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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Dec 30. 2021

2021년엔 유난히 이별이 많았고,

2021년 결산 같은 건 또 안 하면 아쉽거든요

올해의 음악 - 백예린 <그럴때마다>

리메이크 곡이 가져야 하는 제1원칙은 뭘까? 나는 “원곡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가진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소리냐 싶겠지만, 그만큼 리메이크란 내겐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라 할지라도, 그가 리메이크한 곡까지 좋아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원곡의 분위기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그러나 원곡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곡은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나온 백예린의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된 <그럴때마다>는 내 기준 리메이크의 정석과도 같은 곡이었다. 원곡이 지닌 따뜻함은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백예린 특유의 분위기를 유감없이 뽐낸 이 곡은 올 한 해 가장 보석 같은 곡이었다.


올해의 가수 - 스텔라장

올 한 해, 스텔라장에게 유난히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전부터 좋아하던 그녀였으나, 올해는 좀 더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한 해였다. 특히 최근 나온 앨범 <Stairs>의 수록곡 ‘L’Amour, Les Baguettes, Paris’는 파리를 그리워하는 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곡이다. 나는 그녀가 조금 더 프랑스어로 많이 노래했으면 좋겠다.

올해의 LP - 사이먼 앤 가펑클 <The Sounds of Silence>


올해는 벼르고 벼르던 턴테이블을 구매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가열차게 LP를 사들였다. 그러나 내가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어머니께서 30년도 더 전에 구매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A side의 첫 번째 트랙 <The Sounds of Silence>는 첫 음이 나오자마자 우리 집에 온 모든 이들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오래된 도구와 옛 것이 주는 그것만의 감성은 분명 존재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형도 이 음반을 듣고선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은 가슴 아픈 곡이 되었다.


올해의 영화 - <틱, 틱…붐!>

사실 아주 좋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애매하다. 올해 본 영화 중엔 <소울>의 노래도, <프렌치 디스패치>의 화면도, <아임 유어 맨>의 메시지도 좋았다. <고장난 론>의 감동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틱, 틱…붐!>만큼이나 감정을 이입하고 본 영화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OST를 주구장창 들었다.


앤드류 가필드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만들었고, 뮤지컬 <렌트>를 보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청춘의 꿈을 노래하는 영화들에 끌리는 걸 보면, 아직까진 그런 이야기들을 보고 조금 더 꿈을 꾸고 싶어 하는가 보다.


올해의 드라마 - <술꾼 도시 여자들>

올해는 참 많은 드라마를 보았고, 늘 감탄하며 시청했다. <D.P>, <오징어 게임>, <슬의생2> 등 쟁쟁한 작품이 많았으나 <술꾼 도시 여자들>이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한 번이라도 감정이입을 해봤을 것이다.


단지 술뿐 아니라 우리 사는 인생이 처절하고 아프지만 또 그렇기에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삼겹살에 소주가 먹고 싶어 진다는 건 함정. 마침 회사 아래 ‘오복집’이라는, 드라마 속 등장하는 술집과 이름이 같은 술집이 있어 더 반가웠다.




올해의 책 - 필립 로스 <에브리맨>


올 한 해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나마 문토 모임을 위해 새롭게 읽은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그중 뒤늦게 읽게 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단연 ‘죽음’이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소중했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의 심정을 나는 아직도, 평생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해답을 조금은 얻은 것 같다. 그 실마리는 <에브리맨>에 있었다.


올해의 풍경 - 반포 한강공원

올 한해는 마음이 심난할때마다 따릉이를 타고 반포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오갈데 없는 마음을 자주 풀어놓았다. 멍하니 앉아 맥주를 한 캔 마시며 해가 지는 모습을,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올해의 대화 - “정욱님 약간 언니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회사 사람들에게 ‘언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친근하단 얘기겠지…?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변에 한 명씩은 있는 언니”같은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내 오랜 연애의 공백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의 베이킹 - 솔티드 캐러멜 휘낭시에

올 한 해도 수많은 요리를 했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솔티드 캐러멜 휘낭시에다. 만든 순간 내가 혹시 천재인가?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올해의 음식 - 또순이네 된장찌개

‘된장찌개가 다 거기서 거기지’하는 편견을 아주 깨부수어 박살 내버린 음식. 된장찌개로 건물을 올렸다는 말은 이런 맛에 붙여야 한다는 걸 느꼈다. 한 입 먹었는데 분명 된장찌개 맛이었지만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된장찌개였다.


올해의 소비 - 헤비츠 가죽 가방

옆으로 매는 가방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죽으로 된 가방을 특히 좋아한다. 조금은 클래식한 그런 서류가방이 주는 분위기가 있다. 회사 사람들이 보고선 한 마디씩 건넨다. “가방 예쁘네요.”


아이유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사실 미니 오븐과 고민했으나, 실용성보다는 심미적 만족감에 좀 더 점수를 주기로 했다.







올해의 작별 - 아롱이

올해 참 많은 이들과 아프게 이별했다. 그중에서도 17년을 키운 강아지 ‘아롱이’와의 작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롱이는 이제 평생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이름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아롱이를 닮은 페키니즈 계정을 팔로우하며 마치 아롱이가 환생한듯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울고 웃는다. 언제나 후회는 늦고, 나는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올 한 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취를 시작했고, 회사는 건물을 옮겼으며, 다프트 펑크와 가을방학이 해체를 하기도 했다. 연초에는 클럽하우스라는 역대급 단기 퇴물 서비스가 반짝 흥하기도 했다(그러고 보니 클하 아직도 하나?).


2020년에 다신 돌아오지 말라고, 끔찍했던 한 해였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2021년은 그보다 조금 더 끔찍한 한 해였다. 제발 내년엔, 제발 내년엔. 부디.


올 한 해도 습관이 되어버린 소원을 빌어본다.


“하기 싫은 일의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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