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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스 Dal Aug 23. 2019

작은 창 안, '엄마의  부엌'



  마루 끝,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앉았다. 마당과 우물이 보이던 우리 집. 앞집의 벽돌 지붕이며, 네모난 마당 위로 말갛게 보이던 하늘, 가끔 찾아오는 참새 무리를 보는 건 노곤한 오후를 보내던 당시 8살이거나 9살 무렵의 내 일상 중 하나였다.     

발을 조금 뻗어 마루 끝과 연결된 작은 마루로 폴짝 자리를 옮기면 어른 엉덩이 정도를 걸칠 법한 그야말로 작은 마루에 닿는다. 그 위로는 부엌이 훤히 보이는, 얼굴을 들이밀면 꽉 찰만한 작은 유리창도 하나 나 있었다.

  ‘떡볶이!!’

창을 열면, 그날의 메뉴를 맞힐 만큼 음식 냄새에 가까워지는데 할머니는 내가 돌아올 시간이면 떡볶이를 해준다며 가스레인지 앞에 앉는 일이 잦았다.

 ‘후추 넣었다~’

고추장 냄새 가득했던 떡볶이는 할머니의 후추 뿌려 넣기 몇 차례로 금세 다른 냄새로 둔갑한다. 할머니표 떡볶이는 굵은 가래떡을 반으로 뚝 잘라 일반적인 떡볶이 레시피에 후추를 넣는 것이 특징인데, 후추 추가 하나로 그 감칠맛이 특별해진다. 작은 창에 얼굴을 걸치고 떡볶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면, 양념 배어 더욱 진해진 떡볶이 냄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 엄마는 이리저리 포지션을 바꾸며 음식 준비, 설거지, 채소 다듬기로 쉴 틈이 없다. 하얗고 하늘색이 뒤 섞인 제 멋대로의 타일과 시멘트 바닥의 부엌, 뭔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수도꼭지도 빼꼼히 나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엄마는 참 많은 양의 채소를 다듬고 씻고 버무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내 동생, 그리고 삼촌. 손님치레까지 잦은 우리 집이었으니 대량의 채소 손질은 하루도 거를 수 없던 엄마의 일상이었다. 손질한 채소로 엄마는 채를 썰어 감자볶음을 하고 유독 사각 대던 배추김치며 갖가지 밑반찬들을 만들었다. 직접 기름 발라 재어 둔 검은 김은 엄마의 굽기 신공 몇 차례로 초록빛이 되었는데, 적당히 구워진 조미김은 풍기는 냄새마저 고소했다. 금세 하얀 밥이 떠오를 정도로 기름 냄새를 가미한 김. 떡볶이를 기다리면서도 저녁 메뉴가 기대되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들이 숨어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참 오랫동안 많은 음식을 준비했고. 우리 가족은 참 아무렇지도 않게 삼시 세끼를 기다리며 먹고, 또 먹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엌 앞 작은 창에 앉아 메뉴 따위를 맞추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맛있는 냄새가 부엌 밖으로 새어 나온 들 부리나케 작은 마루에 자리 잡지 않았다. 세상의 자극적인 맛에 눈을 뜨기도 했고, 보기 좋은 한상차림이 엄마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음식으로만 사랑 표현을 할 수  밖에 던 엄마의 방식도 아쉬웠다. 가끔은 외식도 하고 싶었고, 여유로운 시간을 빌미로 엄마와의 소통을 기다렸던 이유가 제법 한몫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 집에서 엄마와의 외출 따위란 기대할 수 없는, 그저 남의 일상에 지나지 않던 허상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자식 사랑은 그저 하루 세끼의 밥상으로 귀결되었고, 언젠가부터 나는 세 끼의 밥을 먹어도 정성들인 간식의 달큰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해도, 내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듯 공허했다. 이렇다할 대화도 없이 으례히 내 앞에 주어지던 밥상과 간식 접시는 엄마의 음식을 마음에서 멀어지게 했다. 다시 그 맛이 그리워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시간은 꽤나 길었고 잊힐 듯 멀리 흘러갔다.

 

  “엄마, 이제 이런 거 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요 좀.”

엄마와의 대화가 시작된 건, 엄마의 삶이 집안일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부터다. 시부모님이 작고하신 데다 엄마도 노인이 되었으니 전에처럼 집안일에 매여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결혼을 하고 독립한 내게 습관처럼 밑반찬이며 김치를 만들어 가져다주셨다. 입으로는 집안 살림 그만하라며 엄마를 다그쳤지만, 신기하게도 머릿속으로는 ‘우엉조림, 동치미, 깍두기...’ 말풍선처럼 먹고 싶은 엄마표 반찬을 떠올렸다. 이중적이지만 엄마의 음식이 여전히 맛있다는 게 함정이다.  어릴 적엔 알 수 없던 엄마의 사랑방식도 제법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잊힌 줄 알았던 그때만의 ‘맛’이 함께 떠오르곤 한다. 엄마의 레시피는 여전하지만, 미각이 전할 수 없는 지난 시간 낡은 부엌의 냄새, 작은 창 사이로 보이던 조리 과정, 침을 삼키며 메뉴를 맞추던 설렘, 낡은 냄비에 막 담아낸 멋이라곤 찾을 수 없던 제 멋대로의 플레이팅.

식사 준비가 유독 싫은 평일의 중간 즈음, 오늘 저녁 메뉴는 오래 전 엄마의 부엌에서 만든, 갓 지은밥과 조미김, 할머니표 후추 떡볶이에 잘 익힌 엄마표 동치미를 곁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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