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Jun 13. 2018

67. 한 남자와 두 번 결혼하다

- 프랑스에서 두 번째 결혼식 준비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모두들 잘 계셨어요?

그동안 아기를 낳고

그 아이가 이제 곧 만 2살이 다 되어 가요^^

이제 조금의 여유가 생겼으니

다시금 이곳을 찾아올게요!

언제나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 프랑스에서 결혼준비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마치고 추석을 온 가족과 보낸 후 우리는 다시 프랑스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에서의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에 내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가져온 서류의 유효기간인 6개월을 넘기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파리 근교 Nogent-sur-marne

(노정 쉬흐 만)의 시청에 가서 결혼식 관련 문의를 했고 한국 결혼식 날짜의 딱 5개월 뒤에 2015년 1월 31일 프랑스에서의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결혼식 여부와 상관없이 가까운 구청에 당사자와 증인 싸인으로 혼인신고를 하면 되지만, 프랑스에서의 '결혼'은 반드시 '시청'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 결혼식 준비로는 시청 담당자와 결혼 당사자 두 명이 참석해 서류 미팅을 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또 준비해서 결혼식 담당자를 만나 서류에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면 결혼식 날짜를 받는 형태다. 서류심사는 부부의 신분을 체크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참여하는 증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도 제출해야 한다. 서류 미팅을 통해 받은 결혼식 날짜 당일에는 공식 증인 2명이 꼭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이 진행된다. 프랑스의 어느 시청이든 결혼식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려되어 있는데 보통 10-20여 명 정도의 하객이 참여할 수 있는 규모다. 물론 방에 다 입장하지 않은 하객들은 시청 내부나 시청 밖에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식이 끝나면 다 같이 피로연으로 이동하는 형태다. 서류 미팅을 마치고 우리의 결혼식이 이뤄지는 장소를 살짝 둘러보니 너무나 고풍스럽고 우아해 이곳에서 올리비에와 내가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한다면 정말 언발란스의 매력을 선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새신랑 새신부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낭트에 가서 친구들을 만난 우리, 만나는 친구들 마다 오! 새신랑 새신부하며 우리를 반겨줬고 한국의 결혼식 스타일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쏟아졌다. 전통의상을 입었는지 어떤 식으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는지 모두들 자세하게 알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새신랑이 반지를 착용하지 않아 엄청난 비난^^도 받았다. 당시 그는 반지가 도저히 익숙하지 않다며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언제 낭트에서 결혼 피로연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고, 그 뒤로도 낭트를 갈 때마다 친구들은 그에게 어서 날을 잡으라며 협박했고, 그는 고민 중이라는 말로 친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가 친구들을 만나 웃으며 열심히 한국에서의 결혼식과 여행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 이 년간 집중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결혼이라는 주제가 있기는 했던가? 싶었다. 뭐든지 해결되고 나면 참으로 아무 일도 아니다. 결혼식 이야기로 인해 정말 나 스스로는 헤어질 위기까지 갔었고, 너무나 많은 날들을 우울해하고 오해하고 싸웠었는데 저렇게 신나 하며 재밌어라 하며 웃으며 한 달 간의 한국에서의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호기심 넘치게 설명하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이 모든 상황을 다 겪고 다시 한번 또 느낀다. 그는 참으로 신중한 캐릭터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나에겐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결정한 후에는 그 결정을 믿고 쭉 가는 사람인가 보다. 반면 나는 굉장히 도전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빠른 결정을 하고 밀어붙이고 어떨 땐 될 대로 되라지 저지르자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큰 결정을 내릴 때 정말 스타일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더 알게 됐으니 이제 정말 나와 올리비에 사이에 큰 산을 하나 넘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낭트를 찾아 여러 올리비에 친구들을 만나서 우리의 결혼을 회자하며 정말 이제 잘 사는 일만 남았네 싶은 생각에 정말 간만에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살면서 또 어떤 점에 놀라게 되고 실망하고 행복해하게 될지 모르지만, 정말 앞으로는 잘 싸우고 잘 화해할 일만 남은 것 같다.


한 남자와 두 번 결혼하다!

2014년 8월 31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다시 5개월이 지난 2015년 1월 31일 프랑스에서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한불 커플인 이라와 엠마뉴엘, 용휘와 엠마뉴엘 두 부부에게 증인을 부탁했고 오후 2시 시청에 도착 곧바로 예식이 진행되었다. 이미 한번 해서 그런지 별로 설레지는 않았지만^^ 둘 다 한복을 차려입고 막상 시청의 결혼식 공간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은 떨리기도 했다. 결혼식 담당자들은 결혼에 대한 간단한 법 조항을 읽어주고 서로 신랑 신부로 받아들이겠냐고 물었다. ‘OUI(네)’라고 대답을 하고 반지를 주고받으니 결혼식은 끝났다. 결혼식은 매우 짧았다. 그렇게 대답을 마친 후에는 결혼식 서류에 나와 올리비에, 증인들이 사인을 했다. 프랑스의 결혼은 반드시 시청에서 해야 하고 예식은 짧게 진행되지만, 프랑스 결혼식의 꽃이자 정점은 피로연이다.


올리비에와 나는 프랑스에서의 결혼 피로연을 당장 할 여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로 남겨 두기로 했다. (프랑스에선 아기 낳고 애가 둘이고 큰애가 중학생이고 그런데, 어느 날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참 우리와 다르다. 프랑스의 피로연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대개 1박 2일로 진행되며 24시간 내내 마시고 먹고 춤추고 노래한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행사이기에 1박 2일 내내 그들은 축하하고 또 축하하며 기쁨의 순간을 오래도록 만끽한다. 심지어 올리비에 친구들 중 하나는 “소연 이 춤을 배우도록 해! 너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밤새도록 추게 될 거야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올리비에에게 한국에서 결혼한 후 딱 일주일만 반지를 낮이든 밤이든 잘 때도 껴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손에 뭔가 있는 게 불편하다며 끼지 않았고, 반지를 낀 채 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었다. 너무 단호하게 굴어서 나는 아우 됐네요 뭐 맘대로 하셔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 우리는 반지를 다시 반지 통에 담아 가져갖고 결혼식 도중에 다시 서로의 손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반전이.... 프랑스에서의 결혼식 지금.... 낮이고 밤이고 심지어 잘 때도 반지를 끼고 있다. 그래서 이 반지 사건 이후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내 입장의 권유 혹은 그 입장으로 보면 '강요'를 하지 않는다. 본인 좋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려고 노력한다. 그냥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시청의 결혼식 진행을 맡으신 분들과 한컷


매거진의 이전글 66.처음으로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올리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