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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 Dal Jul 25. 2018

Episode2. 어설픈 일탈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사춘기 아이, 그런 아이에게 야단이라도 치면 부모는 자신 마음 몰라주는 세상 야속한 어른, 천하의 잔소리쟁이로 전락합니다. 그러니 서로의 불만은 켜켜이 쌓이다 fight!! 격렬히 싸우거나 불만 토로 방식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방어하게 되죠.

하지만 사춘기 아이와 부모 사이에 늘 화내고 싸울일만 생기는 건 또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 누구보다 진하고 끈끈한 사이, 아기 때부터 10년을 훌쩍 넘은 그들만의 역사가 있으니, 부모는 아이의 변화에 가끔은 '피식', 어이없는 헛웃음도 나오거든요.



#Episode2. 어설픈 일탈


오랜만에 보는 빨간색 틴트. 선배 동료가 선물로 준 5년이나 퀴퀴 묵은 화장품이다. 김 여사가 소지한 것으로는 유일하게 선명한 빨간빛, 입술에 두어 번 칠해봤지만 도드라진 빨간빛에 고개를 절레절레 곧바로 화장대 서랍 깊숙이 넣어뒀다. 근데 이 물건이...가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었던 빨간색 틴트가 화장대 앞에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낸 거다. '내가 꺼낸 적이 있었나?' '남편이 다른 물건을 찾다 꺼낸건가?' 드라이기며 가족들 화장품이 뒤섞인 화장대. 틴트 하나 더 나왔다고 딱히 어색할 건 없지만 그래도 이 물건이 왜 나왔을까? 잠시 생각을 되짚어보기는 했다.


주말 아침, 김 여사는 오늘도 반강제로 외식을 주도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무조건 남이 해주는 음식이니까, 식사 준비 마치고 식탁에 겨우 앉아 먹는 식어빠진 음식이 아닌 따뜻한 온기 가득한 방금 막한 음식!!

김 여사의 지론으로 언제나 주말 점심은 외식이다. 가족들이야 휴일이면 늦잠자고 tv보고 뒹굴뒹굴 쉴 궁리를 하지만 김 여사에게 주말은 밀린 집안일에 주식과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평일과 성격이 조금다른, 어쩌면 평일보다 좀 더 고된 일상의 연속이다.

"아무거나 먹자."

각자 다른 식성에 메뉴 결정에도 실랑이가 따르지만 결국 어른들이 맞추기로 하고 김 여사는 화장대 앞에 섰다. 어찌 됐건 주말 점심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니 대충 파우더만 바르고 나갈 요량이다. 근데 케이스를 열었더니 어라, 파우더를 찍어 바를 퍼프가 없다.

  

엉킨 머리를 정돈할 고데기는 화장대 아래로 고개를 처박았고 검은 전선은 화장대 옆 쓰레기통에 똬리를 틀었다. '건망증인가? 아닌데...아, 뭐지...? 그래도 지체하다간 집 밥을 먹게 되는 낭패가 따를지 모른다. 일단 외출!




다시 시작된 평일의 어느 날, 모처럼 이른 귀가에 마침 하교 중인 둘째와 집 앞 상봉을 했다. 일하는 엄마라 하굣길에 만나는 엄마를 유독 반가워하는 아직은 지극히 어린이다운 둘째다. 쫑알쫑알 쉴 틈 없이 하루 일과를 말하고 김 여사도 박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니 어느새 집 앞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후다닥..<<

발자국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니

>>후닥다닥...<<


현관문 사이로 분주한 발자국 소리가 두세 차례 새어 나온다. 둘째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마주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거침없이 요동친다. 둘째를 멀찌감치 뒤로 보내고 슬그머니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김 여사의 처세, 한 손에는 휴대폰을 쥔 채 긴급전화를 누를 태세까지 갖추엇다. 마른 침을 꼴깍. 한숨을 한번 내쉬고 용기 내어 현관물을 잡았다.


>>띡띡띡띡...띠리리릭<<


조심스레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헉"

눈앞에 서 있던 건 다름 아닌 정.아.림. 김 여사의 큰 딸이다. 얼굴은 밀가루를 뒤집어쓴 양 하얗고, 입술은 현관문 앞 소화기처럼 빨갛다. 머리는 한쪽만 말았든지 전체적인 조화에 기가찬다.


"야~~~~~~"


찰나의 순간, 김 여사의 머릿속에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스친다. 한순간에 퍼즐이 맞추어졌다. 잡았다~~~

이 어설픈 화장품 도둑.


글, 그림/ 미세쓰dal

딸 둘 엄마,  달밤을 좋아하며 초록에 기분 좋아지고 카페라떼, 빵 한조각이면 팍팍한 일상도 제법 잘 버팁니다. 요즘은 딸의 사춘기를 맞아 전에 없던 통찰을 경험하는 중. 경험치 만큼 쓰고 깨달은 만큼 공유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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