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 해리 G. 프랭크퍼트
2023년 5월 22일(월) BnJ의 제19회 독서모임.
책 제목을 보고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한 편으로 내 마음에서 울리는 단어이기도 했고 한 편으론 내뱉고 싶은 단어이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표지에 담긴 단어는 수면으로 가라앉았고 '흥미'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로운 관점과 사유를 안겨준 책, 녹색이 가득한 창가에 앉아 후일담을 나눴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내가 처음에 언니한테 이거 되게 안 읽힌다 그랬잖아요. 주로 책을 출근 시간에 읽으니까 내가 진짜 졸린 건지, 이 책이 안 읽혀서 졸린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이 책을 2번 읽었거든요?
B: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읽었어?
J: 본문만 2번 읽었어요. 최근에 내가 책을 두 번 읽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잖아요. 그 현상에 대해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이유가 책의 도입을 들어갈 때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을 읽을 때 장르에 따라서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철학의 위안'을 읽는다 하면 철학을 사유하는 책이지 스토리를 따라가는 책이 아니잖아요. 이것이 소설책인지, 철학책인지, 과학책인지 대충 장르를 인지하고 그에 맞게 책을 읽어야 하는데, 철학책을 읽으면서도 그냥 소설처럼 스토리를 중심으로 읽으니깐 중간쯤 '이게 뭐지? 지금 나 뭐 읽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때부터 책이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두 번 읽을 때는 옮긴이의 말과 해제까지 읽은 상태로 다시 읽으니깐 어떤 것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알아서 그제야 책이 잘 읽히더라고요.
B: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 마음가짐이라기보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라고 책을 한 번 쭉 다 읽었고, 어떤 것이 중요한 내용인지,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지를 아는 상태로 봐서, 지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잘 이해되는 건 아닐까?
J: 그런가? 내가 늘 책을 읽을 때 앞에 50페이지 정도를 되게 오래 읽고, 그 뒤로는 되게 빠르게 읽거든요? 책에 빠져드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책이 빨리 읽히든 책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B: 매번?
J: 네. 그런데 이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책을 읽는 중반까지도 책의 제목을 제대로 모르는 것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B: 그래서 계속 이 책을 '개소리 말하라'라고 한 거야?
J: 그런가 봐요...ㅎㅎ 책 커버를 씌워서 읽으니깐 제목을 볼 일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에 커버를 벗겨서 책 제목을 확인하고 그러거든요.
B: 나도 그렇기는 해. 책 제목을 처음에 한 번 보고, 읽으면서 안 보게 돼서 잊어버려. 근데 사실 책 제목이 뭐였는지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의 이야기와 여기 있는 생각을 내가 보고 느끼는 것뿐이니까, 보고 받아들이고 생각할 뿐이라고 보거든. 그 과정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에 이 책을 덮으면서 '아~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이거구나.'로 연결되면 좋은 거고, 연결이 안 되면 '왜? 제목을 이렇게 썼을까?' 하고 그때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J: 맞아요. 사실 그런 의미에서도 책 제목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또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주로 소설을 많이 읽고, 독서모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서구권 소설 위주로 읽었잖아요. 그래서 타 장르의 책을 읽을 때 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신 없음의 과학>>도 그렇고 <<개소리에 대하여>>도 그렇고. 이런 장르의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되는지 잘 몰라하는 것 같기도 해요.
B: 장르마다 읽는 방식이라는 게 따로 읽을까? 그런데, 나는 네가 이렇게 책을 읽고 한 번 더 돌아가서 읽는 거 자체가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어. 왜냐면 나도 나한테 시간적 여유나 체력적인 여유가 있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책들이 분명히 있지만, (이 책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못해서 아쉬운 경우가 많으니까. 영화도 한 번 볼 때 하고, 두 번 볼 때 확연히 다른 지점을 발견하게 되잖아. 그런 것처럼 책을 다시 읽었을 때도 분명히 내가 생각하거나 보는 관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거든. 그래서 네가 네 에너지를 쏟아서 책을 한 번 더 본다는 행위는 이미 굉장히 유의미하고 너에게 도움이 되는 읽기 방식이라고 생각해.
J: 사실 책을 두 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에 독서 모임을 하면서 내가 하는 말이 알맹이가 없는 것 같아서예요. 독서모임 하면서 나눈 대화를 브런치에 정리해 보니, 내가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낀 바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건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B: 왜 알맹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사실 역자의 말이나 후기 같은 걸 잘 안 읽지만 너는 그런 해제를 항상 읽어오잖아. 그래서 기본적으로 네가 나보다 이 책이나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해 왔는데?
J: 그 글에 쓰여 있는 건, 내가 아는 것과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것은 다른 거니깐요. 독서 모임을 하면서 역자의 말을 우리가 주제거리로 삼아서 얘기를 할 때도 있지만, 그건 내가 한 말은 아닌 거잖아요. 그리고 내가 이해를 잘 못하니까 언니한테 어떤 주제를 던져주지도 못하는 것 같고...
B: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것은 나도 매한가지지 뭐.
J: 아니야. 내가 느끼기에 언니는 큰 줄거리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이야기는 특정 책이 아닌 어떤 책에 붙여도 이야기가 되는 말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세밀하지 않고 포괄적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최근에 했던 독서 모임이 좀 해이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B: 바로 앞에 읽었던 <<신 없음의 과학>>이 좀 그랬어. 사실 개인적으로 그 책에 대해서 별로 할 얘기가 없기도 했고.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책이어서, 그리고 사전 지식이 없는 분야기도 했고, 관심이랑도 멀었고. 그래서 약간 머리도 마음도 떠나 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었어. 최근의 그 경험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 같아.
J: 그래서 오늘의 독서모임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공부를 좀 했어죠.
B: 그럼 오늘 공부한 것 좀 풀어봐.
B: 이 책 되게 금방 읽혔어. 맘 잡고 읽으면 하루면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역자의 말과 해제까지도 읽었지. 개인적으로, 본문보다 역자의 말이 더 재미있었어.
J: 옮긴이의 글도 좋았고, 해제도 좋았어요.
B: 해제를 쓴 사람이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성훈 교수잖아. 강성훈 교수가 프랭크퍼트와의 인연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해서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있구나라는 것은 알겠는데 오히려 재미는 좀 덜했어. 그 얘기가 너무 길게 느껴졌어.
J: 옮긴이의 말은 '책을 옮긴 것에 대한 글'이고, 강성훈 교수에 대한 글은 또 다른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철학자의 시각과 견해를 볼 수 있는 단편집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B: 이 책이 철학자가 쓴 것이라는 것도 알고, 그래서 철학책이라는 것도 알고 읽었는데, 초반부터 단어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다 보니 한 편의 언어학적 인문학 도서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해. 'Shit'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개소리가 어떻고, 거짓말이 어떻고, 참과 거짓, 이런 단어에 대해서 계속 풀어서 이야기해 줘서 그런 것 같아.
J: 맞아. 초반에 단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죠.
B: 반 이상이 그랬어... 아니, 사실은 거의 마지막까지도?
J: 그래서 이게 옮긴이의 역할이 큰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어 단어나 문장을 한국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분명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본인의 철학을 넣어서 어떻게 번역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어요. 아주 미세한 차이도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는데, 그것에 따라서 글쓴이의 의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았거든요.
B: 사실 모든 인문학에는 자기만의 철학적 사유가 들어가야 되는 거잖아. 이 책은 그 사유를 우리가 왜 더 깊이 있게 해야 하는가를 잘 풀어준 책인 것 같아. 역자도 제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다고 쓰여 있잖아. 지면에 블랭크(빈공간)로 돼 있는 원제를 보고 신문지상에 실으면 안 될만한 단어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개소리'라고 했다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얼마나 깊은 사유를 했는지 알 수 있었어. 그래서 그 부분이 더 재밌게 다가왔지.
또, 내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역자가 한번 더 짚어주기도 했는데, '거짓말을 하면 그게 문제가 되지만, 개소리를 하면 어깨 한 번 들썩하는 걸로 넘어갈 수 있다.'는 문장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라고. 그리고 개소리는 '진실과 거짓'으로 이렇게 규명되는 게 아니라 '가짜'라는 단어를 쓰잖아. 이 부분도 무척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또 하나 공감했던 부분은 '개소리를 하는 건 일종의 허세를 포함한다'라고 말하는데, 허세부리기와 거짓말하기 둘 다 기만의 양상이라고 언급할 때, '허세'를 개념에 포함했다는 것도 너무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J: 나는 비유를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Shit'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소리를 똥 싸는 것과 비교하잖아요. 똥이 영양가는 다 흡수하고 정말 불필요한 것만 나온 거잖아. 그러면서 이후에 'Bull'을 표현하면서 그게 더운 공기를 내뱉는 것이라며 '변을 배출하는 것'과 '더운 공기를' 다시 한번 엮으면서 아무런 영양가 없는 것을 내뱉는 행위가 '개소리'다고 비유한 것이 정말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B: 오. 나는 오히려 그 내용이 뒷내용이랑 약간 상충한다고 느껴지기도 했어. 아무 의미 없는 말 이라곤 하지만 허세를 포함하기도 하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 실패했을 때에 대한 그런 어떤 부담감이 적은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 실패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하지 않고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나 제스처에는 가벼울지언정 어떤 분명히 의도가 포함돼 있는 거잖아. 그래서 약간 상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러 가지로 옮긴이의 말은 참 재미있었어.
언론의 언어가 무책임해진 지는 오래되었고,
최근 SNS의 등장으로 사회 전체가 말이 너무 많아졌다.
인터넷은 한마디로 개소리의 바다다.
J: 나는 철학이라고 하면 인생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 그 안에서 철학을 얻어가고... 그런 거대한 것들을 생각했는데, '개소리'라는 누구도 거들떠볼 것 같지 않은 주제를 철학적으로 풀었고, 또 그를 통해서 본인의 철학을 명료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어요.
B: 고대 철학자만 철학이라고 생각했어?
J: 그렇지.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그런 것만 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B: 세계관이 넓어진 것 같아서 몹시 좋다.
J: 언니는 책을 읽으면서 단점 같은 거 느꼈어요?
B: 음... 언어학자처럼 주제를 풀어서 중간중간 조금 읽기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거?. 그래서 나도 보다가 자고 보다가 자고 했거든. 실제로 읽은 시간을 산출해 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아.
J: 나는 초반에 들었던 생각이 문장을 너무 어렵게 꼬아서 썼다는 생각을 했어요.
B: 맞아. 그리고 그건 공부 많이 한 학자들의 특징인 것 같아.
J: 언니한테 예시로 들었던 문장이 '무심코 진실하지 않기란 거의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이 문장을 '무심코 진실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B: 이거 '거의 불가능하다'와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뉘앙스가 다르니까.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
J: 맞아요. 그러니깐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그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완벽한 문장이 아닌 거예요.
B: 네가 말한 것처럼 쉽게 풀려면 얼마든지 이 문장을 쉽게 바꿀 수 있겠지. 하지만 여기에 꼭 '무심코'를 넣은 것도, '진실', '거짓' 이걸 말하는 그 행위 자체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한 것이지 않을까.
J: 모든 문장이 지금 예시를 든 것과 비슷한 게 많았거든요. 후반부에는 '왜 이렇게 문장을 어렵게 썼지? 이게 아는 사람들의 허세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중에 읽다 보니까,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100%로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해하면서 보기는 했어요.
B: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의 특징인가 봐. 내가 얼마 전에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는 교수이자 연출가인 분에게 글을 받았는데 그분이 '공동으로 존재하는 관객'이라는 표현을 쓰셨어. '공동 존재 관객'이라는 말이 '현존하는 관객' 그냥 '일반 관객'이랑 동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꼭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하는 어떤 용어인 것 같더라고. 그래서 교수님한테도 고치면 안 되는 거냐라고 이제 물었을 때 '그건 일부러 그렇게 쓴 거다.'라고 하셨어. 그래서 저같이 연극에 무지한 사람들이나 일반 독자가 이걸 읽는다면 분명히 이해되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그걸 쉽게 그냥 관객이라고 풀어서 서술을 해 주셨는데 이 책과 비슷한 예의인 것 같아. 많이 아는 사람들은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걸 거야. 그래서 자꾸 사족을 붙이고 설명을 더하고, 이들이 알고 있는 언어를 활용해서 문장을 만드는 거지.
J: 그래서 이걸 보면서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했던 기생충의 한 줄 평이 떠올랐어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이 문장이 이슈가 됐었잖아요. 그리고 항간에는 왜 굳이 이렇게 어려운 말을 골라서 쓰냐, 허영심이냐 이런 말이 많았었는데, 이동진 평론가가 나와서 해설을 해줬거든요. 그때 본인이 표현하려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들을 꼭 사용했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책의 문장들도 마치 그런 것 같았어요. 그리고 '유리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문장을 읽으면 대충 이 단어의 의미는 알 수 있는데 나는 이 단어를 책에서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아요. (물론 이 단어는 번역가가 선택한 단어지만)
B: 사용되는 것을 처음 봤다고?
J: 네. 그래서 어떤 의미인지는 아는데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 사전을 찾아봤어요. 이 번역가에게는 이 단어를 써야 되는 이유가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조금 더 쉽게 풀려면 충분히 풀어쓸 수 있는데 이 '유리된 것처럼'을 쓴 것이 의도적으로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긴 하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B: 유리된 거랑 분리되거나 떨어지는 것은 아예 다른 뉘앙스를 가지는 거니깐. 네가 이 단어가 사용되는 걸 처음 봤다는 게 새삼 놀랍다. 책을 많이 보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이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어.
J: 그러게요? 오히려 한국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이 단어를 많이 봤을 것 같은데 내가 주로 외국 서적을 많이 읽었잖아요. 번역서에서 자주 사용될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B: 그렇지. 소설에서 많이 쓸 법한 단어는 아니지.
J: 그렇죠. 근데 나는 주로 소설 위주로만 읽었으니까.
B: 이 단어든, 문장을 쓰는 방식이든, 쉽지는 않지만 명확한 표현들이었던 것 같아.
J: 처음에 책의 초반쯤 읽을 때 여기저기 이 책 너무 재미없다고 말하고 다녔거든요. 그때의 점수 한 번, 그리고 뒤에 옮긴이의 글과 해제를 읽었을 때 한 번,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읽었을 때 한 번 이렇게 세 번 점수가 다 달라요.
B: 점점 올랐구나?
J: 네. 이런 것이 철학책이구나. 철학자라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바라봐야 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게 철학이구나. 그래서 철학이라는 게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길에 있는 개를 보면서도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사유하는 게 철학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B: 그래 맞아. 큰 깨달음을 얻었네. 두 번 읽으면서 공부한 결과가 아주 진리다.
B: 문장력 2.1점 + 구성력 2.0점 + 오락성 2.3점 + 보너스 1점 = 총 7.4점
J: 문장력 2.6점 + 구성력 2.4점 + 오락성 2.5점 + 보너스 1점 = 총 8.5점
B: 이기주 - 언어의 온도 : 170만 부가 팔린 언어학 관점의 베스트셀러
J: 프랜 리보위츠 - 나, 프랜 리보위츠 : 프랜 리보위츠 스타일로 개소리를 신랄하게 이야기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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