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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영 Jul 27. 2024

3. 아빠는 고장 난 라디오 같았다.

그렇지만 가끔씩은 재미있는

꼭 알콜중독자의 가족이 아니어도 사람이 술에 취하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을 다들 한두 번쯤 겪어봤을 텐데

문제는 그게 매일 밤 지속된다는 것이다.


아빠의 말들을 이제 와서 분석해 보자면 50퍼센트쯤은 원망, 비난, 그리고 30퍼센트쯤은 의심, 피해망상, 그리고 5퍼센트쯤은 자기 연민, 그리고 25퍼센트쯤은 뜻밖에도 상식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아빠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 못 드는 날들에 분노하다가도

가끔씩 그 속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치만 그 이야기들도 반복된다ㅋㅋㅋ


그래서 거의 그 상식들은 뇌에 새겨질 정도인데 일단 아킬레우스 신화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사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아기일 때 담갔는데 그녀가 그의 발목을 잡고 담갔기 때문에 그 부분은 강물이 닿지 않아 약점이 되고 결국 아킬레우스는 그 부분을 활에 맞아 죽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발목에 그 부분이 아킬레스건이라고 불린다는 내용까지 자주 들었다.


훗날 영화 트로이가 개봉하고 브래드피트가 발목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보며 (그때는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았지만) 아빠의 그 주정이 진짜 무슨 반사신경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이태백이 달 잡으려다 강물에 빠졌다는 이야기. 유명한 과거의 시인과 본인이 주정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서였을까. 이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좀 후레자식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아빠도 차라리 빠져 죽지 그래란 생각이 들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역사도 빠지지 않았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했는데 뒤에서 이 도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과 그 도로를 만드는 것이 그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그것을 박정희가 받아들였다는 내용. 무슨 이건 유튜버처럼 그때 안 만들었다면 지금 그 지역은 아직도 논밭이겠지라며 추측성 멘트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요즘 유튜버가 경부고속도로?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이런 썸네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일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어원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육갑 떤다'의 어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여기서 육갑이 육십갑자인데 이건 사주에 쓰이는 내용으로 이걸 다 외우면 바로 생년월일로 사주를 대충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잘난척하려고 읊조리는 데 소위 말해 나댈 때 육갑 떤다라고 말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들은 내용이었지만 아빠가 아주 어렸을 때, 10대였을 때 엄청난 책벌레였다고 한다. 나중에 책을 버리는데 리어카로 하나 가득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 주정들은 다 그때 읽은 것들이었겠구나 싶어 지게 되고, 또 한 편의 생각으로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모두가 위인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란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빠도 남자여서 인지 군대 얘기도 들었는데 군대에서의 학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건 재밌었다기보다는 그냥 자극적이고 끔찍한 내용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군대에서는 줄빠따라는 것이 있는데 군인들을 세워놓고 첫 번째부터 한 대씩 늘려가며 차려대로 때리는데 누군가 중간에 쓰러질 때까지 하는 게 룰이었다고 한다. 그게 본인은 너무 싫어서 연탄?을 먹고 군 병원에 실려갔는데 거기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연탄이 이미 소화가 됐다는 웃픈 실화도 얘기하며 그때 맞아서 생긴 몸에 흉터도 보여줬는데 그때는 아빠가 조금 불쌍하게도 느껴졌었다.


그리고 역학? 성명학? 그런 것들도 얘기했었는데 내가 잘 모르니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어느 날은 나의 이름에 영자가 사주와 매칭했을때 한자 두 개가 후보로 좋다고 생각됐는데 하나는 사랑은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존경받지는 못하고, 다른 하나는 외롭지만 존경받을 수 있는 한자여서 고민하다가 외롭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원해서 이 한자로 출생신고를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한자의 효력의 신빙성을 믿고 말고를 떠나서 그 주정을 들으면서는 희미하게 아빠가 어쨌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구나라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는 그 주정이 맘에 든다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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