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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Mar 30. 2017

이 밤, 잠들기 싫은 그대에게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아놀드로벨 그림. 첼리 두란 라이언 글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잠 재우기였다. 우리 집 두 녀석들은 모두 잠투정이 어찌나 유난스러운지 내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만들었다. 젖 물려 재우기, 안아 재우기, 어부바하기, 유모차 태워 하염 없이 걷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가며 재웠다. 그렇게 간신히 재워도 토막잠을 잤고, 잠귀는 얼마나 밝은지 조금만 바스락거려도 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요즘 엄마들은 똑똑하게 수면 교육 잘 시켜서 100일만 지나도 아기가 혼자서 푹 잠 잘자고 일어난다는데, 내 육아 방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아이 둘과 씨름하던 그 숱한 날들 중 뒹굴 뒹굴 놀다가 스르륵 잠드는 기적 따윈  나에겐 단 한 번도 일어나질 않았다. 첫째가 두 돌이 다 될 때까지 절대 혼자 땅에 등 대고 순하게 잠드는 법이 없었다면 말 다했다. 그리고 이제 10개월에 들어서는 둘째도 마찬가지여서 나의  잠 재우기 위한 지난한 사투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언젠간 스스로 잠드는 날이 오겠지. 기껏해야 2년인데 또 언제 품고 자겠나' 하는 자기 위안으로 오늘도 다가오는 밤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헥삼 언덕에 사는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이 너무 싫다. 할머니는 밤을 몰아내기 위하 온갖 방법을 시도한다. 빗자루로 밤을 싹싹 쓸고 걸레로 빡빡 닦아보기도 하고, 튼튼한 자루에 쑤셔넣기도 한다. 큰 가마솥에 밤을 끓여 김으로 날려보내려고 하고, 가위로 찰칵찰칵 잘라보고, 우물 속에 밀어넣기도 하지만 밤은 이내 쑤욱 다시 나타난다.

자장가 불러주기, 우유 한 사발 주기, 주먹질 하기, 심지어 퉷 하고 침도 뱉는다.

밤을 몰아내기 위한 할머니의 안간힘은 눈물겹지만 그 발상은 유머러스하고 기발하다.

 그렇게 밤새도록 밤을 쫓아내려다 지쳐버린 할머니는 아침이 밝아올 무렵에야 쓰러져 잠이 든다. 그리고 낮이 끝나고 어둠이 다시 내리면 깨어나 다시 밤과 싸울 것이다.



"할머니는 왜 밤을 싫어해?" 
"글쎄. 잠자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닐까?"
"왜 잠자기 싫어?"
"너도 아기 때 그랬잖아. 그리고 지금도 맨날 자기 싫다고, 더 놀고 싶다고 떼쓰잖아." 
"음. 그렇구나."


"이제 잠 잘 시간이야." 
"9시야?" 
"." 
"아, 나 자기 싫은데." 
"그래도 자야돼. 망태 할아버지 올지도 몰라. 불 끈다. "


 사실 요즘 내가 망태 할아버지까지 들먹이면서 더욱 잠잘 시간을 재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늦은 밤 시간부터 나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치 힐드리드 할머니처럼 하루의 고단함으로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부릅뜨고 아이들이 잠들길 기다린다. 그리고 새벽까지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 낮이 되면 졸음이 쏟아져 죽겠지만 말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활인가 싶지만 난 달콤한 그 자유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다.


 " 할머니는 밤이 끝나면 밝은 아침이 된다는 것도 모르나봐. 밤에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놀면 될텐데 말야. 그러니까 너도 잘 자고 일어나서 내일 재밌게 놀아."

 아이에겐 잠자기 싫어 밤과 싸우다 결국 햇님이 환한 낮은 못보고 잠드는 건 어리석다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가 할머니를 비웃을 처지가 못된다.  

  할머니 괜히 밤과 싸우느라 힘 빼지 맙시다, 우리 그냥 이 밤을 함께 즐겨요. (단, 애들은 망태 할아버지에게 맡겨 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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