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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Feb 28. 2024

아홉 번째 감정 돌보기: 자존심 벗고 자존감 풀업

나를 지키는 건강한 내면올리기, 풀업

자존심과 자존감: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밖에 없다고 느낄 때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꼭꼭 눌러 참고 또 참았건만, 눈치 없는 뱃속이 아랑곳 없이 꾸륵꾸륵 소리를 내거나, 방귀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나와 부끄러웠던 경험, 한번 쯤은 있을 겁니다. 잽싸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 아닌 척 하고 싶은데, 주위 사람들이 왠지 나인줄 눈치챈 것 같아 얼굴은 화끈거리고, 누군가 헛기침이라도 하였을 때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딴 짓을 하거나 자리를 피했던 그 순간을 돌아봅니다. 누군가는 그런 자리에서 화를 내면서 민망함 속에서 자기를 지키느라 이 속담을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귀를 뀌었다고 내가 위태로워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리가 요란했거나 냄새가 좀 났다면 몇몇은 불편해했을지 모르죠. 적어도 ‘생존' 을 놓고 위험을 논하자면 방귀나 꼬르륵소리로 인한 누군가의 불편감이 나를 위험하게 만들 일은 없습니다(누구나 방귀나 꼬르륵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걸요). 다만 정도에 따라 민망한 감정이 나를 뒤흔들고 지나갔을 수 있겠죠. "방귀낀 놈이 성낸다"는 속담 속의 성이 난 사람은 어느 정도로 민망함을 느꼈던 것일까요? 자존심은 때때로 방귀 한 번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나를 지키려 올라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좀 과하게 나를 보호하는 수호기사 같은 느낌입니다. 산들바람에도 “전하, 바람이 세니 제가 지켜드리겠사옵니다!” 하며 커다란 장막을 치는, 오지랍 넓고 과장이 심한 수호기사 말이지요.


우리 내면에 이 오지랍 넓은 수호기사는 당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될지 모릅니다. 성난 수호기사는 실제로는 아무도 공격 하지 않는 당신을 지키고자 ‘자존심' 으로 가득 차 감정을 뒤흔듭니다. 자존심(自尊心)의 한자어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 을 의미합니다. ‘지킨다' 는 의미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 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상황과 상태, 즉 일상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켜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집니다. 딱히 내가 아닌 것, 나와 분리될 수 있는 것들까지도 지켜야 할 나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방귀를 뀌고 부끄러운 감정은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 버릴 수 있는, 지나가는 감정일 뿐인데 자존심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부끄러운 감정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꼭 불안정한 감정과 현상유지를 위한 분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존심’ 은 심리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자신에 대해 일반화된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조금 더 부연설명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고양되어 있으며 이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은 언제든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존심으로 하여금 드러나는 비뚤어진 감정이나 태도는 자존심과 관계 없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더 밀접해 있습니다. ‘내가 인식하는 지금의 나’ 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나의 존재감인지, 언제든 위태롭게 흔들릴 수 있는 ‘나의 상태'에 불과한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자존심은 방어적 일 수도, 자신감 있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내가 인식하는 내가 내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존재감이라면, 즉 자기 신뢰와 자긍심을 통한 자기확신이라면 상황이나 환경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태도와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유연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나의 위기’, 즉 나를 지켜야 할 순간은 오직 내 내면에서 결정하기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자존심은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평행봉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는, ‘지금의 나' 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평행봉이 더 좁아지거나, 평행봉 주변으로 비바람이나 폭풍이 밀려올 때, 나의 안락이 위협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에서 방어적으로 반응하며 외부 자극을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 때 가상의 위험을 실제의 위협으로 착각한 마음은 여러가지 방어기제를 드러냅니다. 역설적으로 전자든 후자든 당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 뿐입니다. 그러나 내면을 강하게 다지며 나를 지키는 것과 외부 환경으로 부터 나를 지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내면을 강하게 다지며 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자존감'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앞서 ‘자존심’을 나를 오지랍넓게, 혹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과잉보호하려는 ‘수호기사' 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강한 군주는 수호기사의 충성을 받아들일지언정, 그가 자신을 과잉보호 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호기사의 전투력은 군대의 전력을 보충하는데 쓰고, 스스로 최전방에 서서 군대의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자존심을 과하게 쓰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는 데 전력을 쓰는 것보다 나에게 영향을 주는 주변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한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나를 지킬 힘이 없으므로 홀로 있고 싶어하지만 홀로 있는 시간을 의연하게 보내기도 어렵습니다. 남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립된 상태를 견딜 힘은 없는 상태를 반복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해 큰 의문이 생깁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없는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내적 갈등을 들여다보며 “나와 잘 맞는", 즉, 내가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소울메이트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서로의 가치관과 관점은 제각각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 가까운 만큼 다름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가 달라서 의도와 다르게 갈등을 겪고 더 넓어진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주고 받으며 더 끈끈한 관계로 확장하는, 배움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정신과 전문의인 김혜남은 자신의 저서 “당신과 나 사이" 에서 ‘마음에 상처를 주어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바로 제일 가까운 사람들 이다.’ 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깊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하고, 그만큼 무방비상태이기도 하고, 그만큼 나를 이해하고 알아줄거라는 기대가 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어찌 보면,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에겐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존중의 거리가 허락되지 않는 가까운 관계는 가깝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서로에게 과하게 들이미는, 서로 안아주고 싶지만 여기저기 서로를 찌르는 고슴도치 같은 형상입니다. 요즘의 ‘혼술', ‘혼밥' 등 ‘혼자' 의 소비패턴이 문화적인 흐름이 되어가는 추세는 코로나19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안전한 존중의 거리를 배울 겨를이 없었던,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혼자를 택한 요즘 세대의 자화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 라는 존재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내가 가진 상황이나 상태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과 타인, 자신과 환경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강한 내면으로 나를 지킬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세상으로부터 다친 자존심, 세상을 바꾸는 자존감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 내가 처한 상황을 지키는 것이 아닌,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사뭇 어렵게 느껴집니다. 운동을 잠시 쉬고자 문의했던 R씨의 상황에서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코치님,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는데,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퇴근한 남편에게 공부한답시고 엉망인 집안을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공부한다는 이유로 양육을 소홀히하고 싶지도 않아요. 시댁에서는 도와주신답시고 갑자기 찾아오시곤 하는데, 그것도 저는 너무 부담스러워요. 쉴 시간을 내기도, 운동할 여유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어선지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어요. 운동을 잠시 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육아, 살림, 공부를 한번에 해내야 하는 R님의 상황


 R씨의 고민은 운동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보다 남편과 아이, 시어머니께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부정적 감정에 있었습니다. 옴쭉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와주려는 손길조차 부담과 갈등의 씨앗으로 느껴지는 R님은 큰 스트레스로 인해 좋아하는 운동도 포기하고 기진맥진해 있을 만큼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R님과의 상담을 통해 R님은 주변 상황과 환경, 자신의 역할과 주위에서 전하는 며느리,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을 자신의 상황과 능력 이상으로 해내느라,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R님 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키고, 그 역할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갑니다. 어느 순간 스스로 타인을 맞추기 위해 애쓰느라 방전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때부터는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 격한 감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지혜롭게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서 화를 내거나,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므로 올라오는 말과 행동이지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을 지킬 수도, 지키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몸은 길을 잃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서 두드러기는 오히려 당연한 증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은 위협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보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이 정말 위험한 상황인지, 자신의 내면이 정말 취약하고 위태로운 상태인지를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요?


R님, 많이 지쳤다고 말씀하셨고, 듣기에도 지칠 만큼 지친 것 같아요.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운동을 쉬어도 R님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늘 너무 적극적으로 저를 도와주시려다 오히려 부담을 주시는 시어머님께 이번 시험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연락을 좀 줄여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좋아요. R님의 자존감을 위해, 내면에 근본적으로 힘을 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R님이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시간을 소진된 시간이라기보다 최선을 다해 맡은 일들을 해냈던 빛나는 시간이라고 해석했습니다. R님은 특유의 책임감과 꼼꼼함, 신중함으로 자기계발과 가정을 돌보는 일,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 을 수행해 온 강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단지 역할을 해내야 하는 수준을 자신의 능력과 자원 이상으로 설정해 두고, 당연히 버거울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 속에서 스스로 무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을 뿐. 자신을 소진될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간 것도, 스스로를 강한 존재로 여기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해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R님이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심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동안 따라 왔던 기준(그것이 설사 시어머님이 만들어 준 기준이라 할지라도)에서 벗어나 자신이 해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땠을까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시간을 두면 더 잘 할 수 있는 일과 시간이 있더라도 해낼 수 없는 일,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과 아무래도 어쩔 수 없어 포기해야 하는 일 등을 능동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소진되는 일은 없어집니다. 자신과 삶을 나누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 채로, 할 수 있는 만큼을 열정적으로 해내며, 그들의 불완전성과 나의 불완전성을 덧대고 기대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역할에 매몰되어 너무 큰 역할이 주어질까 겁내며 나를 지키려고 날을 세우다 보면, 여기 저기 날카로운 마음의 칼날을 휘두르면서도 칼을 휘두르는 나를 바라 보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나를 지키는 효과와는 정 반대의 결과가 따라오는, 스스로를 오히려 공격하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보다 귀하고 강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어떤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도 선물처럼 주어지지만, 자신을 지키고 세상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당신이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은 남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며,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더라도 이만큼 해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잘 한 것입니다. 해낼 수 없었던 일이나 역할이 있었다 하더라도, 책임감있게 그에 맞서 해결하 려 노력했던 과정을 뜯어보면, 당신이 해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당신은 결과적으로 해내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잘 해낸 일이건, 잘 해내지 못한 일이건, 용기있게 그 일과 마주했던 순간들은 당신이 진정으로 빛나는 존재로써 살아간 순간들이었습니다. 


 나를 잘한 나로, 혹은 못한 나로 평가하는 것 역시 내가 주인이 되어 해야 할 자신의 몫입니다. 자존심을 쓰는 사람은 ‘못한 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사정을 탓하며 그러한 상황이나 사정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겠지만, 요즘의 세상은 예측이 가능하지도 않고, 낯설어서, 버거워서, 내가 해내지 못할 상황은 이미 일어났던 상황 외에도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는 더 있을 겁니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며 잘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성장했던 나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내 삶의 주인이 되세요. 그렇게 자존심을 자존감으로 바꿔 나가는 것입니다. 자 존심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대하며 드러내는 행동과 행위입니다.  자존심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혹은 자신을 흔드는 무언가를 자극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쓰지만, 자존감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닌, 상황이나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며 끝내 상황이나 환경과 나를 조화롭게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바로 자존감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몸은 늙어가지만, 자존감을 가진 몸은 자기치유능력이 커진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들여다보면, 결국 나의 존재를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감정을 쓰는 자존심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자부심을 느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존감도 성장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우리는 스스로가 얼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개성과 재능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신체적으로 작고 약하며 보호를 받아가며 성장해 온 어린아이가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듣게 되는 강한 어조의 말들은 “안돼", “조심해" 입니다.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물고 빨고, 만져보려 하는 아기들의 호기심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때로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보호받는 존재로 성장했던 아기들은 어느새 두 다리에 힘이 붙고, 원하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24시간 보호자의 보호 아래에서 성장하던 아기는 자라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점차 늘어갑니다. 늘 보호받았던 것에 익숙한 아이는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낯설기도 하고, 두렵기도 할 겁니다.

 스스로를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좀더 자신을 지키고자 환경, 사람, 호 불호를 가립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자신을 자신있게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성향이건, 우리는 늘 새로운 상황에 노출됩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새로운 상황에 나를 지키려는 마음을 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경험을 쌓아 나가고, 그로 인해 발견한 자신의 능력과 재능, 강점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능력과 재능, 강점은 타고나는 측면도 있지만, 삶의 시간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며 갈고 닦아지는 과정을 통해 계발되기도 합니다. 결국은 나를 어떻게 쓰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인 방향 설정과 그에 따른 인생 노하우의 축적이 자존감을 만듭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때, 당신은 나를 어떻게 쓰며 살아갈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나요? 아니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자신을 믿지 못하여 당황한 자신과 무언가에 적응되기까지 고달픈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나요? 잘 해낸 것들보다 잘하지 못한 것을 더 많이 기억하고 붙잡고 있는 경우 자신을 지키고자 합니다. 수 없이 타인과 더불어 사는 환경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보는 시간이 많고, 남의 강점은 크게 보이며 자신의 강점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산다면 자존심을 키우느라 자존감을 갖고 살 여유가 없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내면아이' 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이미 어른이 된 존재를 스스로 믿고, 드러내는, 그들 마음 속 여리고 약한 내면 아이를 건강하게 성숙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합니다.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며 특정 분야나 특정 환경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꽁꽁 싸매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는 시간 동안, 누군가는 스스로를 강한 존재라 믿으며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 성장하기를 선택합니다.


세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형성되고 생장하는 과정에서 손상이 된 세포는 자가치유를 통해 성장을 일으킵니다. 손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면 병증이 됩니다. 노화는 손상된 세포가 손상된 채로 정상적인 세포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소멸로 이어지는 상태의 반복을 일컫습니다. 생장 과정에서 세포는 다양한 형태로 생장소멸하지만, 자가회복을 통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세포와 손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비정상적 세포 작용을 거듭하는 상태의 세포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달라집니다. 또한 세포의 반응 역시 단독으로 일어 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습관적으로 일으켜내는 마음습관을 통해 일어납니다. 세포가 생장하고 노화되어 사멸할 때까지 세포는 노화를 촉진하는, 혹은 억제하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습 니다. 유전자는 있다고 해서 늘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특정한 조건 이 충족되었을 때 발현됩니다. 세포를 노화하게 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는 RNA(리보핵산, RiboNucleic Acid) 라 불리는 고분자 분자에 의해 켜지고, 또 꺼집니다. 스위치가 꺼져 있을 때 유전자의 고유 기능은 잠재되어 있는 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구조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생활 습관, 식습관의 변화로 유전자의 발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세포 내 단백질의 기능이 변해 병이 생기거나, 노화가 일어나거나 노화가 억제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인간은 누구나 노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현상들이 세포의 작용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의외로 세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활습관 등에 의해 억제될 수도, 촉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하는 학분 분야를 ‘후생유전학’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 따라 다양하게 켜지고 꺼지는 유전자 스위치, 후생유전학에서는 다양한 유전학적 비밀을 탐구합니다.


마치 세포의 생장에서 노화에 이르는 과정 속에 세포 속 DNA 의 작용을 촉진 또는 억제하는 RNA 의 작용은 자존심 혹은 자존감을 쓰는 우리의 마음과도 비슷합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삶과 함께 우리와 함께해 왔던, 시련과 고난, 혹은 기쁨과 행복을 함께해 왔던 존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보잘 것 없게, 혹은 자부심 넘치게 이해하거나 해석하여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든, 우리 스스로의 존재 속에 잠재하고 있는 특성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자존심으로 발현되는 방어기제, 자존감으로 발현되는 강점들은 모두 우리 내면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일으켜 낼 것인가에 따라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에너지가 다르게 드러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존경받는 성과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긍정적인 잠재력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내오며 살아왔는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떤 광고의 카피처럼, ‘야, 나두' 할 수 있습니다. 당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드러낼 자존감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성장의 매개로 쓸 수 있다면 말이죠.



Recipe 9.<중력 느끼기, 척추에 좋은 철봉에 매달리기>


늘 중력에 눌려있던 척추를 시원하게 풀면서 척추 사이의 간격을 자연이 허락해 준 대로 늘려주는 데에는 철봉만큼 좋은 운동이 없습니다. 또한 팔과 어깨, 등, 코어가 고루 발달하는 운 동이기도 합니다. 척추를 잡아주는 근육이 부드러워지면 전신의 혈액 순환도 촉진됩니다. 척추 가 정렬되면 굽은 어깨, 거북목, 어깨 통증, 허리 디스크 등 척추의 건강 이상으로 영향을 받았 던 신체가 정렬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준비물>
 철봉이 있는 장소, 필요한 경우 손목 스트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철봉 운동의 효과는 매달려 있는 시간과 비례합니다. 매달리는 시간은 전신의 힘만큼, 악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손바닥에 마찰이 있는 장갑, 손목 스트랩을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래 매달리는 연습을 수시로 하여 악력을 키워봅니다.


철봉 운동 전에는 스트레칭을 챙깁니다. 목, 어깨, 허리 등을 충분히 좌우로 돌리며 풀어낸 상태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안전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1. 처음에는 다소 낮은 철봉에 발이 땅에 닿은 상태에서 무릎만 구부려 매달려봅니다. 악력을 성 장시키기 위해 무릎을 구부린 정도를 조절해가며 손바닥 힘을 키워봅니다.


2. 풀업은 손등을 얼굴과 마주한 채로 어깨너비만큼 팔을 벌려 철봉을 잡는 운동입니다. 팔을 완 전히 뻗어 어깨를 뒤로 젖혀 일명 ‘숄더 패킹’ 으로 잠그고 겨드랑이 부분의 광배근을 조이며 철봉과 턱이 가까이 닿을 때까지 천천히 몸을 끌어올린 후 비슷한 속도로 천천히 다시 내려옵 니다.


3. 철봉에 매달린 채로 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가 내리면 복근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일명 ‘행 잉 레그레이즈’ 라고 하는 운동입니다. 손등이 얼굴 방향이 되도록 철봉을 잡고, 팔을 어깨보다 조금 넓게 벌린 채 철봉에 매달려 복부에 집중하며 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내려봅니다.


주의사항: 철봉은 비교적 인근 공원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운동기구입니다. 그러나 전신의 무게를 느끼면서 운동해야 하는 기구인 만큼, 팔 힘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지면 그대로 매달려 만 있어보는 것도 척추 건강에 참 좋습니다. 되도록 팔의 힘보다는 어깨와 등의 힘에 주의하며 철봉을 이용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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