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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3. 2020

식물 생활의 시작

식물은 키워봐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

조경을 전공했지만 식물을 잘 모른다고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럴 리가요ㅡ하는 표정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하지만 과거 학생 때의 나도 그랬고 조경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사실 식물을 잘 알기 쉽지 않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조경이란 학문은 식물을 디테일하게 바라보는 것보다는 거대한 스케일의 외부공간을 '다루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 배움을 공간 디자인으로만 한정해도 배워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조경을 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그 수단이 되는 식물을 알아야 하는 필요성은 자주 느꼈다. 인접 분야에서 일하는 건축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경인의 강점은 식물을 잘 사용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식물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식물을 책을 통해 배워지지 않았다. 식물의 이름을 외운다고 해서 그 식물을 시의 구절처럼 내게 와서 '꽃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디서부터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으나, 어느 순간 나는 두 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첫 번째 분은 조경계에서 유명한 L 씨로 그는 그가 유명해지기 전 야인생활을 하며 장미를 키운 경험이 있던 것으로 들었다. 다른 이는 조경 현장에서 존경을 받는 어느 나이 많으신 분이었는데, 식재현장에서만 반평생을 사신 분이셨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이 분의 눈치를 보며 조경공사를 할 정도였다. 나는 식물을 직접 키워봐야 이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된다는 말처럼, 결론에는 쉽게 도달했으나 식물을 키워보는 경험을 가진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좌우로 가는데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그 큰 면적을 가진 서울에도 내 이름으로 된 땅은 1m2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멘트 구조물에 작은 식물들을 여럿 들였지만,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나는 식물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도시에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인정해야만 했다. 농촌이라면 가능할 일이었다.


회사는 바빴다. 비상상황은 잠시일 줄 알았는데, 회사는 언제나 비상이라고 했다. 회사생활의 대부분은 발등의 불을 끄는데 허둥대면서 보냈다. 눈 앞에 닥친 일에 허우적대는 동안 나는 내가 과거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잊게 됐다. 저녁도 없던 삶은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해외로 나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식물 생활은 시작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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