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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10. 2023

숨, 쉬다(Leave a Trace)

2화 - 너를 보내고, 너를 만났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이르게 벚꽃이 피었다고 했다. 창밖에서 눈처럼 날리던 꽃비를 물끄러미 보다 한유원이 있는 납골당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도 마치 땅인 것처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바람의 냄새, 나무의 냄새, 어린아이 손에 들린 솜사탕 냄새가 각인된 채 다가왔다. 아름답네. 나는 중얼거렸다.

저기요. 노트에서 떨어졌나 봐요.


청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모르게 불쑥 나타나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바람이 지나간 바닥에 머리를 숙인 잎들이 나뒹굴고, 곧 그 속에 파묻힐 것 같이 말려있던 종이를 주워 들고 있었다.


어... 이 사람 저랑 닮았네요.


신기하다는 듯 그가 미소 지었다. 나는 다시, 한유원을 건졌던 강으로 돌아가 있었다. 둥둥 떠 어디론가 흘러가던 그를 붙잡았던 때로. 내게 종이를 건넨 그가 돌아섰다. 그를 쫓아 신호등 끝까지 따라가 어떻게 불러 세워야 할지 몰라 무례하게도 그의 소맷단을 붙잡아 돌려세웠다.


이름이 뭡니까?


나에게 붙잡힌 그가 내 얼굴과 노트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제 이름은 왜요?


옷을 꽉 붙잡은 내 손을 떼어내며 그가 한 발짝 물러섰다.


죄송해요. 실례인 거 압니다.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는 신호등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나를 신호등 앞 그늘막으로 데려갔다.


한유원요.


내 손에서 떨어진 노트가 흩날렸다. 노트 속에 있던 접힌 종이들이 또 떨어졌고, 그는 당황한 듯 떨어진 종이를 줍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잊지 않으려고 수천 번을 썼었다. 그의 바랜 얼굴이 그리워 새 종이에 다시 그리기도 했다. 귓전에 바람에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노트를 주워 천천히 넘겨보고 있었다. 그는 노트에 적힌 한유원이라는 이름과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저를 아세요?


그가 물었다. 우리는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낯선 풍경과 적막에 파묻힌 것 같았다. 고개를 저었다.


제 이름과 얼굴을 여기에 잔뜩 그려 놓고 모른다고요?


그의 손에 들린 노트를 가져왔다.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럴 리 없어.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트를 찢어 그의 얼굴 옆에 대보았다.


한유원 맞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도 한유원입니다. … 하늘에 있어요.


그는 내 손에 들린 노트를 가져갔다.


신기하네요. 정말요. 이름도 같고요.


그가 물속에서 걸어 나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를 쥐었다.


괜찮으세요?


올해는 한유원을 보낸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납골당에 안치가 되고 그 후에도 유족이 찾지 않는 기간이 10년이면 이제 그는 정말 영영 사라지고 마는, 올해는 그런 해였다.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참아왔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작은 숨은 고요를 깨뜨리고 파도로 되돌아와 쌓아 놓은 모래성의 깃발 끝까지 닿았다. 나는 그를 붙들고 한유원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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