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에게 미안함이 쌓이지 않도록...
며칠 전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다. 아무런 말씀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밝고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바라보고 계셨다. 하늘로 가신지 십 년이 지나도록 꿈에서라도 한 번도 뵐 수 없었던 할머니를 갑자기 만나게 돼서 놀랍고 반가워서 할머니 목을 부둥켜안고 할머니 뺨에 내 뺨을 밀착시켜 비벼댔다.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의 모습을 하고 계셨고 내 모습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를 떠내 보내고 난 후 십 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꿈이었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할머니의 환한 모습이 기뻤고 고마운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났는데, 눈을 뜨니 감고 있던 눈에 물이 맺혀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가 꿈에 나오셨는데, 편안하고 환한 미소를 하고 계셨다고 말을 해드렸다. 잘 지내고 계신 것 같다고..
한 달 넘게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친정엄마를 들여다보질 못했다. 홀로 계신 터라 결혼 후 걱정이 많아져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여러 사건과 일들이 몰려오니 그 현안들에 심신이 묶여서 좀처럼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음성으로나마 안부를 챙기고, 이것저것 챙겨서 나를 보러 온 엄마와 삼십 분 정도 짧게 만나고 보내드렸던 것뿐.
묵직했던 일정 하나 끝내 놓고 어제 비로소 아침 일찍 엄마 집으로 가서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못다 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느꼈던 것들 꺼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왔다. 잠시 멈춰있던 그녀와 내 삶의 시간을 다시 이어서 엮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직접 눈으로 담으며 살펴보지 못했던 시간이 좀 있었지만, 그동안 별말씀 없이 잘 지내고 계신다고 여겼는데 잠시 만나지 못했던 날들 저편에서 엄마는 좀 우울한 기분이 들었던 날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고 며칠 전 꿈에서라도 할머니는 내게 엄마를 좀 더 살피고 잘 챙겨드리라는 당부를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안함은 눈처럼 쌓이게 두면 안 될 일인데.. 그때그때 잘 녹여드리며 살아야 할 텐데. 삶이란 게 참 완전할 수가 없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비처럼 내리는 듯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