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지 Aug 14. 2024

지하 물리치료실에서


면접하러 가던 날 느낌이 싸했다. 병원 앞에선 사람들이 쭈구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고, 전봇대옆에 쓰레기더미에서 윙윙 거리는 날파리들, 녹슬어진 간판은 80년대 시골병원을 연상시켰다. 접수실 안을 곁눈질해서 보니 허름한 의자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환자와,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움직이는 간호사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바글바글한 인파에 놀라 제발 저 병원만은 아니기를 기도했다. 


지하에 내려가 실장님과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고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엉겁결에 그로부터 6년을 몸을 갈아서 일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물리치료실의 추억. 여름 장마철만 되면 곰팡내가 코를 찔러댔던 곳.     

 

새벽 5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도 1층 병원 대기실은 늘 북적했다. 치료실이 열리면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오는 환자들의 소리가 들렸고 발 한쪽을 끄는 소리가 귀에 걸렸다. 허리디스크 환자였다. 찜질팩을 아픈 부위에 댔다. 환자분 괜찮으시죠?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오전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물도 마실 시간 없이 치료하다보니 허기가 빨리 찾아온다. 점심시간이 되면 4층 식당으로 튀어갔다. 혼자 사니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병원에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알을 욱여넣으며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 틈틈이 원장님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러 가기 일쑤였다. 현지 씨, 목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독한 약 성분이 몸에 타고 흐른다. 덩치 큰 남자분 어깨를 치료할 때면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선생님, 너무 자주 아픈 거 아니에요?.” 나는 한 달에 한 번 링거를 맞아가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물리치료사에게 자기 관리는 필수다. 환자 스트레스도 있지만, 몸 관리에 소홀해지기 시작하면 동료와 관계가 불편해지는 일이 많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눈치까지 보이는 상황이 나를 옭아맸다.      


우리 병원 진상 아저씨가 진료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하필 내 차례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치료하는데 연신 불만은 내뱉었다. 치료 부위 위치가 안 맞다, 전기 강도가 약하다, 다시 올려드리면 낮춰달라, 끊임없는 요구에 내 얼굴이 점점 구겨진다.      


아씨 거기 아니라고 왜 이렇게 못 해? 진짜 때려치울까. 서러움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붕어눈이 된 채로 실장님에게 환자 비위 맞춰주는게 어렵다고 못 해 먹겠다고 얘기를 했다. 남의 돈 벌어먹기가 참 쉽지 않다. 집에 빨리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쉬고 싶었다.      


퇴사 욕구가 하늘을 찌를 때도 있지만, 치료사 인생에 가슴이 말랑해지는 순간도 온다. 산재 판정을 받고 팔꿈치까지 철심이 박혀 온 A군은 치료 시기를 놓쳐 손목이 잘 구부러지지 않았다. 약간의 짜증과 걱정 가득한 얼굴이다. 선생님, 저 빨리 나을 수 있을까요? 진짜 망했어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30대 남성, 답답함과 간절함이 그의 눈빛에서 나오고 있었다. 

타 병원에서 재활을 실패하고 온 굳은 A군의 마음을 다시 열기에는 쉽지가 않다. 긴장을 한 탓에 얼굴은 경직이 되있고, 팔에 힘을 몇 번이나 빼라고 툭툭 쳤다. 주어진 10분 동안 집중해야 했다. 딱딱하게 굳어진 손목이 내 실수로 인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노심초사하며 환자의 손목을 움켜잡고 천천히 굽혔다. 조금씩 내가 힘을 가할 때마다 굳어진 근육들이 풀렸다. 다이어트에 정체기가 있는 것처럼 재활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숨기느라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에 미심쩍었던 환자분의 표정도 손목이 유연해짐과 동시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선생님, 덕분에 손목이 잘 굽혀지기 시작했어요”      

손목의 관절가동범위가 90도 정상범위로 무사히 돌아왔다. 약국에서 헐레벌떡 달려가 비타 500 한 박스를 내게 쥐여주신다. 빨리 낫고 건강한 일상생활로 돌아가길 바라는 진심을 알아주실 때 업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 고시원에 입주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