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통을 가장 안 할까 생각해봅니다.
신입사원 시절,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초기에 컨셉만 간단히 공유한 뒤, 이후 진행 상황은 거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팀장님께서 “어떻게 되고 있어? 뭐 보여줄 거 없어?”라고 물으셔야 비로소 결과를 가져가곤 했습니다. 자주 보여드리면, 자주 혼난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더 자주 공유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제품의 완성도도 높아졌을 것이고, 유관 부서와의 협업도 훨씬 이른 시점에 준비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컨셉을 혼자 완성하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그 제품은 혼자 만들어 생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좋은 컨셉은 나왔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생산 라인의 반대를 넘지 못했고, 제품안은 그대로 드랍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초기에 더 자주 공유하고 조율했다면 팀장님 선에서 협업이 이루어지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니어일 때는, 말이 많을수록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리자가 되고 나니,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어떻게 되고 있어?”가 되었습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그 말이 “도대체 뭐 하고 있냐,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는 의미로 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말을 할 때의 뜻은 다릅니다. “혹시 내가 도와주면 덜 헤맬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왔는지 자주 알려달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불필요한 고민을 혼자 겪어봤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어떤 난관에 막혀 있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꺼내는 말이지만, 그 의도는 쉽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주니어에게는 여전히 ‘점검’이나 ‘감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저는 자주 묻지도 못하게 됩니다. “도와주려는 것이다”라고 덧붙여도, 그 말은 대개 진부한 클리셰처럼 들리는 듯합니다.
관리자가 되고 나서는, 말이 많을수록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George Bernard Shaw는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착각에 있다고 말합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말했기 때문에 전달되었을 것이라 믿고 있었고, 상대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서로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주니어는 말하지 않았고, 관리자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통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변화를 위한 간단한 제안입니다.
첫째,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중간 과정을 공유합니다.
“아직 정리는 안 됐는데, 여기까지는 해봤습니다.”
“이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틀릴 수 있는 상태에서 꺼내는 이 한 문장이, 결과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둘째, 질문의 의도를 먼저 설명합니다.
“지금 점검하려는 건 아닙니다. 혹시 막힌 부분이 있나 해서요.”
“방향만 같이 맞춰보면 좋겠습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왜 묻는지를 먼저 밝히면 받아들이는 온도가 달라집니다.
셋째, 묻기 전에 먼저 상태를 맞춰봅니다.
“지금 제가 이해한 방향은 이겁니다.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 가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더 보완해야 할까요.”
기다리기보다 먼저 꺼내 놓는 것이, 서로의 침묵을 줄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완벽한 소통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엇갈림을 줄여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됩니다. 과연, 누가 소통을 가장 안 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