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나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뭘 할 거냐는 질문에 올라나 Olana를 간다고 했더니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인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올라나가 뭐야? 그러니까, 역시 이 이상한 이름의 건물은 잘 알려진 것은 아니구나 하며 차를 빌려 두 시간을 북쪽으로 달려 뉴욕주 히스토릭 사이트 State Histotric Site인 올라나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황금 같은 연휴에 언덕위의 건물 하나를 보겠다고 투어 티켓을 예약하고 온 사람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타임당 제한 인원이 다 찬 것 같았다.
올라나는 클라이언트 client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집인데, 집주인인 프레드릭 처치 Frederic Edwin Church(1826-1900)는 허드슨 리버 스쿨 Hudson River School을 이끈 화가로서 미국 풍경화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일찍부터 화가로서 성공을 거둔 처치가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러 자주 오던 허드슨 강변 Hudson river의 126 acre 농장을 구매한 것이 올라나의 시작으로(처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현재의 올라나 사이트를 구매하고 가꾸었다.) 그는 1867년 떠난 18개월의 긴 유럽 여행에서 동유럽 디자인에 매료되어 이에 영감을 받은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처치를 도와 그의 디자인 실현시킨 건축가는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의 모든 다리를 만든 칼버트 복스 Calvert Vaux(석재를 다루는데 귀재인 건축가로 유명하다.)로 복스는 처치와 만날 때마다 클라이언트가 그려온 수많은 스케치를 리뷰했다고 한다. 우리의 가이드는 투어 시작점에 있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이 사이트가 얼마나 광대한지 이야기했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모두 처치 가족의 조경 디자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차를 타고 올라오며 오른편에 보였던 호수 역시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스케일에 약간 압도된 기분으로 자그마한 언덕을 올라 아직도 꽤 생생한 색감을 자랑하는 스텐실 stencil과 폴리크롬 브릭 polychrome brick이 눈에 띄는 올라나를 마주했다.
투어는 현관을 통과해 왼쪽의 게스트 룸에서 시작되었는데 문틀과 창문 둘레의 스텐실은 물론, 하나하나 다른 벽난로 디자인과 타일, 가구와 장식품 등 집주인의 손이(붓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이탈리안 르네상스에서 고딕의 분위기, 빅토리안 양식의 형태, 이슬람 디자인의 모티브 등이 모두 섞여있는 올라나는 어떠한 건축이나 디자인 양식으로 규정할 수 없는데, 모더니즘에 편향되어 있는 나의 취향과는 별개로 디테일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투어의 내용은 올라나의 건축 디자인보다는 처치의 인생과 이 집 곳곳에 걸려 있는 그의 작품이 중심이었기에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는 약간 실망하며 중반부터는 성실한 할아버지 가이드의 설명을 흘려들었다.
게스트 룸에서 문을 통과하면 응접실이 나오고 그 옆에는 처치의 부인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작은 방(아래 도면에서 117 sitting room)이 있는데 이곳에 건축 디자인 역사 수업에 등장했던 처치의 작품, El Khasne 가 벽난로 위에 걸려있다. 이 그림은 페트라 Petra의 신비로운 알 카즈네 사원 Al-Khazneh temple을 스케치한 후 뉴욕에 돌아와 완성된 유화로 처치가 요르단 Jordan 여행 시 안전상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아내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답다.
처치의 아내 이자벨의 방을 포함, 모든 공간의 창이 그 방향의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향해있다. 모두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도 창문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다른데 각각이 화가의 그림처럼 자연을 프레임 한다. 가이드는 안개가 짙게 낀 하늘을 탓하며 날이 좋은 날 얼마나 여러 가지 그림이 창을 통해 나타나는지 이야기한다. 뿌옇기는 해도 충분히 상상이 간다. 처치는 그러니까, 집을 도구삼아 풍경화를 지은 것이다.
작업실과 위층의 침실을 보고 나면 다시 일층으로 내려오는데 이때 지나치는 당시 하인들이 사용했던 공간이 꽤 흥미롭다. 창문이 달린 작업장과 상하수도관이 갖추어진 부엌 등이 동시대에서 꽤 앞서 있던 편이다. 현재 투어에서는 부엌과 화장실이 제외되어 있어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본인 및 다른 관람객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취향에 너무 안 맞는다며 투어에 금세 흥미를 잃은 남편이 이 대목에서 아쉬움을 표현했다.)
대학원 과정에 부엌 화장실 디자인 교과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실내 디자인에서 부엌과 화장실은 특별하게 다뤄지는데, 그것은 이 공간이 구조적, 기능적, 기술적 발전은 물론 새로운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꼭 이러한 이유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부엌과 화장실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 위생 관념과 건강, 개인의 프라이버시 등 우리가 현재 당연히 받아들이는 여러 개념과 밀접하기 연결되어 있고 생활양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시간 길이의 투어는 처치의 아트 컬렉션을 볼 수 있는 다이닝 룸에서 끝난다. 일반적인 이층 층고 이상의 높이인 다이닝 룸은 올라나 사이트 내의 농장에서 나오는 신선한 재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로 손님을 대접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사람 눈높이보다 훨씬 위에 있는 채광창*을 통한 자연광과 촛불로 밝혀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회복하려고 하는 건강한 밥상,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렸던 것이다.
*영어로는 clerestory라고 하나 정확한 한국어 표현이 없어 목적성에서 가까운 채광창으로 표기했습니다,
관련 사이트
https://www.loc.gov/resource/hhh.ny0506.photos/?s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