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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Oct 08. 2015

하이드 씨에겐 할슈타트보다
수제 햄버거

신랑이랑 유럽여행 넷째 날.-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여행의 시기로 돌아가

뮌헨 첫 방문. 그러니까 어제...

진드기 때문에 시달리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이 났다.


아침에 호텔 매니저에게 한 껏 하소연을 하고

호텔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오늘의 여정이 틀어지고 만 것이다.


원래 처음 여행코스를 짤 때 없었던 곳을

유럽 다녀온 여러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추천한 곳이 바로  '할슈타트'였고

급히 추가로 일정에 넣다 보니

이미 예약된 호텔에서 복잡한 경로로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할슈타트는 보통 잘츠부르크에서 머물며 많이 다니는데

우린 뮌헨에서 잘츠부르크로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로

그리고  또다시 그 코스를 거꾸로  역행해서 호텔로 돌아와야 하는

하루 안에 소화하기 무척이나 빡센?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것이다.


이 대장정을 하기 위해 체력이 필수 이건만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좀비 같은 몰골이 되어 버렸으니...

게다가 짧은 영어로  컴플레인하다가 계획했던 기차 시간을

놓치고 점점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호텔 매니저가 하루 숙박비를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협박했지만...ㅋㅋㅋ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절차가 복잡했다.

계속 호텔로 들어오는 관광객들에 밀려 기다렸다

이야기했다를 반복하다가 하루 숙박료보다

더 값비싼 하루를 날리겠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결국 우리는 절대 쿨하지 않은 쿨한 척을 하며

숙박료  환불받기를 포기하고 급히 뮌헨 중앙역으로 내달렸다.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자

진드기에게서 벗어나서 인지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간지러운 피부를 벅벅 긁어가며 우리는

다시 즐거움에 열중했다.


뮌헨에서 잘츠부르크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가는 내내 창밖의 풍경에 빠지다 보면

2시간이 2분처럼 지나간다.

게다가 가까이 앉게 되는 외국인들에게

괜히 말도 걸어보고 딱 1분짜리 회화를 해 보는 것도

무료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준다.

사실 여행 후반부쯤 가면

틈만 나면 외국인들한테 다가가 말 걸고 있는 나를 두고

신랑은 저만치 가서 모르는 사람인양 애꿎은 가이드 책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드디어 잘츠부르크 중앙역 도착!

그러나 뭉그적 댈 시간이 없다.

다리에 모터를 단 듯 미친 듯이 달려

할슈타트 행 버스가 있는 승강장을 찾았다.

사실 기차역 바로 앞에 버스 승강장이 있었음에도

배차 시간이 긴 버스이고 나중에 뮌헨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 대기하고 있을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1분!

이 버스를 놓치면 할슈타트를 여행할 수 없게 된다.


정말 여행을 수호하는 천사가 있는 것일까?

우리 눈 앞에 흐뭇하게 버스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울에서 막 떠나려는 지하철을 '비사이로 막가'상처럼

미끄러지듯  올라탔을 때의 그 안도감과 성취감...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아침부터 혼을 뺀 우리는 이미 몸은 다 털렸고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부부가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꼽는 곳 중의 하나가

이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가던 시골 길이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동화 세트장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믿기엔 아름다운 풍경이

살아있음에 자동반사적으로 감사하게 만들었다.


"오빠~! 저기 봐. 정말 예쁘지 않아?"

"..."

"오빠!"하며 창 밖에서 신랑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쩍벌남이 되어 저 먼 곳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하아... 어떻게 저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두고 잘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잠시 신랑을 재우기로 하고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이 버스는 잘츠부르크에서  바트이슐이라는 곳까지 1시간 30분 정도 가서 잠시 정차 후

다시 Gosaumuhle(발음이 기억나지 않음)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40분 정도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슈타트 행 버스로 갈아타고 15분 정도 가는 대장정을 마치면

기다리던 할슈타트에 닿을 수 있다.


평소에 차, 배, 비행기 할 것 없이 멀미하는데

수면양이 부족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

창 밖의 풍경에 반해서인지 멀미 한번 없이 잘 도착했다.



할슈타트는 작은 호수 마을인데

호수를 전망하고 산 능선에 집을 짓고 사는 마을은

정말 크리스마스 요정들이 살 것 같은 곳이다.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















          신랑~! 허락 없이 뒤태 공개해서 미안해.♡






한창 할슈타트의 매력에 빠져 있는 나와 달리

신랑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신랑의 배꼽시계가 밥 때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온순하고 차분한 신랑이지만

밥을 제때 먹지 못하면 그의 내면에 숨어 있던

하이드가 튀어나온다.


사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며 기차 시간을 고려하면

할슈타트를 다 돌아보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식사를 조금 미루더라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곳을 더 느끼고 싶었던 나와

'모든 것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란 신랑은 부딪혔다.


아무리 카메라를 가져다 대고 갖은 설득을 해도

신랑은 억지 웃음과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며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오!!!! 속 터져!'

하지만 별 수 없다.

이렇게 돌아다닐 바엔 여행을 다 망칠 수도 있으니

하이드 씨에게 음식을 드릴  수밖에...


하이드씨가 먹은 햄버거

결국 이 수제 햄버거를 먹고는 신랑은 다시 지킬로 돌아왔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모든 여행에서 모든 음식을 맛있다고 하니

입맛의 수준을 의심할 수 있겠지만

나름 한 입맛, 자타공인 한 손 맛 하는 새댁이다.


아무튼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우리 부부이지만

지향하는 곳이 같기에 함께일 수 있는 그와 나는

약간의 신경전을 지혜로운 수제버거로 풀어가며

또 하나의 추억열매를 송골송골 맺고 있었다.


오늘의 교훈!

금강산도 식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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