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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molove Nov 13. 2021

나랑 사귈래?

첫눈처럼 나에게 온 너.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 담다디 다담 다 다담 
그대는 나를 떠나려 나요
내 마음 이렇게 아프게 하고
그대는 나를 떠나려 나요
내 마음 이렇게 슬프게 하고....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수 이상은이 불러 대상을 거머쥔 노래다.

난 남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유행도, 연예인도 모르는 그저 피아노 전공에 열연습 중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드라마를 봐도 재미를 못 느끼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하는 화제에도 그다지 놀래 하지를 않는다.

옆집 누가 이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내가 끼면 중단이 될 정도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는 말을 웬만해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랬구나!" 라며 끝맺음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그런 성격이 친구가 없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내가 담다디를 연신 외치며 춤을 추던 중성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짝사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중2병에 상사병을 겹쳐 앓았다. 꺽다리 같은 키에 헐랭 거리는 춤, 예쁘장한 얼굴과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

중성적인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나뿐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당시 남성 보컬그룹 '소방차'가 입기 시작해 유행하던 승마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던 패션은 돌고 돌아 다시 유행할 법도 했는데 세기가 바뀌면서 승마바지의 존재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이틴 스타들의 사진은 책받침, 엽서, 스티커까지 총출동해서 판매가 되었고 용돈이 궁한 시절 우리들의 우상이 되는 하이틴 스타들의 사진을 스크랩하며 행복해하는 소년. 소녀가 꽤 많았다.

나 역시 홀딱 반해버린 이상은의 사진이 담긴 앨범이 두권이나 되었고 학교에 가면 소방차 등 그 당시 유행하던 연예인들의 사진을 돌려보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 런 데.

옆반으로 건너간 나의 우상 스크랩 앨범이 사라졌다. 경로를 확인하는데 어느 순간 끊겼다. 나의 앨범은 돌고 돌아 교무실에 보관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낙이 사라져 버렸다. 밥도 먹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눈물만 났다. 그렇게 겨울을 맞이했다.




1988년 겨울로 향하는 첫눈이 펑펑 내리던 토요일.

잊히지지도 않는 날이다. 독서실에서 공부 중이던 나는 옆자리 친구의 권유로 소개팅에 동반되었다. 

이유는 본인이 소개팅이 처음이라 무서우니 같이 가 달라는 것이었다. 중2 학생에게 소개팅이라니. 

그게 뭔지도 몰라 알겠다며 따라나섰다. 독서실 맞은편에 있던 광장엔 내리는 흰 눈으로 온통 하얳다.

저 멀리에서 참하게 생긴 남학생이 저벅저벅 다가왔고 우리와 가까워 지자 멈춰 서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황한 나는 "아, 내가 아니고 여기 내 친구가.." 

'아 뭐야, 에잇,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은 뭐람.'

둘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말투를 던지고 나는 친구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 주변을 맴돌았다. 어찌나 춥던지.... 생각해보니 그때 어줍잖게 멋을 내던 때라 승마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빨강 넥타이를 매고 떡볶이 단추가 달린 코트를 입고 첫눈을 맞이했으니 상당히 춥기도 했을 것이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른 듯 한 시간이 지난 뒤 친구와 남학생은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독서실을 들어가는 내내 친구는 옆에서 쫑알거리느라 입을 쉬지 않았고 난 아무런 대꾸도 않은 채 듣기만 했다. 

'쟤 너무 귀엽지, 집이 00이고 동생은 몇이나 있고 00 중학교에 다니고...."

혼자 떠드는 얼굴을 보니 뭔가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 행복한 마음을 나는 1도 알 수가 없었다.

그 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며 내 옆 소개팅의 주인공 그녀는 투덜거렸다. 

다행이었다. 거기까지가 수다의 끝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맞이해 새로운 마음과 비장한 각오로 중3을 보내겠다는 새 학기의 시작은 나뿐 아닌 이 세상 모든 중3이 하는 의례적인 의식일 것이다. 

중 3학년의 첫 등교를 위해 버스에 올라탔고 그 전 해와 다름없이 기사 아저씨는 안으로 밀고 들어가라는 외침을 했다. 남. 녀. 중. 고 학생으로 한가득인 버스 안은 밀고 들어가다가 밟혀 질러대는 고함소리와 뭐가 좋다고 깔깔대는지 밀치락 엎치락 한바탕이다. 나도 밀려 밀려 절대 틈이 없을 것 같던 버스에서 결국 뒷자리까지 가게 되었다. 한참을 가는데 옆통수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바라보니 첫눈 내린 날 소개팅에 나왔던 남학생이 떡하니 내 옆에 서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마주친 얼굴에 서로 웃음이 나왔다. 처음 본 날 어렴풋이 봐서는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다시 보니 문학소년처럼 얼굴에서 지성의 윤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나는 내려야 해서 벨을 누른 뒤 출구 쪽으로 향했다. 사실 뭐 향했다기보다는 여고 앞에서 우르르 몰려 내려야 해서 거의 떠내려가는 상황이다. 그때 이름도 모르는 그 남학생이 내 귀에 대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내일도 같은 버스를 탈거라고. 




다음날, 난 굳이 그 버스를 피할 이유도 없었고 그 남학생 말을 신경 쓴 것도 아니었다. 

난 그 버스를 타야 지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날과 같은 똑같은 상황이었다. 

단지 내리려 할 때 했던 말만 다르다. 

'나랑 사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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