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의 발매에 붙여
2014년에 방송된 'K-Pop 스타 4'의 참가자 중에 홍정희라는 가수가 있었다. 당시 그녀의 노래에 대한 양현석과 유희열의 상반된 심사평이 한동안 화제였다. 유희열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가창력이 넘치는 가수도 필요하지만 이런 음색의 가수도 필요해요. 소박하고, 수줍고, 가녀리고, 구름 위를 걸어가는 듯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그런 노래들도 있어야죠. 그렇게 노래를 스무 곡씩 하는 친구가 있어요. 저희 회사는 거의 다 그래요. 루시드폴같이.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냥, 정말 속삭이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앉아계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꽤 많아요."
유희열의 말처럼 루시드폴은 언제나 소박하고, 수줍고, 가녀리게 구름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린다. 그리고 그의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팬들은 여느 아이돌의 팬들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지만, 간절한 마음만은 그에 못지 않게 그의 노래를 기다린다. 그렇게 2년 만에 루시드폴이 새로운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침 9시 20분, 이집트 다합의 어느 집에서 눈을 떴다. 6개월의 여행 후,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여행을 시작한지 20일이 지났고, 다합에 들어온지 열흘이 지났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고독과 설렘 사이를 무한 루프처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와 아무리 설레는 만남을 갖게 되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진지하게 묻는 일은 거의 없다. 사전적 정의처럼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이라는 것이 안부인지라 서로 그것을 물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 자신의 안부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기에 남의 안부는 관심 밖이기도 하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부르러
그대 앞에 왔죠
눈을 뜨자마자 루시드폴의 신보를 플레이했다. 첫 번째 트랙의 첫 가사를 듣자마자 마치 오랜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따듯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나 '잘(well)'이라는 짧은 한 글자가 이렇게 위로가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잘이라는 글자 앞에 붙은 '그동안'이라는 말이 주는 츤데레같은 따뜻함-
첫 번째 트랙인 '안녕,'의 가사를 읽어보고 한편으로는 참 루시드폴스럽지 않은 가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인들이 뽑은 우리말이 아름다운 가사 7에 선정될 정도로 시적인 가사를 쓰기로 유명한 루시드폴인데, 그런 가수의 가사치고는 은유적 표현이라곤 하나도 없는 일상적인 가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니 유희열의 말처럼 그의 속삭이는 얘기를 듣고 싶어 기다렸던 팬들에게 전하는 따듯함이 지금까지 발표했던 그의 어떤 곡들보다 더 뜨겁게 담겨있음이 느껴졌다.
제주도 한 구석에서 귤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앨범을 내고 콘서트 외에는 다른 방송활동응 거의 하지 않는 가수다. 한 편으로 자신의 창작세계만을 만들어가는 고립적인 가수로 보일 수도 있다. SNS로 팬들과 소통하며 수십-수백만명의 팔로어를 확보한 가수들도 많다. 하지만 수백만명의 팔로어를 확보하고 매일 셀카를 올리며 팬들의 댓글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어느 가수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노래로 안부를 묻는 루시드폴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니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노래로 소통하는, ‘가수’의 진짜 소통법이 아닐까?
나에게 안부를 물어준 루시드폴의 노래 한 곡 덕분에 멀리 타지에서의 홀로 여행도 ‘잘’ 되어갈 듯 하다. 그리고 나의 애정하는 가수가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다고 속삭이듯 전해준 안부가 내게 큰 위로가 됐듯, 그의 안부로 인해 분주함과 불안함, 두려움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또 오늘 하루를 ‘잘’ 살 수 있게 되기를-