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의 시작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스물부터였다. 처음으로 고향인 집에서 독립해 아빠가 마련해 준 원룸에서 혼자 생활했을 때, 6명이 24평에서 우글우글 살던 그 분위기와 달랐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게 이유였다면 이유였을까. 원래 술을 좋아했지만, 혼자 술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가 입학 선물로 사준 약 200만 원짜리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소주를 물컵에 콸콸 따라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리 대단한 안주 없이, 그냥 라면이나 아빠가 보내 준 삭을 듯한 배추김치 하나로. 그 후 나는 어떤 사연으로 처음으로 입학한 대학교를 자퇴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혼자 술 마시는 버릇은 고향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맥주, 청하, 매화수, 페트병 소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내 방에서 조금은 나아진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셨다.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한글 프로그램을 켜놓고 백지에 마음껏 생각을 나열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아빠와 밥을 먹으면 “술은 먹어도, 혼자 마시는 술은 하지 마라.”라고 담담한 잔소리를 들었다. “알겠어.”라는 지키지도 않을 말을 하고 나름의 해장으로 된장찌개만 퍼먹었던 나.
세월이 좀 더 흘러 직장을 다니며 편의점에선 4캔에 만원 하는 세계맥주를 사서 마실 수 있었다. 간이 점점 말라가는지 한 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졌는데, 그 술존심이 뭐라고 두 번째 캔을 따고, 마지막 네 번째 캔까지 따서 다 마시곤 잠이 들었다.
행복해서, 기뻐서, 기분이 좋아서,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그냥 마시고 싶어서 등 여러 이유로 술을 찾아 마시곤 하지만 대체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화가 나서, 속이 상해서, 마음이 힘들어서 술을 마실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처한 어떤 상황에서 (잘못은 없지만) 도망치고 싶은데, 그러기엔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니까 술로 자꾸만 도피하려는 못된 버릇. 혼자서 몰래 어떤 고통으로부터 나를 달래는 행위.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고, 아니면 그 이상으로 잘 살고 싶은 욕심이었지만 나는 그저 나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시점.
내가 남들에게 보이는 그만큼만 살아낼 수 있도록 나를 지키기 위해 혼자 술을 많이도 삼켰다.
이제는 음악과 키보드 소리가 아니라 사람 북적이는 소리와 함께 둘이 술을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