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의 바버숍과 요가
새벽 5시쯤이 되자 어김없이 단호는 일어나려고 몸을 꿈틀거렸다. 슬픈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나는 오늘도 일출을 봤다. 하늘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일도 볼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과 아들은 한국에서 이발을 하고 오려다 그것마저 ‘가서 하자’며 미뤘다. 오늘은 ‘그걸' 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큰 길로 오는 길에 작고, 허름하고, 세련돼보이지 않는 이발소가 하나 있었다. 우리의 1지망은 그곳이었지만 닫힌 문 앞에 적힌 번호로 전활 걸어보니 얼마 전 망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2지망 왕궁 사거리 근처의 바버숍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는 포마드를 잔뜩 바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겁이라도 주려는 듯 팔뚝과 목덜미를 문신으로 채우고 있던 홍대나 한남동, 이태원 바버숍 바버들과는 사뭇 다른, 단정하면서도 새초롬하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바버 청년이 우릴 맞아주었다. 우붓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인터내셔널할 것 같던 바버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고, 수줍은 표정으로 샘플 사진첩을 보여주며 남편에게 원하는 스타일을 고르라고 했다. 사실 남자 머리는 도대체 어디가 다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해보이지만 어쨌거나 남편과 나는 스트리트파이터의 가일처럼 옆 머리는 시원하게 밀면서도 앞머리는 멋있게 포마드로 쓸어올린 머리로 골랐다.
첫 인상대로 우붓의 바버는 차분하고 섬세한 손길로 남편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마음에 딱 떨어지는 스타일을 구현해주는 곳이 없어 집 근처 이발소와 미용실을 전전하던 남편도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신뢰를 갖게 된 나와 남편은 우붓의 바버숍에게 11개월된 단호의 첫 이발을 맡기기로 했다.
예상은 했지만 스무스하게 끝난 남편과 달리 단호의 이발은 아주 아주 하드코어한 시간이었다. 아빠를 닮아 태어난 순간부터 머리카락도 길고 숱도 어마어마했던 단호는 6개월때쯤 집에서 바리깡으로 배냇머리를 빡빡 밀어주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벌개진 얼굴을 하고 빽빽 울던 단호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몇 달 사이 단호의 머리카락은 놀라운 속도로 자라 다시 장발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단호는 터질듯한 얼굴을 하고 가위나 바리깡이 얼굴 근처에만 와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휙휙 돌렸다. 그럴 때마다 나와 남편 역시 단호의 팔과 머리를 필사적으로 잡아야했다. 단호가 가여웠고 동시에 숍에 민폐가 아닌가 싶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와중에 그래도 가장 위안이 되었던 건 흔들림 없는 청년 바버의 모습이었다.
애라고는 조카도 없을 것 같은 젊은 남자였는데 단호가 내는 엄청난 굉음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치려는 아이를 대하면서도 그는 차분히 머리를 잘랐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너무 많이 울면 '머리는 좀 우습게 됐지만 이만 할까요'라고 할법도 한데 그는 묵묵히 자신이 처음 생각한 스타일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이발을 이어나갔다. 그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이발이 모든 끝난 후 나와 남편, 아이 단호 모두 머리카락 범벅이 되었다. 날이 더워 온몸이 끈적끈적한 상태라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스폰지로 털어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몇 달 동안의 숙원 사업을 마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단호도 짧아진 머리가 신기한지 손으로 계속 머리를 만지면서 땀과 머리카락이 잔뜩 뭍은 채로 환하게 웃었다. 이게 다 스님 같은 바버 덕분이었다. 몸에 문신 하나 없고, 평범한 아저씨 셔츠를 입고 있는 수줍은 바버였지만, 내가 본 누구보다 프로패셔널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우붓에 간다면, 여기서 머리를 꼭 한번 잘라보라고 하고 싶었다. 가격은 60K(4800원)으로 발리의 보통 이발소20K(1600원)에 비하면 비싼 편이었지만, 5만원이면 정말 싸게 해드리는 거라던 한국과 비교하면 미안할 만큼 착한 가격이다.
바톤 터치를 하듯 나는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우붓은 원래 요가하러 가는 곳 아닌가. 한국에서 오기 전부터 남편은 서핑을, 나는 요가를 하고 싶다며 소박한 희망을 서로에게 내비친 적이 있다. 실제로 우붓에는 누가봐도 요가하러 온 것 같은 행색과 표정을 한 사람들이 많다. 거리거리마다 요가 학원도 정말 많아 동네 이름을 우붓 말고 요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사실 요가는 인도가 원조 아닌가 싶은데, 어쩌다 우붓이 요가의 전당이 되었는가 신기하다.
사실 요가 학원이 바버숍 바로 옆에 있길래 가격이나 물어보고 가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10분 후에 수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편한 요가복도 아니고, 짧은 청반바지에 나시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괜찮겠냐고 물으니, 열혈 학생인지 강사인지 알 수 없는 키 크고 마른 장발의 남자가 이어폰으로 뭔가를 들으며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어쩐지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이곳에서 요가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청바지에 민소매티를 입고 요가를 하기로 했다.
알고보니 좀 전에 상관없다고 대답해준 그 남자가 바로 요가 강사였다. 그에게 악 감정은 없었지만, 너무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와 깜짝 놀랐다. 그 바지를 입고 이런저런 동작을 가르쳐주는 것이 불편하면서 동시에 불쾌했다. 수강생은 나, 나와 함께 간 오빠, 그리고 스웨덴에서 왔다는 여성까지 총 3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강사와 마주보는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가 동작 하나 하나를 할 때마다 (자칫 눈을 버리게 될까봐) 몹시 불안했다.
그런 불안하면서도 불쾌한 여건 속에서도 요가 수업 자체는 무척 평화로웠다. 건물 2층에 있어선가 열어둔 창문과 현과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고, 핫팬츠 강사가 준비한 고요한 음악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핫팬츠 요가 선생님은 바지가 너무 짧다는 것만 빼면 동작 하나하나를 쉽고, 바르게 가르쳐주었다. 호흡과 속도를 강조하며 천천히, 찬찬히 숨을 쉬며 몸의 변화를 감지해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이십대와 삼십대를 거쳐 종종 요가학원을 다녔다. 한 두달 다니다 이내 그만두곤 했지만, 몸 구석구석을 늘리고, 당기고, 가만 가만 숨을 쉬는 시간이 나와 잘 맞았다. 임신 기간에도 요가를 했다. 무거운 배를 잡고 아이와 만날 날을 생각하며 다리를 찢고, 옆구리를 늘이고, 깊은 숨을 내쉬며 출산을 위한 몸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이게 얼마만의 요가인가. 다른 잡념 없이 내 허벅지 근육과 등, 옆구리, 팔, 골반의 이완과 수축에만 집중하며 숨을 내쉬고, 마셨던 적이. 뜨거운 사우나에 몸을 담그고, 때수건으로 빡빡 문지르고 나오면 기분이 싹 풀린다는 아줌마들처럼 나는 이렇게 몸을 사방으로 쭉죽 늘리고 나면 몸이 한결 시원하다.
발리에서의 요가라고 해서 뭔가 더욱 신비하거나 새로운 기술 같은 걸 전수해주진 않았지만, 너무 이국적이다 못해 이해할 수 없는 핫팬츠 패션을 선보인 기묘한 강사와 한 시간 내내 방 안을 드나들었던 시원한 우붓의 바람 덕분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굵직한 일정을 마친 뒤, '바비굴링'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발리 전통 음식점을 찾아갔다. 바비는 아기 돼지라는 말로 아기돼지통구이 요리를 파는 곳이다. '이부오까'는 대표적인 바비굴링 맛집인 동시에 우붓의 명물이었다. 왕궁 사거리 근처에만 3호점까지 가게가 있고, 가져간 가이드북에 의하면 3호점조차도 자리가 없을 땐 저택처럼 넓은 주인 할머니의 집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설명이 있었다. 혹여 자리가 없으면 맛집 줄서기는 절대 하지 않는 우리가 과연 기다릴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테이블이 많이 남아있었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라 어떻게 시켜야 하나 고민을 하다 바비굴링 세트로 보이는 대표 메뉴 2개와 돼지튀김이라는 사이드 메뉴로 보이는 음식 1개, 그리고 빈땅 2병을 시켰다. 바비굴링은 아기돼지를 통으로 한 시간 이상 구운 요리라 껍질 부분은 과자처럼 바삭바삭한데, 속살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아기띠를 한 채로 밥을 먹으니 겉살, 속살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아기 정수리에 음식을 떨어트리지 않고 입안에 고기를 골인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지만 이제는 그런 상태로도 음식의 맛을 평가하며 밥을 먹는 기술이 점점 향상되는 기분이 들었다.
벽에는 이부오까의 주인 할머니와 가족 사진이 상당히 크게 걸려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사진 속 할머니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주인 할머니가 내 등 뒤 의자에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 계셨다. 문득 예전에 다니던 회사 앞 자주 가던 식당이 생각났다. 안동집이라는 명륜동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는데 주인 할머니의 사진이 간판부터 식당 안까지 대문작만하게 걸려있었다. 안동 할머니도 백발에, 연세가 꽤 많으셨는데도 매일 같이 가게에 나와 별일 하지 않고 저렇게 가만히 앉아계셨다. 나보다 인생을 더 산 회사 대표님은 "아무것도 안해도 저렇게 나와 있어야 돈이 안 샌다"고 노령의 할머니가 식당에 매일 출근하는 이유를 알려주셨다. 국적과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평생에 걸쳐 집안을 일으킨 식당 할머니들의 표정은 무척 비슷해보였다. 무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웃고 있지 않은. 내가 일군 인기 식당을 지켜보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는 뒤에 그 할머니가 앉아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웃어주셨다.
2차는 우붓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부부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니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일리 없었다. 우붓의 스타벅스가 유명한 이유는 야외석에서 옆에 붙어 있는 연꽃사원 때문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아름다운 건 사원이지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연꽃사원은 우붓에 여행 오는 사람들이 코스처럼 꼭 들러 사진을 찍는 인기 있는 포토스폿이기도 하다. 마침 전기가 나가 손님이 거의 없는 스타벅스의 야외 명당 자리에 앉아 사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모두 즐겁고, 신이 난 표정이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내일 이들의 인스타에 좋아요가 부쩍 늘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저녁은 어제 발견한 우리만의 맛집 '비아비아'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해가 진 뒤 우붓을 걸어본 게 오늘이 처음이었다. 더운 나라의 에너지가 낮보다 훨씬 더 생생했다. 낮에는 꺼졌던 조명이 모두 켜지고, 가게마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기가 있으니 저녁 외출은 딱히 계획에 두지 않았다. 비아비아는 분위기는 좋지만, 아기 의자도 없어 식당에서 먹는 건 포기해야 했다. 포장한 음식을 들고 다시 숙소로 오르면서 오랜만에 보는 밤 거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아쉬웠지만, 또 아쉽지 않았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밤 거리는 볼 만큼 본 것 같다(고 위로했다). 남들보다 결혼도 늦게해서 그렇게 놀았으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다니. 사람 욕심은 다함이 없다. 대신 이번 여행에서는 낮의 발리를 더욱 열심히 발견하리라.
맘에 드는 식당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베란다 펍을 개장했다. 한국에서 온 오빠가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빈땅을 꺼내 마셨다. 안주는 여행을 좋아하던 괴짜 같은 친정 아빠와 떠났던 어린시절 이야기, 내일부터 롬복에서 하게 될 오빠의 스킨스쿠버 이야기, 우붓에 대한 이야기, 오빠의 연애이야기, 단호 이야기, 우리들의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