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은 달콤했다.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아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방향을 제시하면 일이 움직인다는 것.
그 감각은 분명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조금 더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다른 쪽이 말라갔다.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던 시간, 손으로 풀어내던 감각,
혼자 몰입하며 끝까지 파고들던 그 익숙한 리듬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을 보는 일은 중요했지만,
나는 점점 사람을 “관리”하는 쪽으로만 기울었고
정작 내가 좋아하던 일에서는 멀어졌다.
그래서 이걸 교만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조금 모자란다.
어쩌면 나는 내가 잘하는 자리보다
겉으로 더 좋아 보이는 자리에 조금 오래 서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전도서의 말씀이 떠오른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세울 때가 있고 헐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켜야 할 때에 잘 지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버려야 할 때가 왔는데도
그 자리를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회의가 길어질수록, 보고가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성과가 나와도 어딘가 비어 있었고,
작은 기술적 문제 하나를 해결했을 때의 만족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려놓지 못한 건,
그 자리가 주는 의미와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조금은 즐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묻는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대단한 답은 없다.
그저 내가 살아나는 방향이 어딘지는 분명해졌다.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보다,
문제 앞에 앉아 있을 때 더 또렷해지는 나.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는 말씀처럼,
지금은 설명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까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건 밀려난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달콤했던 것은 인정하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도 함께 인정하는 것.
아마 지금은,
세우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단단히 세우기 위한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