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빗ORBIT May 15. 2020

환상특급



촘촘히 그리고 통속적으로 얽혀있는 세상에 염증이 난다. 의도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는가. 음험한 소식들. 간음하는 정보들. 충적세부터 시작한 별들의 간섭무늬에 이가 갈린다. 무명보 같은 공백에 얼굴을 묻는다. 아무와도 관계되고 싶지 않은 무결한 마음을 어쩌자고, 어쩌라고. 차라리 외롭기를. 오롯이 고독하기를. 염원이 휩쓸고 간 자리가 휑하다. 인간이라면 이제 이가 갈린다.

훌쩍 떠나야 한다. 이 모든 현상을 리셋하고서. 떠나고 싶어 산 티켓에는 어제의 기한과 은하의 이름이 적혀있다. 안내자는 입자와 파동 모두를 소지한다. 바다의 별에는 파도의 유언이 누워있다. 내가 거쳐간 모든 것들에 곰팡이가 슬었지. 자조의 미소는 파란 포자 붉은 꽃. 오염하는 모든 것을 동경한다. 유용하지 못할수록 좋다. 오염의 거취에 삭신을 뉘인다. 소금물이 전신을 따끔따끔 물어온다. 이대로 해왕성의 내핵까지 쓸려 가기를. 무기력의 이유는 모조리 너희다. 깡그리 시끄럽고 무례한 너희가 절대 닿지 못할 곳으로 천천히 노를 젓는다. 아직까지 티켓은 유효하다.

해왕성의 수심은 깊지 못해 허공이다. 침잠으로 환영하는 수몰구역.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천한 빙하가 떠다닌다. 가난으로 사치를 부려 본다. 심해의 성역에서 나는 홀로 왕이다. 거스름 돈이 없어 원금을 치르고 고백 없이도 속죄에 이르는 곳.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 율법인 나라. 권력 없는 통치자는 즐겁다. 아무도 없어 즐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