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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11. 2024

열한 번째 감정 돌보기: 감사한 마음으로 나에게 허그를

감사: 삶이 힘겨울 때 평안과 안정을 주는 주문


열한 번째 감정 만나기
 감사: 삶이 팍팍하고, 힘겨울 때 평안과 안정을 갖게 해주는 주문


삶의 큰 변곡점이나 변신의 계기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올 수 있습니다. T님은 그동안 믿고 있던 신념이나 행복의 기준이 크게 바뀌었다 말하며 저와 함께 자기 돌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내담자입니다.


“사실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결핍인지도 모르겠어요. 부족한 것,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생각될 때면 더 많이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혹은 그 기록을 내기 위해 빠르게 달려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엔가, 감사를 잊고 살고 있더라고요. 나는 정말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은데, 감사를 떠올리고 보니 많은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분명 재능도 매력도, 능력도 차고 넘치는 충만한 사람인데, 결핍만 쫓아 극복하려다 보니 삶이 팍팍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의무와 책임에 눌려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 보람마저 사라졌습니다. 일이 즐거웠던 이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일을 해야만 한다는 무게에 짓눌립니다. 이 모든 이유들이 우리를 번아웃으로 몰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근면, 성실, 자립, 책임, 의무 등 바람직성을 바탕으로 한 미덕의 가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몇몇 가지 미덕은 더하면 덕이 되는 가치가 아니라, 없으면 해가 되는 가치로 일컬어져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책임’ 은 없으면 ‘무책임’ 한 사람이 되고, 무책임의 굴레는 무겁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미덕으로 지키고 싶기에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싶지 않기에 책임을 가까스로 지키며 살아갑니다. 자유는 크면 더 좋을 미덕이지만, 책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다고 생각하면 책임을 지키는 미덕도 무거워져 얼마나 감사할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직장인으로 동료들과 일을 나누고 생계를 영위하며 사는 기쁨, 아이들의 부모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기쁨, 누군가의 남편 혹은 아내로 삶을 덧대어 기대고 나누며 공존을 배우는 기쁨 모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충만함을 느끼고 있나요?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려면, 우선 이번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코치님, 저는 왜 모든 것들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코치님께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만큼 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 보세요. 해내준 몸에 고마움을 표현해 보세요.”라고 말씀 해주기 전에 저는 매일 ‘운동을 이만큼만 해도 효과가 있을까?’, ‘이 정도밖에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며 노력하는 저를 외면했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만큼, 해낸 나를 바라보고 나니 그만큼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남편, 아이들, 그 외 여러 상황들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는 24시간을 살고 있고, 내가 사는 시간을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 채우며 살아가다 보면 지치고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입니다. 의무와 책임은 무겁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높은 기준을 정해두고, 나는 유한하지만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어떻게든 체력과 정신력을 안배해 살아가다 보면, ‘해야만 하는 일'에 가려져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지 놓치게 될지 모릅니다. 의무와 책임이 동기부여가 되었든, 자기 계발에 대한 의지로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든, 당신은 과거의 당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약간의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며 해내는 나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감사의 힘으로 다시 조금 더 큰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해 볼 수 있습니다. 변화는 주변환경으로부터 나로 이어지고, 나로 하여금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감사가 가진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 타인, 타자와 연결되어 있으며,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고 느낀 것들 역시 그 모든 연결고리 하에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들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환경 탓, 상황 탓, 남 탓을 하게 됩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를 말하는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변화가 필요함에도 변화를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변하지 않는 내가 주변을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놓친 채 말이지요.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틀 속에 고립된 채 살 수 있다면 삶은 평화로울 것 같지만,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들은 삶에서 필요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고, 해롭게 하는 변화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들로 받아들이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행위보다 의무와 책임에 삶을 빼곡하게 채워놓게 되면, 삶은 팍팍해지고, 여유가 없어집니다.


“코치님, 이번 달부터 야근이 많아졌어요. 자꾸 예민해지니 몸도 아프고.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운동은 못하고 스트레스는 너무 많이 받아요. 동료와 대화할 때 그도 예 민하고, 저도 그걸 다 받아주려니 힘들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코치님께서는 팁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방법이 있나요?”


‘문제'라고 느껴지는 현상은 우리를 ‘문제 해결'로 몰아갑니다. 물론 정말 심각한 문제라, 반드시 나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특히 책임감이 강한 이들에게 ‘문제'는 해당하는 상황을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개선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일수록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커지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도움을 청해야 하고, 주변의 힘을 더해 개선해야 하는 문제도 분명 있게 마련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일수록,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일수록 스스로 짊어진 무게가 무거워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결자"의 마인드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해 왔던 경험이 많을수록, 문제해결에 대한 루틴이 단단해지고, 어떤 문제든 온몸으로 부딪쳐 해결할 수 있다는 삶의 내공이 쌓일 수 있습니다. 맞닥뜨리는 문제가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해결자의 내공은 더욱 깊어지고 커질 수 있지만, 언제나 성장을 향한 한계에 부딪칩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거나, 어렵고 버겁게 느껴졌을 때, 계속 해결자의 입장을 고수하면, 결국 “내가 해결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지금 환경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 하며 주변의 탓을 하게 되는 상황이 생겨나게 될지 모릅니다. 홀로 해결하는 자가 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해결하는 과정을 더욱 외롭고 어렵게 합니다. 주변환경의 변화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해결의 몫은 꼭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내가 처한 주변과 환경으로 넓히고, 긍정적 인식으로 하여금 주변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감사가 주는 힘입니다. 현재의 변화, 혹은 현재 주어진 과제가 나에게 어떤 경험과 배움으로 삶에 쌓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홀로 마주한 문제 상황을 홀로 해결하기로 결정한 후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는 것들을 늘려가며 어려운 상황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꼽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살다 보면, 야근이 많아지는 시기도 있습니다. 다 같이 예민하고 피로가 쌓여 있는 시기에, 그 들을 받아주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받아주고 문제를 해결할지보다, 그럴 때는 저들이, 이 상황이 “왜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일들은 다 나름의 맥락이 있고 이유가 있어 서 발생하는 일들이라, 화를 내기도 어려운 경우들이 왕왕 발생합니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다들 변화의 맥락 속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면, 대상을 향한 화는 어느새 조금씩 누그러집니다. 어쩌면 ‘아... 화를 낼 수조차 없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어렵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이때 상황에서, 현상에서, 관계에서 잠시 빠져나와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면,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지고, 어려운 상황을 둘러싼 환경과 맥락 속에서 감사한 요소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거리들이 더욱 많이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 다. 고달픈 해결자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해결의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에 딸려가고 휘둘리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해결은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기꺼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시야를 확장하고 나면, 비로소 ‘나로 하여금’이 아닌, 감사로 하여금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그래서 ‘진정 자율적으로 사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의 산물입니다.


감사하는 몸은 집단 면역력을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감사함을 느끼거나 이타적인 일을 할 때 인간의 시상하부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시상하부에서는 뇌하수체를 경유하여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연결합니다. 즉,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신경계와 내분비계로 연결하여 자율신경계와 대사과 정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 바로 시상하부입니다. 몸이 무겁거나, 피로감이 느껴지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일련의 ‘컨디션 난조' 현상은 시상하부가 제 기능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시상하부 기능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사가 신체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체기관이 ‘감사'의 감정에 감응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여 받아들이는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 몸은 마치 생명을 가진 기계처럼 기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생활에서 활동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요소로 영양, 운동, 휴식만을 꼽는다면, 우리 신체는 그저 생명력을 가진 기계처럼 치부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건강한 음식, 적당한 운동, 충분한 휴식은 행복의 요건으로 꼽힐 수 있지만, 이 요소들이 충분히 제공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찾아나가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발견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부족한 점만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순히 마음의 문제뿐 아니라 시상하부가 느끼는 스트레스 작용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시상하부는 식욕, 수면의 질, 체온유지, 신진대사, 성장 등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와 신체의 컨디션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사할 일이 많지 않아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노천명 시인은 ‘감사'라는 시에서 그저 태양과 하늘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는 한 이것만으로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핍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소중한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으로 삶을 가득 채우느라,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잊는 것은 어찌 보면 ‘나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잊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수태의 순간에 정자는 무서운 속도로 난자를 향해 다가갑니다. 그러나 정자의 그 움직임이 나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본능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는 왜 태어났고, 여기에서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숱하게 생의 의미를 창조해 냅니다. 때로 삶의 의미는 월급이 될 수도 있고, 자립이 될 수도 있고, 효도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성공, 부양의 의무 등 다양한 것들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체와 함께 삶의 의미를 관찰해 보면, 우리 몸은 놀랍게도 돈, 명예, 권력, 사회적 지위 등 수치화되고 계량화된 무언가보다 이타적인 행동과 감사하는 마음에 생명력이 있는 감응을 보입니다. 친절과 감사에 대해 많은 연구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합니다. 친절과 감사의 행위를 할 때, 혹은 그러한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체내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은 신체적 고통을 줄이며 통증에 대한 치유를 일으키며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부상의 회복 과정에서 자기 치유가 일어날 때,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격한 운동을 하는 도중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이러한 도파민이 감사와 친절의 행동 속에서 분 비된다는 것은 신체가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삶을 하나의 생명작용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는 의미와도 일맥 상통합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집단면역력, 자기 치유, 일상에서의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기입니다. 이때 감사가 자기 치유와 면역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한 사람의 감사는 여러 사람에게로 전염되듯, 퍼져나갑니다. 실제로, 2002년의 피츠버그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 119명의 수술 1년 후 추적조사 결과 감사하는 마음이 신체, 정신적 건강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Nun Study로 알려진 데너와 에먼스의 연구에서도, 180명의 수녀를 대상으로 22세의 자서전에서 긍정적 감정(사랑, 감사 등)에 대한 단어를 많이 사용해 작성한 수녀들이 60년 뒤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사랑, 관심, 감사, 동정 등의 감정은 심장박동을 안정시키고, 이러한 박동의 리듬감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전이됩니다. 명상가나 구루라 일컫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람들이 평온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이고 쉽게 떠올리며 실천할 수 있는 감정이 ‘감사’입니다. 오랫동안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원해진 사람들이 변화를 마주하여 더욱 충만한 방향으로 서로를 대해야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는 어찌 보면 개인과 집단의 건강을 위한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감정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감사를 느끼는 몸은 세상과 연결성을 넓힌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의 저서 <Give and Take>라는 책에서 성공하는 사람의 요소로 능력, 성취동기, 기회라는 통상적인 요소에 ‘타인과의 상호작용' 역시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감사를 일상으로 여기고 자신이 누리고 받은 것에 대해 타인이나 세상과의 연결감 없이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사람에게 세상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위화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은 받기만 하는 사람에게 어딘지 얄미운 질투를 던지게 마련이니까요. 감사는 감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감사한 나로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를 알려 주는 동기가 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더욱 커집니다. 누리고 받는 것들에 감사함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감사를 창조하기 위한 나눔이 감사의 뒤에 이어집니다. 세상 어떤 것에든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 누구에게든 베풀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핍으로 인해 일어나는 성장보다 더 커다란 성장이 감사로 인해 일어나는 성장입니다. 또한 베풂의 대가를 계산하기보다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감사를 베풀 수 있는 것 자체로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사람은 극한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운동을 습관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어려운 고비를 마주합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때때로 맞이하는 아침이 귀찮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노력도 이때에는 습관 근육으로 연결되기보다는 귀찮음에 못 이겨 금방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뀝니다. 이때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선택하는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곧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저 자신에게 친절하자고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난 후 자신에게 충만하게 감사하고, 그 기쁨을 타인에게도 전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지만 자기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보상심리를 발동시키는 ‘대상이 있는 감사', ‘조건이 있는 감사'는 오히려 해롭습니다.


“코치님, 전화코칭이 있는 날에 운동을 못하게 되면, 코치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한 번 두 번, 죄송한 마음이 쌓이면 운동도 자꾸 미루게 돼요. 코치님이 꼼꼼하게 코칭해 주는 것은 감사한데, 코칭이 좋으면서도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운동을 하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타인의 조언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의지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운동 시도가 습관이 되는 과정에서 함께 하고 있는, 혹은 코칭해주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감정은 좋은 감정이든 불편한 감정이든 운동 자체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으면, 운동을 못할 때는 괜히 미안해지고, 함께 하는 사람이 불편하면 운동을 할 때에도 불편해집니다. 누군가와 친근한 감정을 나누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함께 하는 시간이 고마운 감정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행위와 감정은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 감사는 감사한 일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도 느끼지만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 그 자체로 또는 대상이 없는 에너지로 느껴야 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것들을 해주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하는 행위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변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속하고 싶어 하는 습관은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꾸준히 습관을 이어가는 자신에 대한 감사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마음이 동기가 된다면 대상의 변화에 따라 나의 행동기준은 계속해 변합니다. 내면에서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으면 우리는 자주 흔들리고 쉽게 지쳐버립니다.


대상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큰 선물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이 많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얻고자 하는 것만 보는 시야에서 벗어나 더욱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가 트였다는 뜻입니다.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세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받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정서적 여유야말로 현대인이 마음껏 과식해도 되는 풍요로운 감정 아닐까요.




Recipe 11. <맨 손으로 온몸에게 고맙다 전하는 버터플라이 허그> 


준비물: 맨손, 전신


사랑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킨십입니다. 연인 관계에도 스킨십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스킨십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스킨십일 것입니다. 손과 손, 몸과 손이 맞닿는 부분에서 우리는 깊은 공감을 경험합니다. 반려자, 반려동물과의 신체 접촉은 ‘옥시토신’을 분비시킵니다. 옥시토신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효과를 내는 호르몬으로 코티솔 수치를 낮추며 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을 증가시킵니다. 우리 뇌는 포옹을 하거나 스킨십을 할 때 이처럼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버터플라이허그’라고 불리는 셀프 포옹도 타인과 나누는 포옹만큼이나 효과가 있습니다.



1. 양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시켜 온몸을 끌어안는 자세로 눈을 스르르 감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2. 손끝으로 어깨를 토닥이며 주변 환경에서 느껴지는 온도, 소리, 냄새 등을 느껴봅니다.


3. 점차 어깨에 힘을 풀고 부드럽게 팔을 풀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편안한 호흡과 함께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을 틀어 두고 해도 효과적입니다.





Recipe 보너스. <샤워할 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셀프마사지>


유독 마음을 쓰는 날, 샤워를 하며 감정을 깨끗하게 씻어내 보세요. 저는 헛헛한 날에는 샤워타올을 쓰지 않고, 물에 녹는 제형인 설탕이나 소금을 주 성분으로 한 바디스크럽제를 사용하여 제품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손바닥으로 몸을 부드럽게 문지르곤 합니다.


1. 심장에서 먼 곳부터 시작합니다. 손바닥, 발가락 사이사이부터 부드럽게 스크럽제를 바르며 문질러주세요.


2. 종아리 근육 하나하나, 팔 근육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압력을 가해 문지르며 각 근육과 근막을 차례로 미세하게 풀어주세요.


3. 몸통과 등 등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을 씻을 때 어깨를 천천히 크게 돌려 팔의 가동범위를 늘 려주세요.


4. 따듯한 온도의 미온수 (40~50도 정도)로 헹구고, 약간 차갑다 싶은 온도의 미지근한 물로 한번 더 헹궈 마무리합니다.


주의사항: 버터플라이 허그는 아침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셀프 마사지는 운동 전보다는 운동 후, 아침보다는 저녁에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물의 온도는 체온보다 조금 높게, 반신욕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입욕소금이나 바디스크럽제를 고를 때에는 미세플라스틱 원료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골라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신경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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