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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Nov 27. 2021

그 많던 무덤은 어디로 갔을까?

[은유카드] 무덤, 무지개

오늘의 은유 단어: 무덤, 무지개

가끔 단어 카드를 뽑으면 참 난감할 때가 많다.


웬 단어 카드냐고?


나는 단어를 쓴 종이를 꾸러미에 담아뒀다가 제비뽑기하듯 두 장씩 뽑아 '은유 훈련'을 한다. (네, 그러니까 단어 카드는 그냥 종이 쪽지 입니다. 카드라 하면 멋지잖아요. 데헷)


이번에 뽑은 문장은 무덤과 무지개. 오호라, '무'가 닮았네? 라고 쓰기엔 어쩐지 좀 쑥스럽군요.




고향에 가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의 일곱 빛깔 추억이 동그란 봉분(무덤)처럼 쌓여있다.


어쩐지 무덤을 봉분이라 하니 점잖게 느껴진다. 나에게 '무덤'이라는 단어는 공동묘지를 떠오르게 하고 '봉분'이라는 단어는 경주의 왕릉을 떠오르게 하니까.


다른 사람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자라온 배경과 문화 탓이 클 것이다.(그렇다고 공동묘지에서 자란 것은 아니니 오해는 금물!)


나는 어릴 적 무덤가에서 뛰어 놀았다. 내가 자란 곳은 제주도 중에서도 최남단 '모슬포'라는 항구 마을이다. 정확한 지명은 대정읍이다.


나는 대정읍 중에서도 바닷가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하모1리'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가구 수가 적어서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가게라고는 주택 안에 대충 먹을 것을 갖다놓은 '구멍가게'가 전부인, 보이는 거라고는 바다와 밭이 전부인 동네.


오솔길을 따라 주택가를 벗어나면 밭들이 펼쳐졌는데,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경운기에 타고 밭에 '놀러가곤' 했다. 당시 미취학이었던 나는 일손을 거두기엔 너무 어렸기에 감자를 캐는 조부모를 지켜보며 빵과 우유를 먹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며 놀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너무나 재밌었다.)


밭을 따라 가면 종종 무덤이 있었는데 나와 동네 아이들은 동네를 싸돌아 다니다가 기어코 무덤가에서 놀곤 했다.


이런 무덤이었죠.


도대체 무덤에서 뭐하고 놀았냐고?


아이구, 할 게 알마나 많은뎁쇼. 무덤가를 빙 둘러싼 돌담에 올라 잡기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했다. 그러다가 무덤과 돌당 사이에 큰 나무판자나 골판지 같은 걸 올려서 아지트랍시고 쏙 들어가 놀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무덤 주인 분께 참 실례를 했군요)




무덤에서 다함께 놀 때는 마냥 재밌었지만 홀로 무덤가를 지나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왕복 2시간 거리였다(내 종아리가 두꺼워진 게 다....말잇못). 오솔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그제야 시내로 통하는 큰 길에 닿았다.


오솔길은 아이 허리춤만한 갈대나 들꽃, 풀이 마구 자라있는 흙길이었다. 높은 건물이나 흔한 나무도 없어 멀리 내다보면 수평선이 보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무덤도.


혼자일 때는 뭐든 무서운 법이다. 내 눈엔 무덤을 둘러싼 돌담이 꼭 귀신 데멩이(제주 사투리로 '머리'란 뜻)처럼 보였다. 옹골찬 현무암 덩어리들이 새까만 머리로 보였던 거다.


끝없이 펼쳐진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얼마나 많은 귀신 데멩이를 보았던가.


무서워서 보기 싫은데도 기어코 곁눈질로 무덤을 살피곤 했다. 마치 공포영화를 볼 때 실눈을 떠서 결정적 장면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안본 척하면서 슬쩍 보면 조금은 견딜만 했다.


이런 경험을 살려서 쓴 동화가 <0812 괴담클럽>(웅진주니어)에 수록된 <물통 귀신>이라는 작품이다.


(물통은 용천수가 새어나오는 제주도 바닷가의 특수 지형을 뜻하는데, 돌담으로 빙 둘러싸여 있어 '통'이라 부른다.) 


흠흠, 본의 아니게 홍보를...


내가 쓴 제주 괴담 동화가 담겨있다.

마을로 가는 길은 오솔길 말고도 큰길이 하나 더 있었다. 차를 얻어탈 때 말고는 큰 길로 다니지 않았는데 빙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공동묘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충일 같은 날이면 국화를 든 사람들이 방문하며 어딘지 모를 '축제' 분위기가 풍기기도 했지만...그래봤자 무시무시한 공.동.묘.지! 평일에는 초록색 철문이 위압감을 주는, 하여간 무서운 곳이었다.


그래서 그 옆을 지날 때는 전력질주했다. 귀신들이 쫓아오고 손 내밀까봐. 지금은 그런 내가 귀엽기만 하다. (당시의 공동묘지는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주 매끈한 4차선 도로에 편입돼 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꿈속에서 오솔길과 고향 마을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련해지면서 가슴이 벅차 오르고,  반가우면서도 슬픈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몇 년 전, 지금은 가족이 살지 않는 고향을 찾았다. 그런데 너무나 바뀐 풍경에 놀라고 말았다. 오솔길은 사라지고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가 뻗어 있었다. 무덤은 커녕 들풀 하나 품어주지 않는 회색 길을 보며 생각했다.


그 많던 무덤은 어디로 갔을까?


귀신 데멩이 같던 현무암 돌멩이들은 어느 곳으로 굴러갔을까. 그 시절 친구들은? 동네 어른들은?내가 헤엄치던 바다는?


꼭 평행우주 저편의 내가 고향땅을 밟은 것 처럼, 나는 낯설고도 친숙한 풍경을 오래오래 눈으로 훑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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