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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Mar 14. 2020

(18) 페이스북에서 만나 결혼한 SSUL

우리가 바로 사이버 러버(?)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너굴군과 연애하고 결혼해 살 심심찮게 듣는 질문이다.


"페이스북에서 만났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요즘 세상에 말인가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한창 인터넷 채팅으로 인연을 맺는 '사이버 러버'가 인기를 끌던 게 1990년대의 일이니 그럴 법도 하다.


1997년 개봉작 <접속> 채팅 하던 남녀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였나요? 97년이면 아직 어려서(강조) 기억이 잘 안나네요ㅎㅎ

그런데, '사이버 러버'라는 말은 오히려 21세기인 지금 잘 어울린다. 채팅창을 통해 특정인과 대화해야 했던 플랫폼에서 한발 나아가 이제는 sns를 통해 세계의 불특정 다수와 실시간 접속할 수 있으니까.(진지)


#

우리는 페이스북 북클럽에서 만났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이곳 TK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북클럽은 지인이 만든 모임이었다. 나는 초창기 멤버로서 열정과 애정을 갖고 모임을 꾸려 나갔다. 멤버가 아주 소수여서 정기적으로 정모를 할 만큼 끈끈하고 잘 통했다.


남편 너굴은 군대 동기의 초대로 북클럽에 가입했다고 했다. (보통 남자들은 제대와 동시에 군대 시절 인연들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초대장에 수락한 너굴군. 신기한 일이다.)


너굴군은 정모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만 존재하는 사람. 나에겐 너굴군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1년을 북클럽 회원 사이로 지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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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굴군이 조금씩 특별해진 건 그가 내 글의 '1 호팬'을 자처하고 나서며부터다.


예나 지금이나 상냥한 성격의 너굴군은 내가 남긴 글에 다정한 댓글을 남겨 주었다.


당시 나는 '페이스북 중독' 상태여서 하루에 몇 번이고 나의 일상을 올리곤 했다. 동화작가를 꿈꾸며 이런저런 글들을 자주 올렸는데 너굴군은 내 글이 참 좋다며 작가의 꿈을 이루고 말 것이라는 응원을 꾸준히 남다.(#작업건거뉘?)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그제야 이 남자가 조금, 아주 쬐금 궁금해졌다.


너굴군의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갔다. 글도, 사진도 많지 않았다. 사진첩을 살펴봤다.


어라? 멀쩡하게 생겼네


첫인상은 이랬다. 아니, 솔직히 호감 가는 외모였다. 그래도 그뿐이었다. sns 사진과 실물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이 사람이 실존하지 않을 수 있단 걸 아는 나이었기에.


어쩌면 광고 계정일지도 몰라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셀카나 커피, 풍경 사진 같은 건 있었는데 거기에 남긴 글들이 여느 페친들과 묘하게 달랐다. 개인적인 정보는 드러나지 않은 진지한 감성글들.


삼십 대 멀쩡한 남자의 사진을 퍼다 만든 광고 계정 아니면 누군가의 아바타 계정. 나에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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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급속도로 친해진 건 '단톡' 덕분이었다.


어느 날, 북클럽 단톡 방에 초대되어 가보니 너굴군도 접속해 있었다. 여럿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굴군과 '갠톡'을 하게 됐다.


어떻게 갠톡을 트게 된 걸까? 맞다. 그날부터였지!


명절을 하루 앞둔 어느 날, 고향 제주로 가고 있다는 내 글에 너굴군이 이렇게 답다.


"우와. 저는 비행기 한 번도 못 타봤는데 인증샷 남겨 주세요."


처음엔 그저 웃어넘겼다. 서른 넘은 남자가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봤다니. 거짓말이 아니라면 분명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사연 많은 남자


맞아, 그랬어! 그제야 너굴군에게서 풍겼던,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함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호들갑스럽게 일상을 공유하기보단 진지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쪽인, 그 흔한 정모에도 나오지 않는... 어쩐지 비밀이 많은 사람.


(알고 보니 정모에 나오지 않은 건... 열차 삯이 부담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복 10만 원가량! 아아! 이해가 됩니다.)


'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내가 먼저 이렇게 갠톡을 보냈으려나? 훗날, 이 날을 조망해보니 싱겁게 시작한 이 메시지가 특별한 인연으로 가는 첫 단추가 된 것 같다.


#

그날 제주에서 친오빠와 심하게 다퉜다.


오빠 입장에선 내가 개긴 거고, 내 입장에선 오빠가 꼰대 짓을 다. 싸움을 끝낸 건 오빠였다. 내 머리를 주먹으로 갈긴 거다!!!(나는 아마 개 ××라 욕했던가;;)


서른이 다 되어 친오빠에게 맞다니! 울며 집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모텔로 가서 캔맥주를 까마시며 내 인생을 한탄했다. (이 없었다. 지금은 친오빠랑 아주 잘 지냅니다ㅎㅎ)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요?


모텔서 청승맞게 오징어를 씹고 있을 때, 너굴군에게서 톡이 왔다.


아뇨. 집 나왔어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솔직하다. 아니 어쩌면 이날은 솔직함보다 외로움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굴군의 톡이 반가웠다.


이날 참으로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상냥하고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남자. 비록 문자였지만 온 마음으로 나에게 집중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너굴군이 하는 말들이 모두 따뜻하게 느껴졌다. 섣부른 위로보다 한 발 깊이 들어간 그 말들이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꽤 말이 잘 통하네


그와의 대화가 몹시도...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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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우린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갠톡, 메일, 문자 등등. 하루라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으면 허전하고 걱정됐다. 그리고 너굴군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슬슬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이 남자, 전화 통화하잔 말을 안 하네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굴군은 요지부동. 다시 또 시작된 '사연 많은 남자'라는 예감. (알고 보면 쑥스러웠던 것일 뿐...)


"우리 통화할래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굴군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하, 이 남자 실행력 한번 빠르네. 당시 나는 4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알고 보니 너굴군은 자신의 목소리가 싫다고 했다. 미성이 섞인 목소리. 내가 들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듣기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부터 '통화'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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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11시


어쩌다 보니 매일 밤 11시에 전화통화를 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은 해가 지면 자는 스타일인데, 참 애썼구나 싶다.)


날이 갈수록 통화가 길어졌고, 어떤 날은 통화를 하며 잠들기도 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과 이렇게 오래, 꾸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그만큼 우린 할 말이 많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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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하다 보니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너굴군은 역시나 만나자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시 또 시작된 의심 '사연 많은 남자'.


어쩌면 이 사람은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공유했다. 글과 목소리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다정하고 건강한 사람인지 느껴졌다. 나에게 애정과 호감이 있다는 것도. 그런데도 만나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건 신체적인 불편함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릴 때 화상을 입어서 상처가 있어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집에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한 달간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단 이야기. 어렵게 꺼낸 말이란 걸 알기에 몹시 고마웠고, 어린 너굴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정말 그는 '사연 많은 남자'였다. 그런 그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우리 만나요. 마침 출장이 있는데, 서울과 대구 중간지점인 전주 어때요?


이렇게 우린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전주는 전혀 중간지점이 아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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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심난했다. 혹시 만나서 실망하게 되는 게 아닐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데 괜히 멀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생판 모르는 남자를 인터넷으로 알게 돼 실제로 만나려 하다니.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어떤 날은 이런 똑똑한 의심을 갖기도 했다.(예전의 나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지 않단 걸 알기에 이런 의심이 얼마나 멀쩡한 사고인지 이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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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용감하고도 무모한 나는 결국 전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 버스가 달리는 중간에도 번뇌에 시달렸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다시 서울로 가버릴까?(알고 보니 너굴군도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모험이란 걸 하지 않는 이 남자에겐 우리의 만남이 굉장한 일탈이자 어드벤처였던 셈.)


약속시간 30분 전에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목도리로 얼굴을 거의 가리고 너구리 군을 기다렸다. 청년들이 오갈 때마다 빤히 쳐다봤다. 저 남자인가? 아님 저 남자?


그때 저기서 까만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쑥스러워 내 얼굴도 못 쳐다보는 너굴군. 우리는 이 사실이 너무 어이없고 어색해 몸만 베베 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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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아시다시피 '해피엔딩'이다.


우리는 문자, 통화로 나눴던 시간만큼이나 서로의 외모에도 호감을 느꼈고 도파민 호르몬이 가득 채1일 차 커플이 됐다.


너굴군 얼굴과 손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화상 자국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마에 찍힌 번개모양 자국은 꼭 해리포터를 연상케 했다. 너굴 is 뭔들!


그날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듯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소담스럽게 내리던 눈은 폭설로 바뀌어 있었다. 택시도, 버스도 운행 중단. 아니, 이렇게나 하늘도 우리 편이던가.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눈길을 걸었다. 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눈에 꽁꽁 언 손을 녹였다. 까무잡잡한 나와 달리 하얀 피부를 가진 너굴군. 그런데 피부의 감촉은 마치 나와 같았다. 아주 옛날 조물주가 우릴 만들 때, 같은 재료로 살을 빚었구나 하는 느낌. 지구 상의 또 다른 나를 전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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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너굴군이 주말마다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만나면 좋았지만 헤어질 땐 상실감이 너무 컸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알면 알수록 너굴군은 내 유일한 짝이었다. 남들은 그게 다 콩깍지라 했지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았다. 연애라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했고, 너굴군은 내가 만난 남자들 중 단연 최고였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기로. 어차피 제주가 고향인 나에게 서울이든 대구든 사는 곳은 큰 의미가 없었다.


마침 동화작가로 등단한 해였고, 회사에도 지친 참이었다. 또, 장거리 연애에 조금씩 지쳐가던 때였다. 이러다가 헤어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생겼다.


용기 있는 여자가 짝을 쟁취한다!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건다면 너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랑 결혼을 한다면 너굴이어야 했다.


결단과 실행, 행동은 빠른 나는 결국 트럭에 짐을 싣고 대구로 내려왔다. 그전에 살 집과 이직할 회사까지 다 정해둔 뒤였다.(나의 결단력이란....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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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10월 3일. 우리는 드디어 부부가 됐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을 했고, 꿀순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그리고 한 달 뒤엔 꿀꿀이가 태어난다.)


다행히 우리는 여전히 대화가 잘 통하는 '소울 메이트'다. 그리고 동지애 보단 이성애(?) 남아 있는 부부이기도 하다.(우린 지금도 가끔 서로에게 반한다. 이 콩깍지 영원하기를...)


인터넷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


너굴군과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눈다.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평생 못 만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경로로 만났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것.



영화 번지점프에 나오는 명대사. 이렇게 귀한 게 바로 사람 간의 연이다. 그러니 더욱 소중히 여기고 귀히 대해야 한다. 우린 신이 연결해준 사이니까.


서른 후반이 되어 20대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날 걱정했던 언니들 마음을 알 것 같다. 청년기의 개굴은 당차고 용감했지만 무모했고 순진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내가 몹시 고맙고 사랑스럽다.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고 조건에 맞는 짝이 나타나길 기다렸다면 너굴군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토록 온전히 마음으로 통하는 상대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용감하다. 나는 이런 내 삶에 몹시 만족한다. 누구의 삶도 아닌 오롯한 나의 삶.


우리 부부, 페이스북으로 만나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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