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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22. 2022

숨, 쉬다(Leave a Trace)

1화. 한유원

그날은 네 구의 시신을 뭍으로 보냈다. 건져 올린 시신 중 잊을 수 없는 얼굴도 있다. 죽기 전의 공포가 담긴 얼굴, 평온한 얼굴도 있다. 어떤 기억을 담은 얼굴도 있다. 뭍그림자 같이 희미했던 그가 그랬다. 그는 강에 몸을 던졌고 그리 멀리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는 투신자의 마음을 읽을 수 없고 망자가 된 이들이 멀리로 나아가고 싶었는지 어느 순간 잡아주기를 바랐는지 알 수 없다. 그날 그를 보내고 나서도 그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사 컵에 따르는데 몸살이라도 올 것처럼 온몸이 아파왔다. 더듬어 그를 잡았을 때 모든 이들에게 바랐던 것처럼, 그도 나도 그냥 꿈을 꾸었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다.


 그의 옷 속에는 본인을 증명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장비를 점검 중인 반장을 찾았다.


글쎄, 신분증은 없었지만 지문으로 금방 찾겠지. 수호야, 오늘은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반장은 자신은 피우지도 않는 담배 하나를 내게 건넸다. 밖으로 나가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보았다. 천천히 제 수명을 다하는 담배를 모래 속에 눌러 넣었다.


 떨어진 수온에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온몸을 떠는 내게 반장이 말했다. 그 사람 지문이 없더래. 일부러 없앴을까? 반장은 산소통을 확인하며 또 중얼거렸다. 자기가 그랬으면 누구인지 찾지 말라는 걸까.


시신을 수습할 가족이나 지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는 몸을 던졌던 물속, 그 어둠 속에 있던 것처럼 어둡고 좁은 곳에 몸을 누이고 있을 거였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가 누구인지, 그의 삶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다행스럽게 그의 새끼손가락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지문으로 찾아낸 이름. 그의 이름은 한유원이었다. 왜 그렇게 그 사람에게 신경을 쓰냐는 반장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그냥, 그가 슬퍼서. 이름 한번 불러주고 술 한잔하고 싶게 그래서.


물속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루에 한 구의 시신을 건져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엔 호출이 끊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는 매일 그가 있는 곳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사 와 그를 위한 잔을 놓았다. 오늘은 부패한 사체를 건졌어. 슬퍼 보이더라. 손도 마음도 머리카락도 다 슬프더라. 나는 노트에 그의 이름을 쓰고 조용조용 불러보았다. 너도 누군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겠지. 너도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겠지. 싸구려 볼펜으로 마지막 그의 얼굴을 그렸다. 장식장 안 소주컵 하나, 그의 얼굴. 여전한 얼굴 위로 곧 먼지가 쌓였다. 시신을 인도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 그는 무연고자로 화장 처리가 되었다. 그가 떠나던 날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마음으로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나는 나이 들어가고 그는 그대로였다. 노트 속의 한유원은 처음 물속으로 나를 이끌었던 그때를 떠오르게 했다.  


나는 같은 하루하루를 무수히 떠나보냈다. 누런 벽지의 네모난 방, 찌글거리던 장판 위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던 날들이 쌓였고 나는 처음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를 가던 날 나는 그의 얼굴을 그린 노트를 제일 먼저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새로 산 투명 장식장에 그를 내려놓고 처음으로 뿌듯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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