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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Jan 11. 2021

[데미안] 헤르만 헤세,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책 리뷰입니다. 간략한 줄거리와 융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아래 글은 스크립트이니 참고부탁드리며 영상 보시게 되면 좋아요와 구독도 슬쩍 부탁드려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wneMUTNytf8

고전리뷰 두 번째입니다. 오늘은 데미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리뷰를 준비하면서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세세하게 줄거리를 다루면서 리뷰를 할까, 아니면 해석 중심으로 할까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미안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줄거리는 여러 곳에 잘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만 찾아봐도 잘 정리가 되어 있고, 많은 북튜버분들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으셨습니다. 참고할만한 줄거리 정리는 댓글로 고정해놓도록 하겠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 간략하게 줄거리를 정리하고, 소설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10살의 에밀 싱클레어는 신앙심 있고 유복한 집안의 가정에서 자라난 소년입니다. 싱클레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으스대고 싶어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이가 좀 더 있는 불량한 프란츠 크로머에게 덜미를 잡혀 그에게 돈을 상납하게 됩니다.


이후 싱클레어가 다니는 라틴어 학교에 총명하고 비범해 보이면서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막스 데미안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옵니다. 어느 날 크로머와 만난 싱클레어를 본 데미안은 크로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해 주고 그를 크로머에게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이후 진학을 하고 데미안과 헤어진 싱클레어는 술에 빠져 방탕하게 지내다가 한 여성을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빌려와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부릅니다. 싱클레어는 그녀를 숭배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며 초상화를 그립니다. 문득 그림을 보니 그것이 베아트리체가 아닌 데미안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진학 후 방학기간에 우연히 만났었지만 의식적으로 데미안을 멀리했었던 싱클레어는 이 그림 이후 다시 그를 동경하기 시작합니다. 베아트리체는 서서히 잊게 되죠.


싱클레어는 집 현관에 남아있던 문장과 그것에 흥미를 가졌던 데미안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서 알에서 깨어난 매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데미안에게 보냅니다.


이후 데미안에게 온 답장을 통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 아브락사스를 알게 됩니다. 그것에 탐구하게 되고 어느 날 낯선 여인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 여인은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데미안도 아니고 키가 크면서도 중성적인 한 여성이었습니다.

뱀의 다리, 인간의 몸, 닭의 머리를 가진 아브락사스


싱클레어는 꿈에서 그녀의 포옹을 받고 희열을 느끼며 이를 아브락사스와 결부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아브락사스, 꿈속의 여인에 대한 생각에 빠져 지냅니다.


그러다 교외의 조그만 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피스토리우스를 만납니다. 그와 아브락사스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고 그를 인도자로 여겨 교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한계를 느낀 싱클레어는 사소한 문제로 그와 결별하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곳에서 데미안과 재회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에바부인은 데미안의 꿈속의 여인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에바부인과의 교류를 계속 이어가게 되고 에바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싱클레어도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다 폭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싱클레어는 임시병동에서 데미안을 만나게 됩니다. 데미안은 에바 부인이 보내는 키스라면서, 싱클레어에게 입을 맞춥니다. 순간 잠이 든 싱클레어는 깨어나서 데미안을 찾아보지만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누워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간단하게 줄거리를 설명 드렸습니다.


꿈과 환상, 상징, 아브락사스, 성경의 이야기들 등등. 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모호한 내용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명의 정신분석학자를 이해하면 이 소설의 여러 실마리가 풀립니다. 그 학자는 칼 구스타프 융입니다.



1. 융의 영혼의 지도


헤세는 데미안을 집필하기 전 칼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프리츠 랑 박사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심리치료의 영향이 [데미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융은 헤세에게 그림 그리기를 통해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고, 이는 싱클레어가 소설 속 그림을 그리는 것과 연결됩니다. 또한 데미안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준 융의 영혼의 지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융의 영혼의 지도

이 원을 사람의 의식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습니다. 무의식은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이 있습니다. 집단적인 것은 인류공통의 가치나,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화, 설화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는 각 대륙과 여러 민족에게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의식에는 자기(self)가 있습니다. 본래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아(ego)가 있으며 이 자아는 사회적 가면을 씁니다. 흔히 페르소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보이고자하는, 다른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자신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속에 숨겨져 있는 영역입니다. 이 그림자 안에는 다양한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여자이든 남자이든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중성적인 모습을 보였던 데미안이나 에바부인이 떠오르죠?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가 바로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무의식이 발현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꿈입니다. 꿈은 내가 의지를 갖는다 해서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또 무의식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 남녀노소의 모든 측면이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는 곳이며 상처나 어두운 면도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 자아(ego)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보이고자하는 가면, 페르소나를 쓴 체로 살아갑니다. 융은 이 자아(ego)에서 자기(self)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개별화 과정, 개성화 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헤세는 이 과정을 [데미안]에서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8쪽)라고 표현 하였습니다.



2.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 무의식과 표식


그리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이 무의식의 어두운 것, 상처와 대면하는 것, 무의식의 영역을 깨닫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만난 후 잠재의식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알에서 깨어 나온 새의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냈었죠. 그리고 데미안은 그 새가 아브락사스라고 말해줍니다.


아브락사스는 닭의 머리, 사람의 몸, 뱀의 두 다리를 가진 신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과 악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품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모습을 가진 존재는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대변합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아브락사스를 알려준 것은 “너의 무의식을 대면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 카인이 가진 것과 같았던 이마의 표식은 이렇게 무의식을 대면하고 깨달은 자들의 표시입니다. 어린 시절 밝은 세계와 어둠의 세계, 두 세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싱클레어에게도 이 표식이 있었고, 데미안은 이를 알아보았던 것이죠.


카인과 아벨. 카인의 이마의 표식은 [데미안]에서는 무의식을 대면한 자들의 표징으로 해석된다.


이 무의식의 영역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싱클레어가 그저 꿈과 환상으로 보았던 여인이 곧 에바부인이었던 것도 설명이 됩니다.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미 꿈으로 그녀를 만났고, 에바부인도 싱클레어를 알고 있었죠.



3. 전쟁과 집단무의식


소설 말미에는 전쟁이 터지게 됩니다. 소설에서 묘사한 전쟁은 세계1차 대전입니다. 데미안은 전쟁이 터지기 전 세계가 스스로 새로워지려 하며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고 말합니다. 데미안도 그렇지만 에바부인도, 싱클레어도 그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징집되어가는 기차 안에서 많은 청년들에게도 표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표식은 무의식에 이른 자들의 표시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표식은 개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체의 이상을 위한 표식이라고 소설에 표현됩니다. 이는 집단 무의식을 표현한 것으로서 전쟁 상황에서 국가로 대표되는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들이 느끼는 무의식적인 일체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전쟁 상황이 가져다주는 집단무의식을 경계한 것입니다. 세계대전은 세계를 둘로 나누고 그 상태에서 한쪽이 한쪽을 죽이려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끔찍하고 파멸스러운 상황이 집단무의식으로 공유되고 연결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입니다.


싱클레어는 전쟁에서 징집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쳤다. 알은 이 세계고, 이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이 말은 거대한 새를 집단 무의식으로 본다면, 둘로 나뉘어 전쟁하는 상황이 이 세계를 파멸 시킨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들의 껍질


융의 영혼의 지도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싱클레어의 표현에 의하면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입니다. 한 개인은 순수하고 밝은 면도 지니고 있는 반면 어두움과 죄악의 면도 갖추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가면을 더 잘 쓰기 위해서 한 쪽 면을 억누르고 짓누르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지닌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과정은 개성화의 과정, 개별화의 과정입니다. 이 개별화와 개성화의 과정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냐고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에바부인은 “돌이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나요?”라고 답합니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도, 다른 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곧 “나”입니다. 다양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아라는 알의 껍질(ego)을 깨고 나오는, 자기(self)라는 새의 모습처럼 말이죠. 이 [데미안]이라는 소설이 지닌 핵심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아(ego)라는 껍질을 깨고 자기(self)가 나와야 함을 소설은 말한다.


5. 마무리하며


무엇보다 [데미안]이라는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들로 쓰여 있습니다. 하나하나 깊이 음미해볼 만한 문장들이 넘쳐나는 소설입니다. 심지어 폭탄을 맞은 싱클레어의 상황도 반짝이는 별들에 비유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마에서 별들이,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이 튀어나와서 멋진 활모양과 반원을 그리며 검은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 별들 가운데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곧장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굉음을 내며 수천 조각의 불꽃으로 쪼개져서, 나를 솟구쳐 올렸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이만 데미안의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고전리뷰는 계속 됩니다. 저와 함께 고전문학을 함께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되며, 주신 힘으로 더 좋은 영상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책을 리뷰하는 남자, 책리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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