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세로 죽는 날까지 뜨겁게 살았던, 버트란트 러셀
매년 가을이 되면 올해 노벨상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의학이나 과학 분야는 신문 기사에서 누가 받았다고 해도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은데요. 음, 아쉽게도 저는 그렇습니다..ㅠㅠ 노벨상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평화상과 문학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문학을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만 유독 더 잘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몇 년 전엔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니 문학상이라고 해서 꼭 소설가나 시인처럼 문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만 받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버트런드 러셀입니다. 노벨문학상 이야기하다 웬 수학자냐구요? <수학 원리>라는 책을 써서 수리철학의 문을 열었다고 하는 러셀이 바로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권위와 개인>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왜 수학상이 아니고 문학상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우선 노벨상에는 수학 부문이 없습니다. 그리고 러셀은 수학자였지만, 동시에 철학자, 교육자이기도 했고,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다면 그가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에 더 좋은 세계를 위한 고민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도요. “ 인도주의적 이상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왔던 그의 의미 있는 여러 작품들의 가치를 인정했다. ”, 이것이 바로 노벨위원회가 러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살펴본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사로잡았던 세 가지 열정이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사랑이 주는 몇 시간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다고 말할 만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절대적 확신을 경계하며 자유롭게 사고하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였습니다. 동시에 그 사랑과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시켰던 휴머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인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때문에 1970년, 98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 직전까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죠.
러셀은 영국의 아주 아주 유명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영국 수상을 지냈으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그의 대부였고, 아버지 또한 당대의 유명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살았고, 또 평생 그렇게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수학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던 러셀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반전 평화주의자로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젊은이들이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병역을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징병에 반대하다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죠. 이 일로 대학 강단에서 쫓겨나고, 벌금 납부를 거부하여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또 전쟁 전에는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기도 했는데요. 러셀이 낙선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의 참정권을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피임, 자녀를 양육하는 전업주부에게 보수를 지급할 것과 더불어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의 영국, 대다수의 남성들이 여자는 집안 살림이나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 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했던 그는 선거에서 그리 인기 있는 후보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니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 반대 운동에 대한 반대 여론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만큼 여성의 평등권에 대한 주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던진 썩은 계란을 아내가 맞기도 했다고 하니까요.
러셀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핵무장 반대를 포함해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지속하며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무엇보다도 소수의 집권자들이 대다수 국민들을 미리 생각해 둔 틀에 강제로 짜맞추려 하기 때문에, 마치 기계를 제작하는 사람이 재료를 보듯 국민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자발성과 자유, 능동성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러셀이 이끌렸던 세 가지 열정, 그 중에서도 “사랑과 지식은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주었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이 늘 나를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고 말했죠. 그가 많은 비난과 조롱,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가 쓴 자서전의 프롤로그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 중략 …)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철학 이야기(2006, 윌 듀랜트 지음,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인생은 뜨겁게(2014,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게으름에 대한 찬양(2005,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