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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Jan 19. 2021

나는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영상을 통해 전체 내용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영상의 대본으로서 참고로 붙여두었습니다. 영상 보시고 좋아요와 구독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계속 책을 리뷰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


https://youtu.be/Gypb0nmUHdA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런 성질은 사실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입니다. 동물들은 같은 종이라도 다른 그룹에 있는 동물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떤 닭장에 있는 닭을 다른 닭장에 넣으면 그 닭은 주둥이로 쪼이며 공격을 당합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우리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우리와 다른 점이 발견되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을 나눌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은 같은 종이라도 다른 그룹에 속해 있다면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문제는 그 뿌리가 깊고,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더 불거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종차별의 극단을 달렸던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홀로코스트, 독일의 파시즘이 불러일으켰던 유대인 대학살의 사건입니다. 파시즘은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 국수주의, 반공주의적인 정치 이념을 말합니다. 독일이 일으켰던 홀로코스트에 대해 증언하였던 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는 빅터 프랭클이며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많은 분들이 접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제가 군 시절 보급 도서로 처음 접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의미심장한 첫 만남이었는데,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생활 중에도 희망을 품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을 통해 극단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준 작가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조금 다른 결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작가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약 10개월간의 경험을 기록하였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며 2007년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여러 기록 중에서 증언 문학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1.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절제 있는 문체와 작가 특유의 비유들은 그 끔찍하고 놀라운 상황을 더 가슴 깊이 다가오게 만듭니다. 이러한 문체와 묘사들은 극한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인간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서의 극한의 상황이 인간에게 닥쳤을 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들을 묘사합니다. 이기심, 악함, 식욕, 작동하지 않는 사고능력 등등.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정말 “이것이 인간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셀렉챠”라 불리는 선발의 장면은 이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선발이란 수용소의 인원이 넘치게 되었을 때,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것을 뜻합니다. 수용소의 포로들, 책에서는 해프틀링으로 불리는데 이들은 선별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몸을 보여주며 괜찮을지 대화를 나눕니다. 건장하지 못한 모습, 노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신체 모습은 곧 선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발의 심사 시간은 수 초 뿐입니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나치 친위대, SS대원은 포로들의 얼굴과 등을 한눈에 보고 가스실로 보낼지 말지를 결정해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재빠른 검사 때문에 인적사항을 적은 카드가 실수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SS대원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빈자리를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의 가치가 너무나도 하찮게 여겨지는 순간입니다.


선발이 끝나고 프리모 레비는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옆 침대에는 스무 살 먹은 베포가 내일모레 가스실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이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베포 자신이 그것을 알고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작은 전등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다음 선발 때는 자기 차례가 올 것임을 모른단 말인가?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2. 아우슈비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눈여겨볼 것은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독일인에 대한 묘사나 감정, 특히 그들을 향한 증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프리모 레비는 “증오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며 대상과 얼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치 체제하에 주인과 노예는 최소한의 접촉만 하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실제로 SS대원들을 포로 입장에서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했던 1946년에 나치와 파시즘이 “정말 얼굴이 없는 듯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맹위를 떨치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했던 세력이 단숨에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고합니다. “파시즘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쓰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파시즘은 새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나기 위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원래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없게, 좀 더 존경받을 수 있게, 그리고 파시즘으로 초래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모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왔습니다. 이 새로운 세상에 파시즘은 그저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은밀하게 존재한다고 프리모 레비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현재에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생김새가 다르거나, 심지어 생각이나 정치성향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밀어냅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포용력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보다 작은 것이 되어버린다면 그때 파시즘은 이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1980년에 [이것이 인간인가]는 일본어판에서는 [아우슈비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로 제목이 번역되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포용하지 못하는 모습, 불관용의 모습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한 아우슈비츠는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게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3. 지금의 우리에게 [이것이 인간인가]는


유대인을 구타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고, 가스실로 몰아넣었던 독일인들은 아주 평범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악행을 창조해낸 괴물들, 즉 히틀러 같은 사람은 극소수 일 뿐 실제적인 위험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인 간 적인 행위들을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것이라고 프리모 레비는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악의 평범성은 간단히 말하자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개념입니다.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히히만을 이런 사람이라 칭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아히히만은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들을 폴란드 수용소에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였다.


분명 파시즘이라는 것은 가면을 쓰거나 얼굴을 바꿔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에 대한 의문을 품고 반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가에 순응, 혹은 상황이나 환경에 순응하여 악한 행위들에 의문을 품지 못할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에 젖어들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하니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꼭 그렇게 미워해야만 하는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등의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고능력, 특히 비판적인 사고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증오한다고 해서 나도 증오하는 것은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 질 치는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리모 레비

파시즘이 행한 행동들에 대해 증오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증언 문학으로서 그 행동들이 악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이 말이 거창하다면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다로 바꿔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제가 대학생 시절에 만났던 제 마음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렸던 소중한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소중한 책을 언젠가는 리뷰해서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이룰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그 책과 더불어 [이것이 인간인가]와 함께 읽어보라고 꼭 권합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주제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리뷰했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어보시며 지식을 넓혀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만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유익하게 보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주신 힘으로 더 좋은 영상 만들어오겠습니다. 저는 책을 리뷰하는 남자, 책리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리모 레비는 1987년 토리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증인의 삶으로서 소명을 다하겠다고 했던 그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살아남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점이나 파시즘의 그늘이 늘 있어온 것을 목격하며 살았던 그가 그럴만한 선택을 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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