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빗ORBIT Apr 18. 2020

샛별이

스물한 번째 금요일,

샛별이는 예쁘다. 새벽에 뜨고 밤을 배웅한다. 눈동자도 황금색이다. 살금살금. 다가가면 멀어진다. 애가 탄다.


스물네 번째 금요일,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손등이 찢어졌다. 밥을 챙겨 왔는데 안 먹는다. 경멸과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째려본다. 나는 그들과는 달라. 너를 다치게 하지 않아. 샛별이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 답답하다.


서른일곱 번째 금요일,

오늘은 샛별이가 내 꼬리를 물었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동료들은 샛별이에게 집착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기이한 취미 생활쯤으로 여기는 듯도 하다. 내 진심도 모르고. 나는 정말로 샛별이에게 첫눈에 반했다. 황금빛 눈동자에 건배를. 지구의 낭만은 흑백의 미디어에 있다. 그리고 세로로 길쭉해지는 샛별이의 동공에는 내 온 우주가 있다.


마흔 번째 금요일,

샛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 오랜 떠돌이 생활이 그녀의 건강을 악화시킨 것 같다. 영역 싸움에서 지고 온 날 샛별이의 목덜미는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그 자잘하고 치열한 나날을 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에게 와준다면. 오늘은 너무 심하게 다쳤길래 어쩔 수 없이 마취를 하고 상처를 치료해줬다. 지구의 생물과 시간에 너무 깊게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동료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샛별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여기서 샛별이가 사라지면 다시 똑같은 정보로 복구하는 데 별의 역사보다 오래 걸릴 것이다. 


마흔 한 번 째 금요일

그녀를 구조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규율을 어겼으니 당분간 임무에서 배제될 것이다. 우리의 당분간은 지구의 시간으로 너무 길다. 지구에 머무를 시간이 얼마 없다. 샛별이와도 조만간 이별이다.

마흔두 번째 금요일

샛별아. 하고 이름을 부른다. 

-냐옹

샛별이는 이제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마흔아홉 번째 금요일

노랗고 부드러운 샛별이. 주먹을 내밀면 콩 하고 이마를 박는다. 너로부터 체온을 배운다. 손바닥을 펼치자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스스로 훑고 지나간다. 사랑스럽다. 나의 꼬리와 샛별이의 꼬리를 얽어본다. 우리는 꽤나 친해진 것 같다.

오십 한 번 째 금요일

빛나는 동공이 깜빡깜빡 신호를 보낸다. 느리고 아름답다. 모든 시간이 출렁거린다. 너에게 이별의 눈키스를 보낸다. 안녕 안녕. 지구의 모든 시간이 샛별이로 반짝인다. 나의 별은 여기서도 제법 잘 보인다. 돌아갈 시간이다.


마흔아홉 번째 금요일

노랗고 부드러운 샛별이. 주먹을 내밀면 콩 하고 이마를 박는다. 너로부터 체온을 배운다. 손바닥을 펼치자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스스로 훑고 지나간다. 사랑스럽다. 나의 꼬리와 샛별이의 꼬리를 얽어본다. 우리는 시간 안에 갇혔다. 무한대로 친해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Mar·ti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