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버PlayLaboR May 19. 2022

살살살구

놀면서 삶의 무늬를 만드는 일

줄 위에 올라 몸에 힘을 빼고 살살 걸어가다 보면 살구나무를 만나서 살살살구입니다. 


경기도 양평군 oo초등학교 3학년 13명과 담임선생님과 고무신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놀이기구는 한국민속촌으로 소풍가서 보았던 하늘에 떠 있는 줄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줄은 나무 나 기둥 두 개에 줄을 묶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학교 화단에 있는 나무들은 이용하기가 힘듭니다. 나무 사이사이에 꽃나무 들이 많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찌 하면 좋을 지 고무신이 물었더니 친구들이 나무 기둥을 심자고 합니다. 기둥은 어떻게 심으면 되지? 하고 또 묻습니다. 1. 땅을 넓고 깊게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2. 기둥을 구덩이에 넣고 3. 돌로 채우고 4. 흙을 채우고 5. 물도 함께 뿌리고 6. 모두 함께 밟으면 기둥을 세울 수 있다 답합니다. 집에서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봅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는 호미 괭이 곡괭이 삽이 있고 더 필요한 것은 학교 둘레에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파고 파고 또 파고

 땅을 팔 사람, 돌을 나를 사람, 물을 가져올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고 일을 시작 합니다. 기둥 심을 자리를 호미로 표시하고 작은 호미로 흙을 파냅니다. 기둥 심는 일이 아니고 흙놀이 흙장난이었다면 더 재미있게 땅을 팠을 것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땅을 팝니다. 곡괭이로 찍고 괭이로 부드럽게 하고 삽으로 퍼내고 호미로 구석구석의 흙을 구덩이 밖으로 퍼냅니다.  

구덩이기 파기 친구들이 구덩이를 만드는 동안 돌 모으기 친구들은 학교 옆 냇가로 가서 담임선생님과 돌을 모아 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점점 지쳐 가지만 꾸역꾸역 일을 참 잘 합니다. 4학년은 손수레에 수박만큼 큰 돌을 싣고 옮깁니다. 학교 옆 냇가로 내려가는 길은 어렵고 위험 합니다. 큰 비가 오면 물이 넘치지 못하게 돌로 쌓아 놓은 제방을 타고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려가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은 돌을 들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내었습니다. 옆자리에서는 6학년 형님들이 긴 나무를 톱으로 쓱싹 쓱싹 썰어서 아슬아슬 한 놀이기구를 만들고 있고 저 멀리 정문에는 5학년이 통나무를 굴려 조마조마 다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릎 깊이만큼 땅을 팠더니 흙빛이 달라집니다. 시작할 때는 노란 빛이 살짝 났는데 아래로  내려 갈수록 검은 빛이 감돕니다. 그러다 탁하고 무언가 단단한 것이 호미에 걸립니다. 자갈입니다. 우리가 매일 뛰어 노는 운동장에 이런 비밀이 있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돌을 옮기기로 한 친구들은 땅에서 나온 돌을 잘 모읍니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돌과 흙이 빛을 만납니다. 검은 색을 띄었던 돌과 흙이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지고 땀이 나고 목이 마릅니다. 그러더니 고무신이 큰 소리로 좀 쉬자고 합니다. 우리학교는 80분 수업하면 30분 쉬는데 고무신은 그걸 모르는가 봅니다. 화단의 나무 그늘이 줄줄 흐르는 땀을 그치게 합니다. 노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르다며 이야기 하는데 뭔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숨을 고르고 구덩이 파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런대 큰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파내려고 해도 꼼짝하지 않는 큰 돌덩이를 만났습니다. 고무신이 돌파기기술자로 변신했습니다. 고무신이 요구하는 대로 도구들을 전달해 줍니다. 곡괭이 하면 곡괭이를 호미 하면 호미를 고무신 손에 척척 놓아 줍니다. 고무신이 마치 수술하는 의사가 된 것 같습니다. 돌 캐기는 충치 뽑기놀이로 변신했습니다. 그런대 그 큰 돌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큰 돌멩이에 줄을 걸고 함께 당깁니다. 그래도 안 움직입니다. 6학년에게 도움을 부탁 합니다. 지나가시던 선생님께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역시....... 고무신은 돌멩이가 박혀 있는 방향이 이러니 이렇게 줄을 묶어서 이렇게 당기면 되지 않을까? 하고 궁리를 하지만 안 됩니다.  

한 친구가 나서서 흔들어 보자 합니다. 쇠말뚝으로 요기조기 찔러도 봅니다. 아주 조금 살짝 틈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힌트를 얻었는지 고무신이 망치를 달라고 합니다. 퉁탕퉁탕 돌가루가 튑니다. 틈이 생겼습니다. 호미로 흙을 살살 긁어내고 흔들흔들 흔들었더니 드디어 쑤욱 빠졌습니다. 모두 환호성을 지릅니다. 이래서 앓던 이가 빠지면 시원하나 봅니다. 기둥을 심기에 그 깊이가 아직 모자랍니다. 허리 깊이 정도는 파야 하는데 아직 허벅지 정도 입니다. 그러나 배가 고픕니다. 급식차도 들어왔습니다. 밥 먹고 힘 만들어 계속 할 겁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놀이터 만들기를 마무리 할 시간입니다. 땅을 더 깊이 파려는데 또 큰 돌이 발견 됩니다. 아까 돌멩이는 충칫돌이라 이름 부쳤는데 이번 것은 그것보다 더 큽니다. 그러나 충칫돌 뽑을 때의 요령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슥슥 삭삭 쾅쾅 아까보다 더 쉽게 돌을 캐냈습니다.  


드디어 구덩이 깊이가 허리만큼 깊어 졌습니다. 길이 2미터가 넘는 큰 나무기둥을 구덩이에 밀어 넣었습니다. 한쪽에 줄을 메어서 당기고 또 한쪽에서는 밀어서 구멍에 넣었습니다. 이제 기둥을 세우기만 하면 됩니다. 지름이 20cm가 조금 넘는 느티나무 기둥입니다. 무게가 어마어마합니다. 구덩이에 넣을 때 묶었던 줄이 이제는 세우는 줄이 됩니다. 나무 기둥이 반듯한지를 확인합니다. 땅과 기둥이 직각이 되어야 합니다. 나무기둥이 들어서고 남은 빈곳을 먼저 돌로 채웁니다. 돌이 모자랍니다. 모두 다 같이 개울로 가서 돌을 가지고 옵니다. 이번에는 모두 다 함께 갑니다. 돌로 채워진 구덩이에 다음으로 흙을 채웁니다. 가끔 물도 뿌려줍니다.  

나무기둥을 흔들어 봅니다. 단단히 박혀있기는 한데 흔들흔들 합니다. 모두 발로 단단하게 다지기를 합니다. 한 손은 기둥에 대고 박자에 맞춰 쿵쿵 땅을 울립니다. 아까보다는 더 단단하게 박힌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조금 더 단단하게 하려 애씁니다. 고무신이 겁을 줬거든요. 줄을 걸어서 쓰러지면 다시 또 파고 채우고 해야 한다고. 고무신이 우리 괴롭히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땅을 단단하게 밟으며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한곡 할 때 마다 기둥이 더 단단히 땅에 고정이 됩니다. 고무신에게 배운 이상한 노래도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김밥노래도 했습니다.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큰 나무 기둥이 땅에 단단히 박혔습니다. 이제 부터는 간단한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새운 기둥 맞은편 은행나무에 줄을 연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대 줄 길이가 짧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딱 한 팔 길이만큼 짧습니다. 어떻게하냐고 고무신이 묻지만 고무신은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원래 묶기로 했던 은행나무 옆에 살구나무인지 매실나무인지 헷갈리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급식을 도와주시는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살구나무라 하십니다. 살구나무가 우리를 살렸습니다.  

살구나무 껍질이 까지지 않게 천을 두르고 줄을 멥니다. 우리가 세운 나무기둥에는 톱니바퀴의 힘으로 줄을 팽팽하게 당겨주는 장치를 연결 합니다.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줄이 팽팽해  집니다. 올라가서 걸어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줄이 팽팽합니다. 우리가 심은 나무도 끄떡 없이 당당하게 잘 서 있습니다. 비가 오고 시간이 쌓이면 이 기둥은 더 단단히 땅에 서 있을 것입니다. 맨발로 나무 기둥을 오르는 친구도 있습니다. 팽팽해진 줄 위에 가는 줄을 한 줄 더 묶습니다. 그리고 가는 줄에 짧은 줄을 걸어서 그 줄의 양끝을 잡고 중심을 잡아 큰 줄을 건넙니다. 민속촌에서 줄타기하던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습니다.  


완성된 살살살구에 언니 오빠도 동생들도 줄을 서서 줄을 탑니다. 줄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높아서 위험하니 높이를 낮추자고 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살살살구를 만들면서 충분히 놀았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놀면서 기준을 만드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