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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Mar 30. 2022

나의 행복을 바라주는 넌, 무지개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난 드라마가 좋다.

너의 이야기를 ‘멋지다’ 응원해주는 드라마를,

나의 이야기를 ‘괜찮다’라 응원해주는 드라마를 난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볼품없었던 청춘을 아름답다 말해준 ‘스물다섯 스물하나’ 덕분에

난 오늘도 드라마가 좋다.


# 네 꿈을 빼앗은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처음 그들이 마주한 시대는 가혹했다.

가족을 해체시켰으며 꿈을 앗아갔고 희망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었다.

시대에 맞서기엔 너무나도 어렸고 시대는 원래 그런거라는 어른들의 무책임함이 화났다.

하지만 그 시대에서 그들은 좌절보단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저 처음이 오늘이니까 오늘까지만 서툴겠습니다.”란 솔직함을 내뱉었다.

주저앉는 대신 “나의 세계 사라졌다면 그 애의 세계로 가”란 말에 도전을 시작했다.

그 시대를 그들의 방식대로 원망했고 부서졌고 그리고 다시 맞섰다.

그렇게 그들은 겁 없이 시대에 맞섰고 그 청춘은 애잔했고 눈부셨다.


‘겁 없이’란 단어를 내뱉자 잊고 있던 나의 청춘이 떠올랐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가 부끄럽지 않았다.

서너번을 설명해줘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물어보고 또 물어보던.

나에게도 그런 겁 없던 시절이 있었다.

서툶을 숨겨야 하는, 실수는 누군가에게 나를 휘두를 무기라는 것을 체감하는 그 시절 동경의 나이가 되었다.

이젠 ‘겁 없이’란 단어가 낯설어 흠칫 놀란다.

그 무게들이 한없이 무거울 때면 이진에게 행복을 선물하던 희도가 생각났다.


#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

그 애잔한 청춘에겐 눈부신 친구들이 있었다.

“넌 날 왜 응원해? 우리 엄마도 날 응원하지 않는데.”

“기대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

거리조절에 실패했다 생각했을 때 보폭을 좁혀 다가와 주었다.

내가 잘할 것을 나보다도 더 먼저 알아주었고,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았던 하루들을 희극으로 마무리 지어주었다.

희도가 이진에게, 이진이 유림에게, 유림이 지웅에게, 지웅이 승완에게, 승완이 다시 희도에게

오늘의 실패에, 좌절에, 외로움에 이상한 빛을 비춰주었다. 무지개였다.


나의 존재가 무색해졌던 날이면 ‘자몽’이라 부르고 싶었다.

사소한 순간이 인연을 만들었던 날엔 ‘케이크’가 떠올랐다.

한 화 한 화 드라마가 쌓여갈때면, 나의 삶에 말도 안되는 단어들을 붙여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어졌다.

이상한 드라마다.


마음과 다른 말들로 상처를 내는게 쉬워졌고, 상처있는 말들에 마음을 숨기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이 줄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에 행복이 전달되는 일이 줄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친애하는 나의 우리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만큼은 조금 더 웃는 이유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상한 드라마다. 아마 무지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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