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과 채소밭 정원
모든 것은 바로 채소밭에서 시작되었다
정원에 텃밭이 존재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입장을 보인다. 가까이는 나의 부모님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꽃에, 어머니는 텃밭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섣부른 결론을 내야 하지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정원의 역사는 우리에게 단순하지만 묵직한 대답을 들려준다. 원래 텃밭이 정원의 시작이었다고. 정원 내에 텃밭을 도입하려는 이에게 왜 당신은 꽃이 가득한 정원을 가꾸지 않느냐고 뭐라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클레망은 말한다. 분수를 제외하고 베르사유궁의 정원들 중에서 기술 수준이 제일 높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왕의 채소밭이었다고. 그 채소밭 안에서 공부를 하거나 눈오는 날 이글루를 만들면서 놀던 나와 친구들은 아마도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채소가 생산되는, 즉 채소밭의 역사가 현존하는 이 곳에 대해 클레망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정돈과 배열, 각 면에서의 거리, 전망이 바로 여기서 태어났다. 최고의 구역인 채소밭에서는 모든 것이 물이라는 중심점을 둘러싸고 구성된다.
유용한 것과 유용하지 않은 것, 생산과 놀이, 경제와 예술 등 모든 것이 채소밭 정원에 잠재적으로 나타난다. 채소밭 정원에서 모든 정원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 채소밭의 설계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는 유해한 제초제 대힌 불완전하지만 기계를 사용하는 생물학적 처리법을 이용하는 방식에도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다.
채소밭 정원의 내용과 축적된 지식, 기술, 발견 등을 잊고 형태에만 만족해야 하는지를 묻는 그에게서 우리의 조경 혹은 정원교육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정원의 형태가 중요한 의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전부인양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농학과 원예와 너무 멀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해 프랑스는 채소밭의 역사에 대해 여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http://www.potager-du-roi.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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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로부터 정원만을 넘겨받을 뿐 정원과 함께 살아가는 정원사들은 넘겨받지 못한다.
라로슈 귀용 La Roche-Guyon 의 사례를 통해 노동자 대신 화학약품으로 정원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에 대해 비난을 하는 그. 지금 이 순간에도 황폐화가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정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는 역사적 유산을 이용하는 이슈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만일 재산이 과거 속에 박제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문화유산에 불과할 것이다.
정원사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살아 있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정원은, 관련된 인간들과 자연존재들이 항구적으로 함께 변화한다면 영속할 수 있다.
정원은 박물관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정원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를테면 경복궁은 어떻게 이용되고 있을까. 살아있는 유산에 대해 죽은 유산으로 대하는 방식을 언제까지 지속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