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공원 Jul 05. 2022

오소리 멍텅구리 오소리!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따윈 없지...

종각역 2번 출구에서 그를 만나기로했다.  거즈면 티셔츠, 와이드 팬츠에 땀이 차다 못해 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불쾌의 데시벨이 점진적으로 높아질때 2번 출구에 도착했다. 때양볓에 서서 멍하니 카톡창을 띄우고 땀을 흘린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두더지 게임을 시작한다.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는 정수리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둘하나둘.

셋둘 하나둘. 하나둘. 하나 하나.  

붉은 정수리 말고 검정 정수리라고, 노랑색 정수리 말고 검정이야. 이대팔 가르마 말고 육대사라고, 아! 검정 육대사다! 그런데 어깨가 너무 좁아. 아니야 어깨깡패라고!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늦게 도착한 그는 항상 나를 책망한다.


“ 아니 너는 왜 전화를 안하고...!!”


나는 전화를 잘 못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화를 안 한다. SNS가 발달하고 전화를 못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를 볼 때는 반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가 나도 나도 전화 못해. 하면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듯 꺄꺄 정말이냐고 한사발 호돌갑을 떤다. 


애인이 어디에 있건 전화를 한다. 궁금은 하지만 그냥 안 하다 보니 못하게 되고 못하게 되니까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이면에는 전화 스토킹을 세례를 받았던 과거가 있다.  전화에 질려 버려 자연스례 통화와 멀어졌다. 오랜 친구에서 연인이 되거나, 몇달간 만나고 난  친밀도에 따라 통화가 편해진다.


그는유명한 고추 튀김집을 들러 바삭바삭한 튀김을 손에 쥐어주었고, 퇴근길에 떡볶이를 사다가 우리집 문고리에 걸어 두기도 했다. 내가 나가기 귀찮아서 아프다고 둘러댄 날엔 약을 문 앞에 두고 가는 극진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결혼이 급해 보였고, 나는 결혼이 우주 어디쯤 이름모를 행성처럼 아득했다. 이따금 나는 전화를 받지 못했고, 그는 답답했다.


그런 그가 이별을 통보했다.


“ 너 랑 뭘 해도 감정이 미끄러져 내리는 기분이야. 그만하자.”


이별이라니 맘속 깊은 곳에서 우럭 우럭이 꿀렁꿀렁 춤추더니 곧이어 입모양이 동산 모양으로 내려앉았다.여기서 더가면 입술끝이 파르르 떨리고 뇌뒷편에서  해일이 몰아치면 눈물발사가 시작되니까 제발참자고  다독인다. 이별은 매번 똑같이 아프다. 한번만 아프면 좋겠는데 이별선고가 몇달간 쫒아다니며 '넌 이별한 사람이야. 응 넌 시련상태야. 응 지금 이 이별노래 니꺼야~'놀리듯 이별꼬리표가 필사적으로 쫒아다니는 구간이 있다.



이별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끝이라는 단어. 끝. 끝. 끝. 헤어져. 끝내. 못하겠어. 너랑은 못해먹겠어.안 되겠어. 너랑은 힘들 것 같아. 너랑 나랑은 다른 사람인 것 같아.(다르지 그럼 우리가 쌍둥이임?)우린 방향이 달라.여기까지. 가치관이 달라. 살아온 환경이 달라. 여기까지 인 것 같아요.(존대말이 더싫어. 이별하는 와중에 침착해!  소시오패스야!!-.-)감정 소모하기 싫어. 편해지고 싶어.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래. '끝 끝 끝. 헤어져.'는 몇 번을 들어도 같은 강도의 먹먹함이다.


끝 끝 끝을 끝으로 받아쳐서 그래 끝이라고!! 나도 진절머리 난다고! 하면 놀라서 이별을 물르는 물러터진 사람도 있고, 어쭙잖은 이별로 자존심을 채우려는 상대에게 더 크게! 강려크하게!! 끝 끝 끝을 먹여 버리면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더!더! 거세지는 넌덜머리나는 자존심 싸움에 질릴 나이가 되서야 이별우럭 삼키는 법을 터득했다.


이후 나는 마음에 대해선 여러모로 편리해졌고, 사랑을 시작할 일이 줄었고 사랑에 대한 기대 또한 내려놓았다. 어떤 잡지에서 사회생활을 극도로 잘하는 이들이 약간의 소시오 패스적 성향이 있다던데, 싫지만 공감도 하고 말이다.

흠-그래 난 이제 정말로 진짜로! 완전히!사랑의 소시오패스다!


힘들땐  동물그림을 찾아본다. 때마침 오소리가 마시멜로 꼬치를 들고 있는 귀여운  그림을 발견했다.


누군가 오소리에게 달콤함 마시멜로 꼬치를 주고 불도 피워 주고 갔다. 오소리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마시멜로가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다 냄새도 맡고 만져 보기도 했다. 말랑말랑 재밌었다. 마시멜로를 꼬치에서 빼내어 만지다가 불에 넣어본다. 불이 붙은 마시멜로가 금새 타들더니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ㅠㅠ

마시멜로의 달콤한 맛도 모르는 똥개 멍텅구리 오소리!!


 문고리에 떡볶이를 걸어두고 , 약을 사두고 간 사람에게 멍텅구리 똥개 오소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다음 오소리 짓을 안 하게 된 건 아니다. 우리는 사랑에 임할 때 꿀 먹은 멍텅구리 오소리가 된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뭘 원하는지 몰라서 … 계속 모르고 모른다. 이렇게 모르다가 마시멜로 없는 오소리로 죽을수도 있다.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만 남은 에너지가 있다. 타인으로 쉬이 치환되기 힘든 그에게서만 형성된 기류….

미련.


미련을 버리려는 미련스러운 나는 아직미련이 남아서 미련한 방법을 강행할 미련이 있다.이별 끝에 끝끝!!!이라는 오소리에게 은근한 달콤함을 다시 내비쳐 걸려들게 하거나, 오소리를 화나게 해서 붙잡는 방법을 터득해  붙잡는다. 하지만 이미 끝을 말한 오소리의 기류는 저만치 극단의 끝으로 편향되어있다. 당기면 당길수록 자꾸만 끝 끝 끝!!! 을 외칠뿐이다.


결국 나는 오소리가 줬던 수많은 끝끝끝의 이유를 고스란히 돌려주고 말았다. 질려버린 그가 마시멜로를 갈귀갈귀 찢어 태어버릴 지경이 되자 그에 대한 나의  에너지는 소진되었다. 에너지를 다쓰지 못하면 미련퉁이가 되고마니까 미련하지만 미련한방법이 최고의 미련떠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소리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멍텅구리도 꼭 멍청한 건 아니야 하면서 남아있던 오소리의 먼지를 분연히 떨친다.

 


다음엔 타이밍 맞는 오소리이길 기도할래.

다음엔 마시멜로 맛을 아는 오소리이길 기도할래.



하나. 둘 셋둘. 하나둘.


하나.


하나.



#사진출처 - 브랜드 다이노땡



작가의 이전글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