을 짊어지고 집에 들어온다.

한 숟가락의 밥도

뜨기 전에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운다.

한 대의 담배를 피우다가

창밖의 나무처럼 흔들린다.


나뭇잎처럼 떨어지고 싶은 충동이

입 안 담배 뿌리 끝에서부터 피어난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짐승처럼

헐떡거렸던 하루다.

발을 잘못 내딛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미끄러질수

밖에 없는 연속이다.


창밖에서 나무가 뼈빠지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창밖에서

나뭇잎이 가지에

악악 목을 매고 산다.


아무래도

세상이 미쳤나 보다

나무는, 나뭇잎은

바람을 안고

춤을 추고 있는데


바람은...

바람은...

그들의 목을 쥐고 있다.


한 숟가락의 밥을 뜨고

어머니와 소주 한 잔 하는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반이다


양복 호주머니 속,

사직서가 잠에서 깬 것일까?

- 김현승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에서 따옴 -


워킹맘이자 싱글맘인 나는 언제가부터 예스맨이 되었다.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며 내 자리를 지키는 예스맨이 된 나에게 거절은 참 어려운 일이다.

원래 성격도 거절이 쉽지 않은 성격인데, 싱글맘이 된 이후로 내 자리를 지켜낸다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되었다. 


해야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자꾸 늘어났다.

뭔가 억울해도 입을 다물었고, 못본 척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좋게 말하면 사회 생활을 하는 요령이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적당히 비겁해 지는 쪽을 택한 것이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참는 일이 늘었고, 입술을 꽉 깨물고 욕을 삼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억울함이 밀려왔다.

아는 선후배와 술자리가 있던 날이었다. 한잔 두잔 서로의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미운 상사 욕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가 거나해졌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나의 억울함의 한계였을까...

"선배, 나 갑자기 우리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힘들어 죽겠다고 욕을 한바탕 하면 좋겠어"

"취했냐? 정신차려"

"니미 이렇게 힘든걸 알릴 방법이 없네"

"다들 그러고 살지 뭐"

"사직서가 항상 책상 서랍에 있는데, 꺼내들 용기가 없어. 이런 내가 찌질하고 비겁해서 환멸이 나"

"다 그래. 엄마 아빠라는건 언제나 그런거야. 나만 생각할 수 없잖아, 술이나 마셔 임마"

몇차례의 술잔이 더 오가고, 나는 무거워진 몸과 머리를 식탁에 뉘였고 이런 나를 선배들은 토닥였다.

자꾸만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집에 가서는 보일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소주의 쓴맛과 눈물의 짠맛은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 밤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술먹고 우는 사람만큼 진상이 없다고들 하던데, 그날 따라 나는 정말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퉁퉁 부은 눈으로 샤워를 한다.

출근은 본능이자 생존이다.

어제 술을 마신 건 모두 꿈이었던 것 처럼 톡톡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 피로의 흔적을 지우고 립스틱으로 혈색을 더한다. 서둘러 집을 나서며, 잠도 덜깬 딸아이를 깨우고 엄마 다녀올께 하며 집을 나선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의 등교길을 배웅해줄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라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동안 취업전쟁에 뛰어 들었던 마음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술김에 전화해서 욕을 퍼붓고 싶었던 일들이 다시 밀려들고 나는 다시 예스맨이 된다.

세상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아침 인사를 건네며 분주하게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침 보고 사항을 정리하고, 오늘 할 업무를 메모지에 적는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할까 라는 일들을 바라보며 애써 머리를 저어본다.

생각하지말자. 

그저 해야할 일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

주간회의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 음성파일 텍스트인식 앱을 깔았다. 기술회의라서 내가 알아들을수 있는 말이 거의 없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딴에 내린 묘책이었다.

월요일이 오는게 두렵지만, 사장님께서 아는 대로 적어놓으면 회의록 정리를 해주시마 라고 하셨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들 꼬인 혀로 삶을 토로하던 술자리에서 선배가 한말이 생각났다.

"사표를 내려고 했어. 썩어자빠질 회사..... 내가 노비냐.... 사장 면상에 보기 좋게 사표를 던지고 드라마처럼 멋지게 뒤돌아 서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왜 모니터에 내 딸 사진을 넣어놓은건지 그 얼굴을 보니 도저히 사표를 프린터를 못하겠는거야."


그래 엄마, 아빠에게 삶은 그런건가보다.

나만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어졌다.

부모를 일컫는 말로 아플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닌 사람들...


갑자기 대학생 아들의 웃으면 눈이 하나도 안보이는 보노보노 같은 얼굴과 샐쭉한 사춘기 고등학생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게 숨을 토해내고, 모니터를 노려본다.

액셀의 작은 숫자들이 나를 마주보고 있다.

아직은 너희를 위해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다. 

아직은 나의 삶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삶을 살아내며 지나가야하는 시간이다.

그런 최면을 걸며, 오늘도 나는 나의 삶을 분주히 걸어간다.


쓴 소주 맛을 알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쓴 소주잔에 눈물을 반 채워 차마 아이들에게 보이지 못한 눈물을 삼키며 오늘도 나는 

예스맨이 되어 삶의 언저리를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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