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리를 다시 보게 해준 영화 <애수>
막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동생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관대하며,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로남불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의 한계와 편애를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니 뭐라 하기도 그렇다. 또 가끔은 그런 관대함이 있어야 실수하고 부족한 자신을 그럭저럭 껴안으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런 반면,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 스스로가 설정한 이상과 도덕에 부합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전혀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 사회 질서를 잘 준수하는 모범 시민들이니까.
하지만 개인의 삶으로만 본다면,
이들은 늘 열심이라 발전적 삶을 살 가능성이 높지만, 그리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상이 높을수록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은 늘 반성하고 고쳐야할 것 투성이가 되니까. 그것도 일종의 굴레나 강박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들은 "에라, 모르겠다!" "뭐 어때서?" 라는 뻔뻔함이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다. 향상심을 갖되, 부족한 자신을 너그럽게 보고,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죄책감과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아, 중용은 왜 이리 어려운 덕목인가 말이다!)
영화 <애수>를 보면서, 주인공 마이라(비비안 리 역)가 조금 더 뻔뻔한 여자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영화는 이토록 애절하지도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반의 반만 되었더라도!
때는 시끄러운 전쟁통이었다. 공습 경보가 울리는 혼란한 워털루 다리 위, 한 여자(마이라)와 남자(로이)가 만났다. 마이라는 깐깐한 단장이 지도하는 발레단의 단원이었고 로이는 곧 전장으로 떠나야 하는 군인이었다. 잠깐의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로이가 상관과의 저녁 약속까지 취소하고 마이라의 발레 공연을 보러 온 덕분에 둘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로이는 전쟁터로 떠나야 했고, 그를 배웅하느라 공연에 늦은 마이라는 발레단에서 해고당한다. 전쟁 중에 젊은 여자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고, 그녀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래도 사랑을 믿었고 꿋꿋했다.
하지만 신문의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한 로이의 이름, 자신을 돌보기 위해 친구가 술집을 전전하며 일을 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이라는 미안함과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거리의 여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로이가 살아 돌아온다. 역에서 로이를 마주친 마이라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과 표정, 비비안 리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옛날 전쟁 영화 속 남편이나 애인은 꼭 전사했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자의 삶을 뒤흔든다. 에잇! ㅠㅠ) 그가 살아온 것은 다행이었지만, 마이라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마이라는 로이가 알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로이는 마이라와 결혼 준비를 진행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로이의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그의 곁을 떠났고, 로이를 처음 만났던 워털루 다리에서 찻길로 뛰어든다.
마이라의 친구는 로이에게 마이라가 너무 착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로이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녀를 그리워했다. (아아아, 다리 위에서 로버트 테일러의 눈빛…)
이 영화 속에는 흔한 막장 캐릭터가 없다.
남자 주인공은 책임감 있고 다정하며 마이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의 어머니마저도 아무 것도 없는 마이라를 무척 반기며 아껴주는, 아침 드라마 속 재벌가의 전형적인 시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마이라는 운이 좋았던 거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어서 더 그랬을까, 마이라는 로이와 그의 어머니를 속일 수가 없었다. 사랑하기에 곁에 있고 싶었고 자신만 입 다물면 그렇게 살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이라는 그러지 못했고, 그를 떠났다.
아마 나였더라도 말없이 그 남자를 떠났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이라가 죽음을 택한 것은 너무 안타깝다. 그녀가 술집에서 일을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일자리는 구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다고 하고, 그 충격으로 앓아 누운 자신을 위해 친구가 원치도 않는 일을 하고 다닌다니.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 혼자 고고한 척 할 수 있을까, 그건 또 그것대로 못할 짓이었을 거다.(심지어 친구는 마이라와 로이가 잘 되게 도와주려다 같이 발레단에서 잘렸다.) 그러니 로이에게 미안하고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지만 자기 인생이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남자를 속이기 싫어서 그를 떠나는 결단까지 내렸으니 보통 사람보다 더 양심적이었다. 로이가 아는 자신과 변해버린 자신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괴로움, 사랑을 잃은 절망감이 너무 컸다면..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ㅠㅠ 자신이 더이상 사랑받을 수 없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를 바랐다.
조금만 더 뻔뻔하지..
마이라가 거짓말을 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다른 모두가 뻔뻔하다고 해도) 그 자신만큼은 믿고 스스로를 이해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로이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로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놀라고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로이 정도의 남자라면) 결국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그릇이 큰 남자였다면 그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1940년 작품이고, 당시에 여성의 정조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달랐을 것이다. 그것이 생을 포기할 정도였다는 것, 마이라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가끔 고전이라 불리는 흑백 영화를 찾아볼 때가 있다. 흑백 영화 속 배우들은 요즘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분위기, 매혹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이스 테일러나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 등 세기의 미녀들이 거론될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비비안 리의 새초롬하고 도도한 표정이 차가워 보여서 아무래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남녀 모두 아무리 미남미녀라도 차가운 이미지에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아,
비비안 리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애틋한 눈빛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내가 마이라가 된 것처럼 애틋하고 안타까웠다. 그 덕분에 단순하다면 단순하달수도 있는 이 영화가 꽤 오래 여운이 남았다.
두 사람은 참 이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