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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ul 09. 2021

4살 딸의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며

[은유카드]손톱, 지각

매일 두 단어를 뽑아 은유 문장을 쓰고,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 없이 적습니다.
오늘의 단어



아이들의 손톱은 금방 자라고,

나의 손톱을 늘 지각한다.




손을 빼내려고 발버둥 치는 두 살 둘째의 손톱을 겨우 깎았다. 지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도 녀석은 자꾸만 손을 빼낸다.


살살 달래도 봤다가 다른 것에 한눈도 팔게 해봤다가, 기분 좋을 때 깎아 보려고 물놀이 하며 시도해보지만 완강히 거부한다.


보통은 강요하지 않고 포기한다. 그러나 녀석의 손톱에 몇 번 긁힌 후로 상처가 오래 간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깎는다. 매일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아이가, 타고난  것으로 누군가를 다치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어제도 어렵게 어렵게 '거사'를 치렀다.


둘째의 손


아이들의 손톱은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날을 세어본 건 아니지만 이주일, 아니 일주일만에 쑥 자란 것처럼 느껴진다. 손톱깍이가 어딨나 찾으며 '내가 이 말을 엊그제 한 거 같은데...' 생각한다. 그만큼 두 아이 손톱 깎는 주기가 심리적으로 짧은 거다.


하긴, 녀석들의 과제는 오직 성장 밖에 없다. 키, 머리카락, 손톱, 발톱... 뭔들 자라지 않을까. 무한한 생명력 그 자체다.


아이들의 손톱 자라는 속도를 보면 잘 크고 있구나, 잘 먹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한편 서글픈 마음도 든다.


이 작은 손을 언제까지 만질 수 있을까, 네 손톱을 언제까지 깎아줄 수 있을까.


둘째의 손
언제부터인가 내 손톱은 더디 자란다. 아이들 손톱이 자라는 속도에 비하면 내 손톱은 항상 '지각'한다.


남매는 오이처럼 쑥쑥 자라고, 나와 남편은 나날이 늙고. 부모와 자녀는 이렇게 닿을 수 없는 '엇박자의 시간'을 산다. 그렇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란 그런 것이다. 강 하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넓은 시간을 두고 있기에 그저 사랑하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는 사이. 



둘째에 비해 올해 4세인 딸은 손톱을 잘 내어준다. 단정히 깎은 손톱이 '보기 좋다'는 걸 아는 거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은 한 술 더 떠서 '매니큐어'를 발라달라 조른다. 종종 아침마다 매니큐어를 꺼내 들고와서는 내게 쑥 내민다.


내일 또 발라줘야겠네


엄마, 손톱에 (매니큐어) 발라주세요

 아이의 작고 오동통통한 손을 들여다본다. 펄이 지워진 손톱에 정성껏 매니큐어를 발라주자 아이의 볼이 빵처럼 부푼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앙증 맞은 내 새끼. 네가 행복하면 됐다. 엄마는 그걸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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