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공원 Jul 11. 2022

타이밍


 20대 초반에 만났던, 지금 마흔의 남자에게 서신이 도착했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하는 가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인데 돈이 안 벌린다는 것이며 여자 친구 와도 헤어지는 바람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전 여자 친구의 성향을 분석해주고 다시 잘될 수 있을 방법 따위를 같이 고민해 보기도 했는데, 그 중간엔 갑자기 자신을 무시한 여자 친구가 밉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다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어 했다. 해서 그녀가 결혼을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 보았는데 그 순간에 또다시 여자 친구가 밉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고 했다. 가게가 잘 안 되는 고민에 대해서는 그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봤다. 이걸 잘하니깐 나는 너한테 이런 도움을 받고 싶으니까 그걸 찍어서 올리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을 편집을 해본적이 없으며 얼굴 팔리는 것은 싫다고 했다. 해서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는 또다시 돈이 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알았다는 말을 하다보니 정말이지 도.무.지.한개도 모르겠으나 계속 알았다고만 반복했다.


“난 내 여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있으면 돼”.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는 물음에서는 그가 조금 절박해 보였으므로 나름대로 생각을 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네 여자는 없어. 결혼하면 네 여자고 연애는 스칠 뿐이야."


꿈같은 시간을 사는 것 같은 그에게 산통을 깨 버린 것은 조금 미안하지만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인게 나라는 인간이라서 그렇게 답했다. 나는 그가 그전의 그녀와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또 알았다고 했다. 그는 연애가 영원할 수 없으며 연애는 잠시만 니 여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는 나의 말에 몹시 실망한 역력을 보이며


“조건으로 하는 결혼은 불행해. 돈이 많아도 다 바람피우던데? 나는 사랑해서 결혼할 거야.” 했다.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고, 그가 하는 나머지 말들을 그냥 들어줄 뿐이었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센터로 오면 무료피티를 시켜 준다고 했다. 운동이 절실한 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갈수 없다고 했다.  내가 너무 멀다고 하자 커피를 마시자고했다. 나는 그날은 시간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니여자는 없다는 이야기를 나는 또 해버렸고 격해진 그가 나에게 이혼 두번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고 하더니 바로 사과했다. 이후 그의 연락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 다음 주 그의 카톡 프로필에 여자의 사진이 바뀌었다.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그리 긍정적인 문장은 아니라 제대로 서평을 적어본 적은 없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가 있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은 지나갔다. 그해의 모든 태풍은 소멸했고 , 모든 매미는 울음을 그쳤고, 아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그게 다였다.’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어떤 일들이 그저 그렇게 스쳐가거나 어느 순간이 저물어 갈 때 이 부분을 읽으면 금새 평온해 진다. 전부 다  저마치 흘러가 사라져 버린 같은 착각에 놓인다. 듣자마자 단 맛으로 온몸을 휘감는 긍정의 말보다도 앞서 내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문장이 되어 내 안에 살고있다. 시간은 유한하고 결국 어디서 끊고, 시작하고, 마치는 것으로 이뤄진 게 인생이니까. 나는 정영수가 주는 위로가 꽤 맘에 든다.


<우리는 닮아 가거나 사랑하겠지>는 지나치고, 소멸해 버린 여자들을 바라보는 산문이다. 매미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들이 모두 물에서 나온 시점에서 쓰였다. 이 책을 읽는 내 그를 바라보는 여자 입장에 긴시간 서있었다. 이런 애착으로 꽤 오래 들고 다니며 속도 썩어본 책이다.


이동영(필명- 생선) 작가님은 천진난만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시는 분이다. 나 또한 내가 쓰고 싶은 곳에 닿기 위해 천진난만함이 필수라 생각해 그의 모습을 자주 지켜본다. 아직(자본주의에서 한껏 빠져나와야) 가능해지는 천진난만을 왔다 갔다 하기 버거운 자주 속상한 상태에 살고있지만 그를 지켜볼 때 가끔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그조차 ‘연애의 영속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든 그녀들은 이제 없다는 것. 그 시간은 모두 지나가 버렸다는 걸’ 인정하는 입장의 책이기도 하다. 반면 이런 솔직함과 아이 다움이 그에게 작가적 영속성을 부여했으니 인생은 어느 쪽이나 꽤 살만 하구나 웃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순간을 사는 사람 옆에서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류의 인간.  늘 적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실패를 보완하고, Plan BC옵션을 계산하고 사는 치밀한 인간. 뒤늦게 다음 스텝에 도착한 표독한 이들의 연락을 받기도 하는 사람. 그리하여 못 가본 야속한 삶들에 대해 계속해서 내려놓는 중이며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 또한 믿지 않게 된 사람이다.


지금만이 정답인양 뙤똑히 버티는 그들을 아이다움을 보며 웃음을 보일 여유는 갖게 된 사람. 그러면서도 그의 정답지에 한 발짝 들어가 들여다 보곤 하는 사람. 너의 정답과 나의 정답이 합쳐졌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여러 가지로 기웃거리기도 하는 사람. 도무지 합의점이 보이지 않거나, 미래를 부정해 버리는 이를 보면 일찍이 손 사례 쳐버리는… 꽤나 비겁함을 답재한 자본주의 어른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닮아 가거나 사랑하겠지>의 그가 그녀들에게 인생은 배운 것 거처럼, 나 또한 그들을 통해 새롭게 배운 지금과 순간만큼은 간직하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성공에 맞춰 그녀의 삶의 방향과 바람까지 세상에 맞춰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급행열차와 지금 이 시간은 지나가면 없다. 그때 누릴 수 있는 건 그때 누려야 하고, 열차의 풍경에 스밀 수 있다면 그때 스며야 한다. (…) 그저 난 쉬지 않고 활약하는 그녀의 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다음, 그 자리에서 잠시 주저앉게 하고 싶을 뿐이다. (본문 중)


그녀는 세상의 시간에 맞춰 살기 때문에 그녀만의 세계관에서 지금을 사는 것뿐이라고 내 안의  내가 외쳤다.


만약 모든 것이 제시간이엇따면,
나는 음악들과 책들과 내 모든 이야기를 그녀에게 주고 사랑한다고 투항했을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지금 그시간은 지나버렸다.
너와 만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바닷가에 다시 또 찾아와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멀리로 떠나자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이 노래가 세상에 들리게 된다면 그녀가 내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그녀만의 인생을 살아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나 나줬던 대화 그리고 나의 감정은 폼페이 베수비오화산의 용암처럼 흘러 내 노트를 한줄 덮었다. (125)



소설가 권여선의 <사랑의 믿다>는 타이밍에 대한 야속한 소설이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로 출발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대화와 미래에 사고처럼 빠져버리는 사랑은 없을 것이란 허무함을 전달한다.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식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콧날 끝에서 윗입술에 이르는 인중선이 깎은 듯 단정해 과녁처럼 시선의 포인트가 잡혔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윗입술의 움직임에, 다시 말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막연히 예쁜 얼굴보다 여러모로 유리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었다. (13-14)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묘사하는 부분은 꽤나 정확하면서도 풍부한 표현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남자는 여자의 이목구비와 표정, 눈빛을 관찰하며 사랑에 빠져 버리나 보다.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는 평범한 이목구비를 자세히 묘사하며 이로서 이 평범함이 완성된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그녀의 얼굴에 멈춰 치밀하고도 긴 분량을 소진한다.

 <사랑을 믿다>의 남자 주인공은 이석원 보다도 치밀한 분량으로 관찰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랑을 하고 온 후, 다시 그녀와의 술자리 시점에서 쓰였다.

3년이 지나 낡은 건물의 상속자가 되어 나타난 여자가 그에게 말한다.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 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 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하기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아주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23)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가 있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은 지나갔다. 그해의 모든 태풍은 소멸했고, 모든 매미는 울음을 그쳤고, 아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그게 다였다.’
작가의 이전글 여기서만 넘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