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CINEMA 잡변

영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by 코지애미

*미수정(최초 저장일 2018.05.06.)


영화 <인게이지먼트>는 전쟁서사물이자 수사극 혹은 탐정물일 수 있으며,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 어느 장르로 명확히 분류하기는 어려우나, 이 모든 내용을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 최전방으로 끌려간 5명의 사형수의 생사를(정확히는 마네끄의 생사) 더듬는 한 여인을 그리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그녀 자신으로 투사되기도 하고,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으로 비치기도 하며, 때로 극 전개에서 마주하는 난관을 역풍 삼아 비상하는 알바트로스로 보이기도 한다.

극명하게 대비되어 교차하는 전생-현재의 삶,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인간의 모습. 마네끄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그의 생사는 오히려 주변인들이 일종의 선택을 함으로써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음을 인정하고 털어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마틸드는 기꺼이 마네끄가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을 택한다. 마네끄는 이러한 마틸드의 믿음으로서 (가정적으로나마) 삶의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물론 마틸드조차 종종 ‘만약’에 기대어 우연한 상황과 그의 생사를 점쳐보려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살아있다고 믿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은 마틸드를 판도라 상자 속 희망으로 비유하는 듯하다.


빙고, 판도라의 상자

일찍이 인간의 오만방자함을 벌하기 위해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던 제우스 신이 있었다. 그는 어느 일신이 직접적으로 홍수로 벌한 것과 달리, 그 구실을 한 인간에게 전가시킨다. 바로 판도라를 에피메데우스에게 ‘선물’과 함께 하사하는 것이다. 판도라는 신으로부터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는 금기를 듣지만, 흔한 금기 레퍼토리에서 그러하듯 그녀는 선물상자를 열고 만다. 그 상자 안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악(惡)’이었다. 질투, 시기, 이기심, 절망, 좌절 등이 상자에서 뛰쳐나와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판도라는 깜짝 놀라 ‘희망’이 남아있는 상자를 닫아버린다.

전쟁은 농부도, 평범한 시민도, 사랑에 빠진 등대지기도 그들을 주체가 아닌 숫자 객체로 전락시킨다. 때문에 자신을 해침으로써 현실의 주체적 존재로 돌아가려 한 죄수들의 행위는 전쟁의 아이러니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펼쳐지는 곳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마띨드가 있는 외딴섬이다. 전쟁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목가적인 풍경 속의 마틸드.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장 못지않게 공포와 불안이 자리 잡은 상태이다. 그녀는 사실이라고 전해 들은 소식을 인정하고 울 수 있었다.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 남겨진 삶을 평범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마틸드는 꼿꼿하게 바로 앉아 현실을 직시한다. 아니, 현실 너머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을 마네끄와의 재회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가 택한 것은 실천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건네받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그녀가 마네끄를 추적하기 위해 뚜껑을 열자 잔인함과 시기, 인간 이성의 오만함 등 갖가지 악의 재현인 전쟁을 마주한다. 마틸드는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 희망처럼 홀로 외딴섬에 남았다. 온갖 악이 뛰쳐나옴에 놀라 황급히 뚜껑을 닫았던 판도라와 달리, 마틸드는 기꺼이 그 뚜껑을 열어 전쟁의 궤적에 뛰어든다.


등대지기 마네끄의 빛

마네끄는 한때 평화로운 섬에서 자신의 삶을 영유했다. 그의 삶과 사랑은 작은 존재였을지언정,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성냥과도 같았다. 오히려 그의 순정은 그 어떤 장작불보다도 뜨거웠으리라. 불행히도, 머지않아 그 장작은 모든 것이 새까맣게 소멸된 전쟁터에서 숯이 되어 군홧발에 차이고 나뒹군다. 그토록 순수하게 타올랐던 그는 전장에서 꺼져가는 담뱃불로 겨우 빛을 낼 뿐이다.

마네끄는 전쟁이라는 거시 사회에서 미시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틸드에게 있어, 그의 생사여부는 곧 그녀의 생사여부와 같다. 차근차근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는 그녀에게 마네끄는 등대지기 그 이상의, 등댓불과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칠흑같이 어둡고 안개 서린 정보 속에서, 마네끄가 살아있으리라는 등대 불빛에 의존해 앞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살아있는 마네끄를 마주할 때 그토록 아름답고 따사로운 황금빛 햇볕이 내리쬔다. 마네끄가 발했던 그 어떤 빛보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은 더없이 인상적인 연출이다.


바보 새 알바트로스

마틸드는 어릴 적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다. 비록 땅에서는 절뚝이며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울지언정, 사랑하는 마네끄가 살아있으리라는 단 하나의 희망은 그녀를 바삐 뛰게 만든다. 알바트로스는 커다란 날개 때문에 지상에서는 오히려 잘 걷지 못해 바보새라 불린다. 그런 알바트로스가 절벽에서 터덕거리며 역풍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듯, 그녀는 숱한 거짓 정보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추적을 강행한다.

푸른 하늘을 나는 알바트로스와 짙은 먹색의 구름을 타고 죽음을 노리는 독일군의 알바트로스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순수한 믿음과 사랑은 그것 자체로 인간 존재를 비상(飛上)하게 한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그로 말미암은 오만함은 전쟁 속 복엽기(biplane)로 전락할 뿐이다.

후회(後悔)의 만약이 아닌, 후회(後會)를 기약하며

‘만약에’라는 가정법은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 마틸드는 후회로 점철된 과거를 회상하며 만약을 논하지 않는다. ‘만약 -했다면 ~하게 되지 않았을까?’와 같이 지나버린 과거를 수정하려 들지도 않고, 불투명한 귀결에 이르지도 않는다. ‘만약 -한다면, 마네끄는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으로 분명한 미래를 확신받고자 현재의 우연에 잠시 기대어 볼 뿐이다. 그녀에게 ‘만약’이란, 오직 바라는 미래와 현재를 결부하는 연결어가 된다. 영화는 흔한 전쟁영화에서 빚듯 판타지적 로맨스를 그리지 않는다. 사랑의 힘보다 판도라 이래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끈덕진 인간의 인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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